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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주 Oct 22. 2023

여기서 사내연애를요? 제가요?

토톡톡톡톡. 

    김다현 : 야 오늘도 좆같았다 진짜. 남들도 이렇게 사는 거냐

    쭈 : 왜 또 팀장이 지랄함?

    김다현 : 당근 맨날 지랄이지 뭐

    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쭈 : 하긴

    김다현 : 하 망할로ㅁ...

손톱을 열심히 화면에 부딪쳐가며 친구들에게 카톡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 저기 죄송한데….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옥상 올라오는 건 인아씨도 모르는데 누구지. 나는 앞에서 나타난 여자를 바라보며 입에 문 담배를 급하게 빼 뒤로 숨겼다. 물론 여자는 이미 다 봤을 테니 늦은 거였겠지만. 여기가 금연구역이었나?


    - 혹시 라이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 아? 아아, 네. 여기요.

    - 감사합니다.


틀렸다. 흡연자였구나, 다행이다. 처음 보는 분인데 다른 회사 사람인가. 얼핏 보니 그도 나와 같은 담배를 들고 있었다. 같은 담배를 피우는 게 세상에 한 두 명도 아닐 텐데 난 이럴 때마다 묘한 친밀감을 느끼곤 했다. 여자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들이마신 뒤 고개를 돌려 연기를 뱉었다. 그리곤 내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라이터를 돌려줬다. 나는 누군가가 가져다 놨는지도 모르는, 언젠가부턴 공용 재떨이가 되었을 그것에 꽁초를 비벼 넣었다. 키티 파우치에 라이터를 넣고 꾸벅 인사한 뒤 옥상을 나섰다.


가나다신문 꼰대 아저씨들의 눈을 피해 옥상에 올라오기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다. 입사 전에는 분명 '회사에서는 담배 안 피운다!!!'라는 엄청난 각오를 다졌던 것 같은데. 그 엄청났던 각오는 매일매일 무너져내려 초라해졌고, 이제는 내 머릿속에서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날 붙잡은 건 이성의 끈이었다. 내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국장이나 부국장이 보게 된다면? 어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 아저씨들은 본인들도 흡연자인 주제에 젊은 여자가 담배 피우는 건 꼴 보기 싫어했다. 본인들도 꼴 보기 싫은 모습인 건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어쨌든, 그 이성의 끈 역시 한 달 만에 날아갔다. 그 후로 나는 아저씨들이 회의실로 몰려 들어갈 때면 옥상으로 올라와 담배를 즐기곤 했다.

인턴 두 달 하고도 일주차 때부터는 계약직 전환 확정 통보를 받고 더욱 자주 올라왔다. 그래봤자 하루에 두 번이었다. 아침 회의 때, 오후 회의 때. 부장 직급을 단 아저씨들은 대체 누가 보는지도 알 수 없는 신문을 위해 하루에 두 번이나 회의를 한답시고 모였다. 그들이 진짜 의미 있는 대화를 주고받는지는 회의실 벽만 알 터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줄 알았던 그 여자와의 만남은 이후로도 이어졌다. 두 번째, 세 번째 만남 모두 옥상에서 이루어진 탓에 다른 회사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 회사 사람이었다. 아, '우리 회사'라니 소름 돋아. 어쨌든 네 번째에는 복사기 앞에서 마주쳤다. 그 사람도 내가 같은 회사에 다닐 줄은 몰랐는지 화들짝 놀랐다. 동시에 놀라고 함께 머쓱해진 둘은 그제야 인사를 나눴다.


    - 아, 안녕하세요? 같은 회사 분이셨구나. 몰랐어요.

    - 넵, 안녕하아세요.

왠지 조금 긴장한 탓에 목소리가 갈라져 올라갔다. 아 창피해.

    - 혹시 어느 부서 분이세요? 내 소개부터 해야겠구나. 저는 여기 문화·스포츠부에서 영화 담당하고 있는 성희원이에요.

    - 저는 온라인팀 인턴 김다현입니다! 자리는 쩌어기 구석에.

나는 손을 뻗어 내 자리 쪽을 가리켰다. 그는 내 대답에 입을 살짝 벌리고 '아하'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종종 봬요.

    - 넵.

    - 희원, 뭐 해!? 마감 지금 두 시간도 안 남았다, 얼른 올려! 남의 팀 인턴 괴롭히지 말고.


우리의 첫 대화는 문·스부장의 재촉에 그렇게 끝났다. 괴롭히는 거 아니었는데. 물론 부장도 알았겠지만 말이다. 왜인지 못내 아쉬웠던 나는 이름도 알았겠다, 메시지를 보내볼까 말까 오전이 다 가도록 고민했다. 그건 그 여자, 아니 희원선배도 마찬가지였는지 점심시간을 5분 앞두고 우리 팀 자리에 나타났다. 낯선 이의 등장에 나와 인아씨, 팀장은 잘못을 감추고 있는 것 마냥 화들짝 놀랐다. 우리 팀이 있는 구석 자리까지 오는 사람은 통상 온라인 편집팀 사람들이나, 트래픽 저조로 분노한 국장 뿐이어서다.


    - 조선배, 오늘 다현씨 저랑 밥 먹어도 되죠?

    - 어? 어어, 어어어 되지. 먼저 나가 봐.

    - 네에, 선배 맛점되세요~! 다현씨, 엘리베이터 앞에 있을게요, 챙겨 나와요.

    - 아 네네.

희원 선배의 모습이 멀어지자 팀장은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내 대답을 들으려 집중하는 인아씨의 모습도 눈에 선했다.

    - 너 성희원이랑 아는 사이였어?

    - 아뇨, 그냥 얼마 전에 회사 안에서 마주쳐서 인사드린 게 다인데요.

    - 그래? 알겠어 일단 가.

    - 넵. 두 분 식사 맛있게 하세요!


회사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자 내려가는 버튼을 눌러놓고 기다리고 있는 희원 선배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싱긋 미소 지었다.


    - 뭐 먹으러 갈래요? 뭐 좋아해요?

    - 저는 다 잘 먹습니다. 선배 좋아하시는 데 있으시면 가요!

    - 음, 그럼 오늘은 파스타 먹어요. 대신 다음엔 다현씨가 고르기.

다음? 우리에게 다음도 있는 건가? 같은 회사이니 당연히 계속 마주치긴 하겠지만. 나는 갑자기 친근하게 굴어오는 그가 당황스러웠지만, 자못 반갑기도 했다. 타 부서 선배와는 교류할 기회가 워낙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 이유가 전부였다.


우리는 그날 점심시간 한 시간 반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많은 공통점을 찾았다. 희원 선배는 나보다 다섯 살 많았고, 대학에서 국어국문을 전공했다고 말했다. 문학과 영화를 좋아해서 항상 문화부 기자를 꿈꿨다고도 말했다. 나도 문학과 영화를 좋아한다고, 문화부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 그런데 선배, 저랑 오늘 왜 점심 먹자고 하신 거예요? 갑자기 오셔서 좀 놀랐어요.

    - 아하하하, 다현씨는 놀라긴 했겠다. 우리 매체에서 담배 피우는 여자는 처음 봐서, 그래서 친해지고 싶었어요. 근데 진짜 공감대 많다, 우리.


그날 이후 선배는 나를 '다현'으로 부르며 말을 편하게 놓았다. 자주 점심을 함께했고, 그러다 퇴근 후에도 커피 한잔, 술 한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됐다. 팀장은 내가 희원 선배와 어울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그를 통해 본인도 편집국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고 여겼으므로 별다른 쉰소리를 얹지는 않았다.


나는 희원 선배가 나와 같은 것에 웃고 화내는 사람이라 좋았다. 영화나 책을 많이 보는 사람이라 그런가, 생각했다. 약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그래서 다른 회사 사람들과 달리 선배 앞에서는 말조심을 하지 않아도 돼 편했다. 마음껏 기득권을 욕하고 약자를 지지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봄부터 우리는 회사 밖에서도 만남을 이어오기 시작했다. 꽃을 보려던 게 아닌데 같이 영화관을 가다 보니 그 길에 핀 꽃을 함께 보게 되었고, 술 한잔하고 나서면 분홍빛으로 예쁘게 물든 저녁하늘을 함께 보게 됐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함께 예쁘고 좋은 것을 많이 나누게 되었다. 이건 계절의 탓도 크다. 쉽게 사랑이 움트고, 그렇게 싹튼 사랑이 쉽게 티 나는 계절이었다. 


감염병이 퍼지면서 함께 어딜 가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같이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는 그 계절 청계천을 열심히 걸었다. 우리 사이에 오가는 메시지와 전화가 늘어날수록 애정도 커졌다. 회사와 충분히 멀어졌다고 생각되는 곳에서는 손을 잡고 길거리를 걷기도 했다. 

이전에도 여자, 남자를 가리지 않고 사랑에 빠져왔던 나는 선배를 사랑하게 된 것이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선배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우리가 이미 연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정확히 말로 관계를 정의해 두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았다.


하지만 관계 정의를 결심했던 날 나는 그와 끝냈다. 만난다고 말한 적 없으니 헤어진 것이라고도 할 수 없겠다.


선배는 우리 아빠 같았다. 경상도에서 첫째 아들로 태어나 대학까지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정년퇴직까지 마친 그는 자신의 약자성을 쉽게 외면했다. 어쩌면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약자성을 받아들이지 못해, 딸인 나의 약자성까지도 매번 지우려 했다. 계약직 직원인 나를 앞에 두고 실업급여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고, 여성인 내 앞에서도 무고한 남성이 억울하느니 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나의 부친은 그런 사람이었다. 멀리 있는 기득권에게는 쉽게 공감했지만, 가까이 있는 나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워했다.


선배는 바로 앞의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는 실패했다. 그 점에서 우리 아빠와 같았다.


그날은 이상한 날이었다. 다른 때는 무엇을 말해도 서로 공감하고 통하던 우리였는데, 그날은 조금씩 계속 어긋났다. 하필이면 월급날이었다.


    - 다현, 오늘 월급 받았으니까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 엥, 선배 월급 들어왔어요?

    - 당근ㅋㅋㅋ 아침에 6시 땡 하면 들어오잖아.

    - 진짜로요?? 저는 한 번도 그런 적 없는데??

    - 나는 매번 6시에서 6시5분 사이에 들어오던데, 뭐지?

    - 저는 오후였는데 항상... 심지어 선배 저 저번 달에는 다음날 받았어요.

    - 아, 네가 말하니까 기억났어. 수습땐 아무 때나 들어왔었다 참.

    - 와 진짜 황당하다. 무슨 월급 넣어주는 시간까지 다르게 하면서… 차별 대박.

    - 야ㅋㅋㅋㅋ 이게 무슨 차별이야ㅋㅋㅋㅋㅋ


나는 그 말에 놀라 선배를 쳐다봤다. 선배는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웃음을 뚝 멈췄다. 우리 사이에는 이상한 정적이 맴돌았다. 나는 진심으로 이게 차별적 행위라고 느꼈으므로 대충 웃음으로 무마할 수가 없었다. 선배도 침묵하는 모양새를 보니 날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3분 정도 아무 말 없이 걷다가 저녁을 먹기로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대화는 뚝뚝 끊겼고, 우리는 삐걱댔다.


    - 선배는 문화부 있으면서 힘들지 않아요? 매주 시사회 가고, 또 인터뷰나 리뷰 기사 올리려면 재밌어도 힘들 거 같아요.

    - 그래도 뭐 정치부나 사회부 있을 때보다는 훨씬 좋아.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 거기 있을 때는 안 맞아서 진짜 힘들었거든.

    - 그렇구나. 저도 나중에 기회 되면 문화부에서 일해보고 싶어요.ㅎㅎ

    - 그러면 좋을 텐데 사실 온라인 팀에서 지면으로 오긴 불가능하니까.

그 말은 사실인데도 망치가 되어 내 머리를 쳤다.

    - 아… 그건 그렇죠.

    - 같이 일하면 재밌을 텐데, 그치?

    - 네에.. ㅎㅎ 저는 국제부도 재밌을 거 같아요. 제가 그쪽에 관심 좀 많아가지구. 아 맞다 선배 혹시 우리 공용 외신 아이디 같은 거 있는지 혹시 아세요?

    - 응 아마 있을걸? 왜?

    - 저희도 외신 기사 쓰는데 유료 페이지는 못 들어가서 재밌는 것도 못쓸 때가 있거든요. 아이디 공유받으면 좋을 거 같아서요. 혹시 아시나 하구 ㅎㅎ

    - 에이 근데 그건 국제부가 주로 쓰는 건데. 온라인팀에서 쓰긴 좀 그렇지.

    - 뭐가 좀 그래요? 어차피 기사 쓰는 용으로 회사에서 비용처리 해주는 걸 텐데...

    - 그건 그렇긴 한데. 국제부 부원들은 좀 꺼리지 않을까 싶네.


이 대화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식사를 마쳤다. 그리곤 별 다른 말 없이 지하철 역까지 나란히 걸었다.


    - 저는 들를 데가 있어서, 먼저 들어가세요 선배.


나는 꾸벅 인사한 뒤 지하철역을 등지고 걸었다. 볼 일 있다는 건 거짓말이었지만 그와 더 이상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끝났다. 쉽게 시작한 사랑이기 때문인지 마음을 접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사내연애는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아 복사기까지 다 알게 되기 마련이라던데, 내 연애는 복사기가 알기도 전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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