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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주 Oct 22. 2023

대망의 첫 기사

     - 자 오늘은 다현이도 기사를 써보자.


출근 2주 차 어느 날의 아침 6시. 팀장이 오늘따라 유난히 모기 같은 목소리를 뽐내며 말했다. 그는 평소답지 않게 허리를 곧게 피고 앉은 채로 모니터너머의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는데 그 폼이 왜인지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별 것도 아닌데 저렇게 비장하게 말할 이유가 있나 싶었다.


내가 앞으로 쓸 기사에 기대하지 않는 것, 2주간 받아온 교육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팀장은 내게 오보 방지 등을 위한 '철저한 교육 원칙'을 내세워 2주간 교육받을 것을 명했다. 그러나 실상은 팀장이 교육을 귀찮아했기 때문에 나의 업무 투입 시기가 2주 유예된 것이었다. 첫째 주에는 업무 및 분위기 파악, 기사 모니터링만 했다. 그러니까 첫날과 마찬가지로 카톡, 인스타, 트위터(지금은 엑스가 된), 온라인커뮤니티, 해외 커뮤니티 레딧, 해외 가십지 사이트 등을 떠돌았단 얘기다. 일주일 내내!


둘째 주에는 팀장도 안 되겠다 싶었나 보다. 그는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오늘부터 기사 작성 교육을 시작하겠다'라고 선언했다. 문제는 회사에 복귀한 뒤에 그 일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인아씨에게 떠넘겼다는 점이다.


    - 아니, 우리 팀에서 한 명은 일을 해야지 않겠어? 근데 지금 다현이 말고는 너랑 나만 있는데 팀장인 내가 자리를 비울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부득이하게 네가 이번만 다현이를 교육하는 거지.

    - 선배 그래도 좀…. 저도 인턴 한 지 고작 세 달 밖에 안 됐잖아요. 맨날 저 기사 못쓴다고 혼내시면서. 근데 제가 누굴 가르쳐요. 말도 안 되는 거 아니에요?

    - 아니 누가 뭐 어려운 거 가르치래? 그냥 대충 우라까이*하는 법만 우선 알려줘. 우리도 일손 달리는데 저거 하나라도 더 빨리 써먹어야 될 거 아냐. 우라까이 익숙해지면 나중에 내가 제대로 교육하면 되고. 네 말대로 3개월이나 됐는데 지금까지 네가 일해온 거만 알려줘도 일단은 어떻게든 되겠다. 교육은 대충 오늘내일 중으로 마무리하고. 알겠지?


두 사람의 대화가 파티션을 넘어 그대로 내 귀로 들어왔다. 고개를 살짝 올려 그 너머를 보니, 인아씨가 바퀴 달린 의자를 팀장 쪽으로 끌고 가 앉아서 항의 중이었다. 그러나 인아씨의 말은 팀장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팀장은 귀찮은 일 하나 덜어내 신이 났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다시 모니터 속으로 거북목을 쭉 빼 넣었다.


곧바로 인아씨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왔다.


    정인아 : 파일: 업무 메신저 설치 및 사용 가이드.hwp

    정인아 : 파일: 기사입력기 이용법.hwp

    정인아 : 파일: 자살보도 가이드라인.hwp

    정인아 : 파일: 가나다신문 보도 지침.hwp

    정인아 : 파일: 가나다신문 표기법.hwp

    정인아 : 파일: 참고 사이트 정리.hwp


연달아 6개가 왔는데, 읽어보니 업무용 페이지와 메신저 등을 정리해 놓은 것들이었다. 아니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 공유 좀 해주지 존나 너무하네. 일주일 동안 이거나 읽었으면 됐을 텐데. 주르륵 온 파일을 내려받는데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정인아 : 다현씨 이거 일할 때 참고하시면 돼욥!

   정인아 : 일단 이거 다 읽어보시구여!! 기사입력기 쓰려면 회사 홈페이지에서 이메일 만드셔야 되거든요?                 그거랑 메신저 가입하시고 아이디 단톡에 올려주세욥! (이모티콘)


짜증을 내서 무엇 하나, 이건 인아씨 잘못이 아니다. 모든 건 팀장의 탓이다. 짜증을 애써 누르며 '넵!!'이라고 외치는 명랑한 그림체의 이모티콘을 하나 골라 답했다.


다 확인해 보니 파일만 여러 개일 뿐 내용이 많지는 않았다. 보도 지침과 자살보도 가이드라인은 기본 매뉴얼이어서 필요할 때 꼼꼼히 읽어보면 될 것 같고…. '참고 사이트'도 외신 링크만 주욱 나열되어 있는 파일이었다. 나중에 하나씩 북마크 해놓으면 되겠고….

표기법은 좀 중요할 것 같은데? 파일을 열어보니 매체에서 발간한 정식 스타일북은 아니었다. 오히려 인아씨가 일하면서 지적받은 사항을 정리해 놓은 내용이 열거되어 있었다.

SNS (X) 소셜미디어라고 쓰기.
네티즌 (X) 누리꾼으로 쓰기.
줄임말 (X) 줄임말 쓸 거면 처음에 '풀네임(줄임말)' 써준 뒤 쓰기.
바로 직전 달은 몇 월로 쓰지 않기. 지난달로 쓰기. 바로 다음 달도 마찬가지.
통신사 인용 가능.
사진은 기사입력기 내에서 검색되는 것만 쓰기.
 ⁞


와, 이런 걸 공유해 주다니. 그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었다! 단순한 내 뇌는 짜증을 내려놓고 인아씨에 대한 고마움을 가득 채웠다. 그 뒤로 인아씨의 번거로움을 빨리 덜어줘야 되겠다는 생각이 이어졌다. 나는 재빨리 메신저 다운로드, 회원가입, 이메일 생성을 마쳤다. 그리고 단톡방에 공유했다.

    김다현 : 메신저 아이디 dhdh, 이메일 dhdh@ganada.com 입니다!

    정인아 : 넵 

     cho : ㅇㅋ


그때 인아씨 쪽이 부산스러워졌다. 벌떡 자리에서 솟아 오른 인아씨는 품에 노트북과 마우스 패드, 무선마우스를 안고 있었다.


    - 다현씨 잠깐 회의실로 오세여. 저 먼저 가있을게요.

    - 네네!


나도 그와 같은 것들을 빠르게 챙겨 입구 옆에 딸린 작은 회의실로 향했다. 처음 들어가 본 회의실은 그냥 일반 회의실 같았다. 입구 바로 앞에 빔프로젝터가 있었고, 맞은편 창문 쪽에 스크린이 내려져 있었다. 그 사이에는 길쭉하고 폭이 넓은 회의용 책상이 있었는데, 어깨를 부딪치며 다닥다닥 붙어 앉으면 성인 열댓 명 정도는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그렇게 쓰고 있었는지 의자들이 다리를 겹치고 힘들게 끼어 들어가 있었다.


인아씨는 회의실 입구를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내가 들어가자 옆자리 의자를 빼주었다. 그곳이 내 자리구나, 나는 잽싸게 문을 닫고 인아씨의 옆으로 가 앉았다. 우리 둘의 자리가 너무 가까워서 어색한 사이가 더 멀어질 것만 같았다. 그때 인아씨가 한글 빈문서를 열며 입을 뗐다.


    - 사실 교육이라고 할 만 한건 없는데, 그냥 일 하기 싫어서 불렀어요.ㅎㅎ 우리 얼른 끝내고 좀 놀다가 돌아가죠.ㅎㅎㅎ

    - 엇? 저는 그럼 너무 좋습니다 ㅋㅋ

    - 일단 가르쳐 드릴 거는... 그냥 사실 베껴 쓰는 거거든요? 그래서 어려울 건 없어요. 그냥 베낀 거 많이 티만 안 나게 하시면 돼요. 왜 영어로 패러프레이징(Paraphrasing) 한다고 하잖아요, 그냥 그거라고 생각하시면 쉽죠? 이따 제가 한번 보여드릴게요.

    - 아하, 넵.

    - 음 그리고…. A통신 같은 통신사 꺼 기사는 그냥 그대로 쓰셔도 될 거예요. 어차피 전재료 내고 계약 맺고 쓰는 거라서 괜찮다고 들었어요.

아 맞다! 제일 중요한 거는 기사 안 겹치기!!! 이거 진짜 진짜 제일 중요하거든요? 다른 매체 말고 우리 매체에서 겹치면 안 돼요. 이거 겹치면 포털에서 뭐 벌점 매긴다고 하던데? 잘은 모르겠고요, 여튼 그래서 이게 회사에서 제일 예민하게 보는 거. 그러니까 뭐 쓰시기 전에 우리 회사에서 같은 거 나왔는지 검색 꼭 해보셔야 해요! 알겠죠?

    - 네넵. 기사 겹치지 않기. 넵 알겠습니당.

    - 기사 겹치면 선배 진짜 지랄하니까 조심하셔야 됨다. 그리고 겹치면 매번 우리 탓 되고, 기사도 우리 거만 삭제돼요. 좀 짜증 나는 부분이 있죠. 나중에 알고 기분 나빠하시지 말라고 미리 말씀해 드리는 거.

      이거 말고는 딱히 없는 거 같은데요? 일단 지금은?

    - 넹넹.

    - 기사는 처음에는 쉽고 짧은 날씨기사나 연예 먼저 쓰시면 좋을 거 같구요. 좀 익숙해지면 사회나 정치인 페북, 외신 정도 쓰면 될 것 같슴당! 아 쓸 때는 원문 꼭 확인은 해보시구여.

    - 넵!

    - 아 기사 쓰는 법 보여드린다 했었지. 그거 이렇게 하시는 거예요.


인아씨는 포털에서 한 연예인 인스타그램을 검색해 기사 창을 열었다. 그는 기사 전문을 긁어 컨트롤 씨를 누른 뒤, 한글 빈문서를 열고 컨트롤 브이를 눌렀다. 그리곤 "최근 드라마 '연인의 인연'으로 인기 상승세를 타고 있는 배우 나배희가 인스타그램으로 근황을 알렸다"라는 문장을 "최근 드라마 '연인의 인연' 주연을 맡아 활약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배우 나배희가 자신의 근황을 공개했다"라고 고쳤다.


    - 이런 식으로. 아시겠죠? 그리고 뒷부분은 뭐 이 배우가 인스타그램에 쓴 글 내용은 바뀌는 게 아니잖아요. 그니까 서술어만 말했다, 밝혔다, 했다, 썼다, 적었다, 덧붙였다 같은 걸로 바꿔주면 돼요. 연결어도 이어, 그러면서, 아울러, 반면, 이런 거 적당히 넣어서 써주심 되고요.

    이제 진짜 끝!!!

    - 감사합니다아!


나는 뭐랄까, 문화충격이라고 하나 이런 걸? 어쨌든 큰 충격을 받았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수많은 기사들이 이렇게 복제로 생산되는 거였구나, 누군가 뒤통수를 가격한 것만 같았다. 결국 남의 걸 베끼는 일인데 그럼 내가 '인턴기자'라고 할 수 있는 건가?

하지만 이런 고민이 민망해질 만큼 나는 앞으로 많은 '우라까이 기사'를 생산하게 된다. 그 시작은 이 교육이 있던 바로 다음날부터였다.


내 첫 기사는 <배우 한강심 "4년간 암투병, 죽을 고비 넘겼다">가 됐다. 60대의 중견 배우인 한 씨가 아침 방송에 나와 힘겨웠던 투병과정을 밝혔다는 내용이었다. 고작 다섯 줄짜리 기사를 방송을 보지 않고 작성했다. 나는 거기에서 어떤 성취감을 느낄 수도 없었다. 오히려 머쓱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팀장과 인아씨는 그 기사가 출고되자마자 축하한다는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급기야 팀장은 축하해야 한다며 퇴근 후 짧은 회식을 하자고도 했다.


나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떨칠 수 없었다. 한참 나중에야 깨닫게 됐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기자'로서의 어떤 행위도 하지 않고 그 타이틀만 가져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깨우친 뒤로도 부끄러움은 자주 나를 찾아왔다.


*우라까이 : 신문·방송 업계에서 쓰이는 일본말 속어. 타사의 기사 일부만 바꾸거나, 타사 기사 여러 개를 조합해 새 기사를 만드는 행위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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