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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주 Oct 19. 2023

쎄할 때 발 빼는 것도 재능

나는 어떻게 이 좆같은 곳에 오게 됐는가? 그건 내가 26살을 앞둔, 25살의 연말을 살고 있던 취준생인 것에서 기인한다.


대입 후 휴학 한 번 없이 칼졸업을 한 나는 23살의 겨울부터 2년 동안 '수료생'의 이름을 한 백수로 생활했다. 학교에서 하는 특강도 매주 듣고, 매일 같이 채용사이트 공채달력을 들락날락하며 지원할만한 곳을 체크하고, 자소서를 어찌어찌 써서 제출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탈.


그건 내가 학교만 다녔기 때문이라고 모두가 입모아 말했다. 전공은 언론정보학에 부전공은 문예창작과, 이것만으로는 취업이 될 리가 없다는 말이었다. 다들 대외활동이나 인턴 같은 걸 미리 해두지 않은 날 타박했다. 나는 학교 다니는 것만도 힘에 부쳤는데 그런 걸 어떻게 하겠는가. 자존감과 자신감이 손잡고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취준 2년 만에 나는 몹시 조급한 사람이 됐다. 교내 홈페이지에서 인턴 채용 공고를 찾았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게 '가나다신문 인턴 3개월 -마감 임박-'이었다. 아마 교수님이 지인의 부탁을 받고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나는 이 글을 봤으면 안 됐다. 하필이면 마감이 당장 그날이었으니 이것 저것 재고 따질 겨를도 없었다. 미리 써둔 것 중 적당한 것을 골라 제출했을 뿐인데, 그게 합격이 됐다.


하여튼, 지금 생각해 보면 면접 때부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쎄할 때 발을 뺐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내겐 그런 탁월한 재능이 없었다.


면접은 2:1로 진행됐다. 팀장과 인사부장이 회의용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팀장은 면접 당시에도 검은색 맨투맨을 입고 있었다. 그는 왠지 어깨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시종일관 시선을 책상 아래로 떨어뜨리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 밑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면접자를 앞에 두고 저래도 되는가, 조금 무례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인사부장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50대 초반처럼 보였는데 어쩐지 군인 같은 느낌이 풍겼다. 머리도 2:8로 단정히 넘긴 데다 허리와 어깨도 딱 피고 허벅지쯤에 양손을 얹은 모양새가 그랬다. 둘이 나란히 앉은 꼴이 교무부장과 혼나러 불려 온 학생 같았다.


인사부장은 인자해 보이는 인상과는 다르게 이상한 사람 같았는데 그건 그가 반말로 일관하며 비정상적인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 김다현 지원자는 결혼을 하면 퇴사를 할 것인가?

    - 저는 비혼주의자라 결혼 계획이 없습니다.

    - 허허... 비혼주의라면 요즘 페.. 페미? 뭐 그런 건가?

    - 예?


그는 내 대답을 바란다는 듯 미소 지으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내가 여기서 사상검증을 당하는 건가. 정치적 스탠스도 물어볼 참인가! 하지만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 저는 제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혹시 여기서 일하는 데 문제가 될까요?

    - 아니, 아니. 당연히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한 번 물어본 거야. 하하하하.


하나도 웃기지 않은데 그는 혼자 웃었다. 옆에 있는 팀장은 살짝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는데,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다시 스마트폰을 향해 고개를 처박았다.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이상한 행동이었다.


    - 그럼 워라밸은 중요하게 생각하나? 일이라는 거는 하다 보면은 제 때 끝나지 않을 수도 있고 말이야, 특히 기자는 갑자기 급한 일이 터지고 하면 퇴근 후에도 일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괜찮겠나?

    - 아...


머릿속에 위험 신호가 울렸지만 무시하고 재빠르게 그나마 모범답안이라고 할 만한 걸 골라 답했다.


    - 워라밸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저는 이제 일을 배우는 입장이니까요. 지금으로서는 워라밸을 찾는 것보다는 일을 빨리 배워서 제 몫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야근이나 추가근무가 발생한다면 물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시키면 해야지 뭐 어쩌랴'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인사부장은 꽤나 마음에 들었던지 싱긋 웃어 보였다. 그는 내 이력서로 추정되는 서류를 모아 탁탁 정리하며 옆의 팀장에게 물었다.


    - 조팀장은 뭐 물어볼 거 없고?


그는 대답대신 고개를 저었다.


    - 그럼 오늘 면접은 여기까지. 결과는 우리 직원이 며칠 뒤에 전화로 알려줄 거야.

    - 넵, 감사했습니다!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 나왔다. 면접관들의 태도와 내가 받은 모든 질문이 이상했기 때문에 여기는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건물을 나섰다.


그렇지만 조급한 취준생의 마음이란 눈까지 가려버리는 법. 나는 바로 다음날 합격 통보 전화를 받고 출근을 결정해 버렸다.

인생이 고통스러워지는 것? 결국 다 내 탓이었다.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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