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엔 영화 내용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이 영화는 무니와 무니의 엄마 핼리. 그리고 친구들 잰시, 스쿠티와 경비원 보비가 나와서 해맑게 웃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
아, 그 웃음 속에 들어있는 그... 그 슬픔을 빼먹을 뻔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오빠가 좋아하는 독립영화 중 하나야. 이번에 두 번째 봤는데, 이전과 느낌이 같았어. 영화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행복해진다고나 할까. 이 영화의 10분의 8은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이들이 얼마나 해맑게 웃는지. 오빤 그 아이들을 통해 잃어버린 동심을 찾은 느낌이었어.
이 영화가 재미가 없을지도 몰라. 조금 단조롭다고나 할까. 그런데 오빠는 어떻게 그렇게 재미있게 봤을까. 궁금하지? 일단 오빠가 써 놓은 포인트를 보고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이미 봤다면, 오빠가 써놓은 부분을 참고해서 생각해보고.
이 영화에는 먼저 '아이들의 세계'가 나와. 아이들의 순수함으로 가득한 세상.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주인공 무니는 친구들이랑 차에다 침을 뱉어. 그것도 모르는 사람의 차에다가 말이지. 이해가 안 되지. 요즘 차에다 침을 뱉으면 어떠니. 경찰서에 신고하는 건 보통이고, 아주 크게 혼쭐이 나잖아. 근데 이 '무니와 친구들'은 이것을 '놀이'라고 생각하며 즐겁게 즐기지.
영화를 보다 보면 아이스크림 하나를 아이들 셋이서 나눠먹는 장면이 나와. 오빤 이 장면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아? 어떻게 이렇게 더럽지. 이건 너무 이상한 거 아냐?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더라. 나이가 들면 저런 건 꿈도 못 꾸잖아. 그냥 두 개 더 사고 말지 어떻게 셋이서 하나를 나눠 먹니. 청소년만 돼도 그럴 텐데. 근데 이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나눠 먹는 게, 어찌나 귀여운지.
아이들은 돈도 잘 빌려. 왜 빌려달라고 하는지 그 연유도 가관이야.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빌려달라내. 천식이 있는데, 치료할 때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좋다는 이유도 대고. 또 수영장에다가 생을 마감한 물고기를 그렇게 풀어놓았다네. 왜 그랬냐고 경비원 보비가 물으니 글쎄 "실험하던 거예요! 살려내려고 그랬어요!"라는 거 있지.
이 아이들은 아이들만이 바라볼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니? 그것도 그렇지만, 제일 재미있었던 건 아이들은 '어제의 적이지만 오늘은 친구'라는 거였어. 영화 속에 나오는 어른들은 그게 안 되는데.
<플로리다 프로젝트>에는 아이들의 세계와 대립되는 세계가 나와. '어른들의 세계'지. 먼저 당장 집세를 못 내고 있는 무니의 엄마가 보여. 무니의 엄마 핼리는 일을 안 해. 일을 할 생각이 없지. 마음껏 놀러 다니고. 엄마로서는 허용되지 않는 행동들을 하지. 그리고 싸구려 모텔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나오고.
이 영화는 말이야. 이렇게 한 번 어른이 되면, 어린이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이 점을 생각하게 하더라. 어른의 세계는 냉혹하고. 일절 양보가 없어서, 괴로워도 참아내고 견뎌야만 한다는 점도. 이 영화를 통해 관객은 어른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핼리의 처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겨.
어른들의 세계는 가혹해. 이 부분은 더 이상 쓰고 싶지는 않다. 밝은 이야기만 담고 싶어서. 어른들의 세상에 발을 디디는 순간 어린이의 세계가 그리워지니까. 가끔 생각하지 않니? 아무 걱정 없이 유치원을 다니던 때. 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던 그때. 건강 걱정하지 않으며 먹고 싶은 음식 먹고. 나이 듦을 걱정 않고 새해를 기다리던 그때.
'어른들의 세계'에서 살아야만 하는 어른들.
오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너무 씁쓸하더라. 영화 자체는 색감도 좋고 분위기도 밝은데, 알고 보면 어둠, 폭탄, 슬픔을 안고 있었으니까.
먼저, 오빠는 말이야. 오빠에게 어린이의 세계에 있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나더라. 네가 전에 놀이터에서 놀았던 때가 기억나냐고 물었었지? 오빠는 사실 그 놀이터가 어디 있었는지, 어떤 놀이기구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어. 너무 오래 전이기도 하지만, 오빠에게 그 놀이터가 그렇게 큰 의미가 없었던 것 같아. 놀이터란 한가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언제부턴가 들어서.
어린이들은 곧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고. 언젠가부터 지니고 있던 동심을 잊거나 잃지. 이 영화는 그런 점을 느끼게 해 주더라. 이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지나가다가 만난 친구와 벽이라는 것 자체도 없이 친구를 맺던 때가 언제인지. 누구를 만나면 먼저 경계부터 하게 되고,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닌지, 이상한 사람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고. 어쩌다 어른들은 이 아이들과 같은 그 해맑음. 그 깨끗함을 잃게 됐을까. 맹자의 <맹자>를 보면 "대인이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나와. 오빤 이 말을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올리게 되더라. 아무런 대가 없이 상대에게 베푸는 마음. 편견 없이 상대와 친구 하는 마음. 이런 게 대인의 자세가 아닐까 싶더란 말이지.
무니의 엄마는 아이처럼 살려고 해. 원하는 대로 놀고먹고. '어른'이란 책임감을 갖고 자신의 자녀를 챙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흔히 정의하는데, 무니의 엄마는 전혀 어른으로서의 자격이 없지. 이웃의 자동차에 침을 뱉어 폐를 끼친 무니에게 오히려 '대견하다'고 칭찬까지 하니 말이야.
무니 엄마, 핼리는 그래도 '엄마'야. 무니의. 구직 활동도 안 하고 미래에 대한 설계도 없지만 그래도 가정 안에서의 위치는 엄마지. 하지만 핼리는 본인이 결국 엄마라는 것. 어른이라는 것.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듯 해. 그 중간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어. 핼리가 무니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이 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안타까움이 남는 이유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영화는 시종일관 밝아 보이지만 결국 눈물을 품고 있었어. 비싼 모텔이라 듣고 여행 왔는데 알고 보니 싸구려 모텔, 무니의 동네라는 것을 안 신혼부부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고 봐. 겉모습만 보다가는,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아픔은 등한시하게 되는 것이지. 겉모습만이라도 '디즈니월드'이고 싶은 그 모텔. 이는 어찌 보면 어린이가 되고 싶은 어른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살지만, 그 내면에는 어린이로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
왜 오빠가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좋아할까. 어쩌면 오빠는, 어른이 되어 너무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일은 안 하고 살 수 없고. 당장 나이는 먹어 가고. 주위 친구들을 보면 본인의 방향대로 하나둘 나아가는데, 나는 그 친구들만큼 잘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고. 그래서 편하게 살았던 어린이 세계가 그리워져서, 이 영화를 찾게 되는 게 아닐까 싶더라.
지금이 가장 힘든 때일 수도 있어. 공부하느라. 수행평가도 벅찬데 시험까지 본다니. 그래도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 이 영화를 보면서 깨달았으면 좋겠다. 영화는 우리에게 후회하지 않을 '기회'도 주니까.
아, 퀴즈가 있어. 이 영화에서 경비원 보비는 어떤 역할을 맡고 있을까?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이상한 남자를 막아내고. 자신과 아무 연관이 없는 핼리의 방세까지 내주는데. 뭐지? 이 보비는 대체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영화를 보면서 생각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