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입니다.
처음 정신과를 방문했던 날 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너무 정상인데 왜 오셨어요?"라는 말을 듣는 게 아닐까? 사실 나는 아무 이상이 없는 건데 철없는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닐까. 고민 끝에 진료실에 들어갔다. 간단한 검사와 꽤 긴 시간 선생님과 상담의 시간을 가진 후에 선생님은 "우울증"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노동을 많이 하면 관절이 아프고 망가지잖아요? 그것과 똑같다고 보시면 돼요. 뇌를 너무 많이 사용하게 되면 뇌신경이 약해지고, 그렇게 되면 뇌 기능이 약해집니다. 그래서 우울증이 생기는 거예요."
선생님의 말씀은 명쾌했다. 우울증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고 내가 잘못해서 걸린 것이 아니라고 했다.
"굳이 따져보자면 조상 탓을 하세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선생님은 옅은 미소를 띠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환자분이 지쳐서 생긴 병이라는 거예요. 자기 탓하지 마세요. "
그날 이후로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밤마다 약을 먹는다. 핑크색 안정제 반알과 세로토닌을 높여준다는 흰색약. 사실 나는 3년 동안 약을 조금씩 증량했다.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면 증상이 좋아져서 약을 점점 줄이다가 끊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겠지만 실제로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내 입장은 조금 달랐다.
사실 나는 약빨을 잘 받는 사람이다. 어떤 약이든 효과가 금방금방 나오고, 정신과 약도 그랬다. 하루 이틀 만에 분노의 감정이 가라앉고 화를 덜 내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남편이 뻥치지 말라고 할 정도로 효과는 드라마틱했다. 약을 먹고 나니 삶이 너무 편해져서 '평생 먹고살아도 나쁘지 않겠는걸?"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부산하고, 고집세고, 산만하고, 예민한 아들 셋을 키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것저것 신경 쓸 일들도 너무나 많았고, 때마다 떨어지는 생필품 주문이며 하다못해 저녁 찬거리까지 매일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들의 연속이었다.
아이들의 어려움을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서 돌봐주고 싶은 마음에 공부도 열심히 했다. 사이버대학도 다녔고 틈틈이 재택 알바도 하고, 온갖 강의들도 쫓아다니며 방법을 찾았다. 책도 산처럼 쌓아두고 어떻게 아이들을 이해할지 연구하고 연구했다. 사이사이에는 각종 뉴스며 새로운 소식들을 머릿속에 넣느라 바빴다.
뇌가 피곤할만하다. 사실 한시도 쉬지 못하는 생각들에 매일매일 터지는 여러 가지 일들. 가끔 들어오는 아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까지 더하면 머리는 터져 버릴 것 같다.
예전에는 그냥 다 그런 거지, 참고 견디면 된다고 생각했다. 좁아터진 뇌 속으로 압축팩에 꼭꼭 눌러 담아 계속 보냈다. 문이 안 닫힐 때면 과부하가 찾아왔다. 지금은 느낄 수 있다. 더 이상 넣을 곳이 없구나. 문이 터져 나가겠구나. 그럴 땐 선생님과 상의하고 약을 늘린다.
"약은 언제 끝나요?"라고 묻지 않는다. 선생님이 "지난달엔 어땠나요?"물으시면 "맨날 똑같죠."라고 답하고 마주 보고 웃는다. 아들 셋의 고단함이 쉬이 가셔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서로 알기 때문이다.
노오력과 의지로 어쩔 수 없는 병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내가 유별난 성격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편안해졌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지만, 뇌에게 휴식을 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