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의 노래 ‘사계’ 알아? 이 노래 가사에 ‘셰익스피어의 연극 같은’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요즘 학생들은 셰익스피어를 잘 모르더라고. 그의 작품을 통해 그를 알기보단 노래 가사로 먼저 친해지는 것 같고.
셰익스피어. 이 분은 세계 대문호 중에 한 분이야. <로미오와 줄리엣> 알지? ‘오, 로미오. 그대의 이름은 왜 로미오인가요?’ 이 지문이 나온 책. 이것도 셰익스피어 이 분이 쓴 거야. 이외에도 많은 희곡을 집필하셨는데, 비극도 여러 편 쓰셨어. 그 작품들이 지금은 ‘대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고.
이 영화 <오필리아>는 그래서 보기에 의미가 있는 것 같아. <햄릿>을 보고나서 <오필리아>를 보면, <햄릿>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고, <햄릿>과 나란히 셰익스피어의 대작으라 불리는 <맥베스>나, <리어왕>, <오셀로>도 살펴볼 수 있으니까. 이 작품들은 새로운 배우와 감독에 의해 또 다른 영화로도 자주 나오고, 서양에선 지금도 초등학교 때부터 교과서로처럼 읽히거든.
그러니 <오필리아>를 보기 전에 <햄릿>을 먼저 보면 좋아. <오필리아>는 <햄릿> 줄거리 이면에 나오는 오필리아를 조명하는 영화니까.
<햄릿>은 앞에서 말했듯 셰익스피어의 대표 작품 중 하나야. <햄릿>을 보면 극이 시작하기 전 큰 사건이 있었어. 햄릿의 숙부가 햄릿의 부왕 자리를 빼앗고, 왕비와 정을 통했어. <햄릿> 1막에선 햄릿이 이 ‘사건’을 알게 돼 그들에게 복수할 날을 기다려. 이게 <햄릿>의 큰 줄기라고 보면 되지. 햄릿이 숙부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라고. 물론, 표면적으로.
또 다른 면에서 ‘표면적으로’ <햄릿>의 주인공은 햄릿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햄릿’이란 이름은 잘 기억해. 햄릿의 대사는 이름 난 배우들이 읊고 싶은 대사 중 하나라 하고, 사람들은 <햄릿>이라고 하면 대단한 비극 작품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어. 그런데 오필리아는 몰라. 오필리아가 누구게?
그녀는 햄릿의 연인이야. <햄릿>에서 비중이 적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주위에선 너무 모르더라고. 오필리아라고 얘기하면, 노트에 받아 쓰는 분도 계셨어.
<오필리아>는 <햄릿>의 줄거리와 같아. 책으로 햄릿을 보면 좋아. 햄릿의 대사가 그대로 나오니까. 그런데, <오필리아>의 주인공은 ‘햄릿’이 아니야. 오필리아지. <오필리아>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가 이 극을 이끌어. <햄릿>을 오필리아의 시각으로 바라본 거야.
영화관에서 떨렸던 게 뭔지 알아? 웅장한 사운드도 아니고. 화면으로 보는 오필리아의 아름다운 모습도 아니었어. <햄릿> 속에선 찾을 수 없었던 한 여인. 오필리아의 행적이 보인다는 게 오빠를 너무 감동케 하더라. 햄릿이 타지로 떠날 때, 그만을 바라보며 남몰래 눈물 훔치던 그녀가 보였고. 온갖 악재에도 그만을 바라보며 살아간 시간들이 고스란히 보였어. 햄릿이 위험에 처했을 땐 가장 먼저 도우려고 했던 여인을, <오필리아>는 영화로 재조명해놓았지.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녀가 사실, <햄릿>의 ‘주인공’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 햄릿의 가장 큰 버팀목은 오필리아였으니까. 그녀는 햄릿에게 정신적인 지주 같은 사람이었고. 햄릿 곁에 그녀가 없었다면 그는 숙부의 간계 앞에서 일찍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을 거니까.
많은 이가 보이는 부분에 집중해. 아파트에 나무들이 화창하게 피어있어. 사람들은 이 아파트는 어쩌면 이렇게 수목이 푸르를까, 감탄하지. 아파트 집값이 오른다고 좋아하고. 아파트 조경이 잘 관리돼있으니 단지를 걷는 게 즐겁다며 또 칭찬해.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좀 달라지더라. 나무를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돕고 있는 사람이 생각나더라고. 나무의 건강을 위해 약을 뿌리는 사람들. 나무가 기울지 말라고 지짐대를 세우고 있는 사람들. 구슬땀을 흘려가며 나무들을 관리해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덕분에 나무는 나무로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었던 것이지.
보이는 부분에만 집중하는 이들은, 아파트 값을 올려주는 ‘나무’가 이 아파트 ‘값’의 주연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아니지. 한여름 한겨울 온갖 땀이란 땀은 다 흘려가며 나무들을 보살핀 그분들이 있어서 아파트 값이 오른 거니까.
영화 <오필리아>도 그래. 대부분 몰랐을 거야. 오빠도 몰랐고. -물론,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영화지만. <햄릿>엔 보이진 않지만, 그녀는 너무나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거. 그녀가 없었다면 햄릿도 <햄릿>이라는 극을 이끌어 나가지 못했을 거라는 거.
나무를 관리하는 분들이나, <햄릿>의 오필리아처럼,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주연’에 들지 못하고 ‘조연’도 아닌, ‘엑스트라’에 머물러 있을까 싶어. 당장, 한국이 일제로부터 독립했을 때도 그렇지. 알려지지 않은 열사가 얼마나 많을지. 숱한 고생을 한 분들. 그분들의 마음은 누가 알 아줄 수 있을지.
그래서일까. 이 <오필리아>를 보고 되게 기뻤어. 주연이 아닌 ‘조연’을 찾아줘서. 오필리아를 찾아줘서. 찾기 힘든 이들. 아무도 모르게 도움을 주고 있는, 그들을 기억하게 해 줘서. 그들 덕분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줘서.
*<오필리아>의 줄거리를 담진 않았어. <햄릿>과 다르지 않으니까. <햄릿>을 햄릿의 눈으로 보느냐 오필리아의 눈으로 보느냐, 그게 중요하니까.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