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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을 Jul 21. 2021

미안해요,리키-택배 파업에대해

<미안해요, 리키>  


택배 파업이 있었지? 우리도 얘기 많이 나눴잖아. 택배 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힘들지. 마음대로 나가지도 못하고. 핸드폰은 다 걷어가고. 

 

오빠가 본 영화 중에 이때 보면 좋은 영화가 있어. 오빠가 택배업을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분명 택배업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렸다고 생각해. 

  

오빠는 이 영화의 감독을 되게 좋아해. 현대 사회에서 소외돼 고통받는 이들을 주제로 영화를 만드시거든. 그래서일까. 이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먹먹해져. 우리 사회에 이런 분들이 많이 있으니까. 나에게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안’ 보려고 해서 안 보는 것 같기도 하고.  



#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온갖 일을 다 했죠. 주로 건설 현장 일요. 기반 공사, 배수 공사, 굴착... 도면 뜨기, 콘크리트 치기, 지붕 작업, 바닥 작업, 도로포장, 판석 깔기, 배관 작업, 목공... 심지어 무덤도 팠으니 말 다 했죠.” -리키  


오빤 리키의 이 말을 보면서 괜히 마음이 아팠어. 리키는 상사가 되는 멀로이 앞에서, 안 해본 일이 없다며, 산전수전 다 겪은 것을 알려주잖아. 리키가 겪었던 수많은 노고는 이 한 줄로 요약돼.


그렇게 안 해본 일이 없는 사람이, 택배일까지 뛰어들었다는 건. 그만큼 택배 일도 힘이 든다는 거겠지.

     

근데, 인생이 언제나 평탄하다 확언할 수는 없다고 봐. 그건 어려운 것 같아. 지금은 편안한 일을 해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 그래서일까. 리키를 보면서, 그의 모습이 오빠의 내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누구나 두 번째 리키가 될 수 있는 것이지.  


코로나 사태로 직장을 잃는 이가 많아진 지금. 이 말은 심심치 않게 다가와.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못 구해서 힘들어하지. 며칠 전 뉴스를 보니 취업 준비생이 86만 명이라면서? 많아도 정말 많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 언제든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둘 수 있으니까. 다른 일을 찾아서 이 일 저 일 할 수도 있으니까. 


# 고용되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겁니다. 우린 승선이라고 불러요. 우릴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일하고 고용 기사가 아닌 서비스 제공자가 되죠. 고용 계약 같은 건 없고 목표 실적도 없어요. ‘배송 기준’만 지키면 돼요. 임금은 없지만 배송 수수료를 받고요. -멀로이  


센터의 장격인 멀로이는, 택배일을 시작하려는 리키에게 이렇게 말해. 그는 우리 일은 같이 하는 거라고, 고용 계약 같은 건 없다고 그러지. ‘우릴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일한다’면서 ‘같이’를 강조해. 이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그가 강조하는 ‘같이’는 직원들에겐 폭력과 같았어. 말이 ‘같이’이지, 현실은 참혹했지. 

 

리키가 일하기 어려워서, ‘대타’를 찾아달라고 멀로이에게 부탁했어. 정말 깍듯하게, 이번만 봐달라고 했지. 멀로이는 안 된대. 그러면서, 말해. 


“다들 나더러 ‘최고로 못된 새끼’라고 하는데, 잘못 알고 있는 거야. 난 불평, 불만, 분노, 화, 증오를 모조리 흡수해서 연료로 사용해. 그 에너지로 이 지점 주위에 보호막을 친다고. 여긴 전국에서 실적이 가장 좋은 지점이야. 내가 왜 최고인지 알아? 내가 이 기계를 행복하게 하니까. 수많은 집을 다니며 얼굴 보고 말 섞는 고객 중에 진심으로 자네 안부를 묻는 사람이 있어? 그들은 자네가 졸다가 버스를 박아도 신경을 안 써. 가격, 배송, 손에 쥔 물건 외에는 관심도 없다고. 그 모든 정보는 이 기계에 입력되고, 이 기계는 전국의 모든 까만 기계와 경쟁해.” 


이 말이 너무 와닿더라고. 오빠가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직장 문화를 듣고 알아가고, 사람들 틈에서 부대껴보니, 오늘날의 직장은 커다란 기계이며, 우리는 그 기계의 부품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거. 


이 영화에서는 ‘빨리빨리 해’라는 말이 많이 나와. 멀로이는 직원들에게 빨리빨리 하라고 시키거든. 시간이 없다고. 전화를 조금만 한다고 하면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얼른, 빨리, 일하라고. 전화할 시간이 없다고. 전화 조금 한다고, 뭐라고 하고. 이 영화를 보면서 오빠는 사람이 ‘도구화’되는 모습을 보게 됐어.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중받는 위치가 아니라, 멀로이의 ‘도구’로 이용돼. 도구는 어때. 쓰다가 말면 폐기처분 하지. 사람이 응당 지니고 있어야 될 자유나 정의는 없어. 도구니까. 무조건 상사가 하라는 대로만 해야 되지. 


오빠는 요즘 직장은 이런 게 문제 같아. 한 철학과 교수님께 들었던 말이 기억나더라. 자본주의의 문제가 이 거래. 다른 lsm은 모두 자기 절제를 수반하는데, 자본주의는 아니라는 거야. 이윤을 위해서는 더 많이 얻고, 더 많이 이기도록 무엇이든 허용되는 것이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양보하고 절제하면 손해를 보고, 지고 마니까.  


현대사회에서는 멀로이처럼 사는 게 성공의 지름길이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인간의 권리가 차선이 되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 그게 부리는 입장과 불려지는 입장이 다를 테고. 오빤 멀로이한테 물어보고 싶더라고. 멀로이 그대가 착취당하는 입장에 있다면, 정녕 행복하겠어요? 


# “리키 아내 애비에요. 병원에 같이 있어요. 얼굴을 심하게 맞았고 엑스레이 기다려요. 폐를 다쳤을지 몰라요. 머리는 검사도 못했고 근데 댁은 벌금이랑 기계값이나 떠들다니요. 제정신이에요? 자영업이라니. 주 6일 하루 14시간씩 당신을 위해 일해요.”-애비  


리키는 근무 중에 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갔어. 그리고 병원 진료를 받고 있는데. 멀로이에게 전화가 온 거야. 상식적이라면 많이 다쳤니, 힘들었니, 대체 어떤 애들이 그랬니. 위로하고, 공감해줘야 될 텐데. 


멀로이는 아니야. ‘돈’에만 집중해. 기계값은 얼마고. 물건값은 얼마고. 지극히 사람보다 돈이 우선인 사고방식이지. 얼마나 어이가 없었으면 애비는 안 하던 욕까지 해. 어떻게 사람이 다쳤는데 돈타령이냐고. 근데 리키는 오히려 묵묵히 들어. 아. 리키는 그렇게 사회의 작동방식을 ‘인정’하게 된 것 아닐까. 



이 영화는 택배업에 대해 간접경험을 하게 해 줘서 되게 좋은 영화였어.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모르는 부분을 화면을 통해서라도 느낄 수 있으니까. 영화는 시대를 반영한다고 해.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도, 기우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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