우울감이라는 사치스러움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지 3년을 넘기며 우울증이라는 녀석은 삶의 일부분으로 존재하고 있다. 처음 진단을 받을 때만 해도 '내가 무슨 우울증이야'하며 코웃음을 쳤었는데 현재로서는 우울증 약을 먹으며 평생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수용의 단계로 들어선 듯하다.
우울증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우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아이를 키우며 누군가 "우울하지 않아요?"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단번에 대답할 수 있었다. "우울이란 사치스러운 감정이에요." 그 당시 20개월 남짓의 쌍둥이와 5살의 첫째를 키우고 있었기에 우울이라 칭할 수 있는 멜랑꼴리 하고 축 쳐지는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도 그 감정 안에 갇혀 있을 수도 없었다. 살려면 그래서는 안 되었다.
내가 병원을 찾은 이유는 단 한 가지 심장을 짓누르는듯한 돌덩이와 주체되지 않는 화였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불덩이를 주체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향해 쏟아 놓을 때면 괴물이 된 나를 발견하였다. 제 발로 찾아간 병원에서는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려 주었다. 우울하지 않지만 나는 우울증이었기 때문이다.
불덩이 같은 마음이 잦아들고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니 또 다른 증상이 찾아왔다. 바로 '무기력'이라는 녀석이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지만 기운이 없었다. 몸은 무거워지고, 피곤했다. 외출도 하고, 아이들도 잘 돌보고 있었으나 침대 곁이 가장 좋았다. 어떤 때는 일주일에 한 번 교회 가는 날만 밖에 나갔다. 모든 것은 집 앞 배송으로 해결했다. 나가고 싶지 않았다. 외출해서 잠시 서점을 들릴까? 하다가도 바로 옆에 있는 서점에 한 발짝 내려가는 것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잘 내 모습을 알지만 그 편이 나를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잠으로 대부분의 삶을 보내는 모습은 멋지지 않았다. 가족을 위해 애쓰는 남편에게 미안하고,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자책의 늪으로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 아이의 학습 부진에 대한 전화를 받게 되고 나니 쓸모없는 인간이 된 느낌이었다. 아이 돌봄, 경제활동 집안 살림 어느 하나 제대로 해 나가지 못하면서 "나 우울증이에요."라며 가면 뒤에 숨어있는 비겁한 존재라고 느꼈다.
꼬박 3개월을 지독하게 앓고 나니 훌쩍 시간이 지났다. 거실에서 아이 셋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지독한 엄마의 무기력이 아이들에게 아무 영향이 없기를.. 마흔두 살에 겪은 부침이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너른 마음의 방을 만들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