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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주 Oct 19. 2023

잘못된 출근(2)

'cho님이 김다현님과 정인아님을 초대했습니다.'

12시쯤 카톡 단체방이 하나 생겼다. 맞은편에 앉은 분 이름이 정인아구나, 선배라고 불러야 하나? 생각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cho : 여긴 업무방ㅋ

    cho : 우린 웬만한 건 다 카톡으로 

아, 업무방이구나. 나는 바로 인사를 갈겼다.

    김다현 :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같이 일하게 된 인턴 김다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이모티콘)

    정인아 : 안녕하세요~

    cho : 다들 일 대충 마무리했으면 회식 가자

    cho : 일어나


그러더니 다들 주섬주섬 일어나 겉옷을 입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 일어나 외투를 걸치며 생각했다. 세명인데 무슨 회식? 그 착각은 10분 뒤에 깨졌다.

웬 고깃집 2층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우리는 4인용 테이블 3개가 나란히 붙은 곳으로 안내받았다. 가보니 이미 7명 정도가 앉아있었는데, 가운데 자리에 앉은 국장과 부국장 얼굴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때 국장이 말했다.


    - 자, 온라인부서 회식은 또 오랜만이네. 다들 먹고 싶은 거 시켜, 술은 싫으면 안 마셔도 되고!


말은 그렇게 했으면서 국장은 바로 점원을 불러 후다닥 주문을 마쳤다. 잠시 후 우리 앞에는 삼겹살과 소주, 맥주 각 1병씩이 놓였다. '점심에 술 마셔도 돼?' 하는 생각과 '싫으면 안 마셔도 된다는 그 말도 거짓말이구나'하는 생각이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출근 3일 차에 깨닫게 된다. 기자만큼 업무시간 내에 술을 많이 먹는 직업은 없다는 사실을. 


어쨌든 첫날부터 회식에 낀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기를 구웠다. 내가 막내가 분명하니 고기 굽는 것도 내 역할일 게 분명했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주고받는 와중에 내게 할 일이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들은 3분에 1번씩 '트래픽'을 얘기했고, 여러 포털사이트를 거론하며 욕을 해댔다. 중간중간 한숨과 웃음도 있었다.


혼란한 고기 굽기 시간이 지나가자 건배사 타임이 돌아왔다. 아직도 건배사를 시키는구나 생각했는데 웬걸, 국장이 건배사 중독이었다. 혼자 건배사 3개를 외쳐 우리를 3번 마시게 하고는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가면서 건배사를 하라고 시키는 게 아닌가. 사람들은 익숙한지 건배사를 준비해 온 듯했다. 나는 원망의 눈으로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팀장과 정인아씨를 잠깐 노려봤다. 알고 있으면 귀띔 좀 해주지 진짜 너무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내 눈빛은 그들의 무관심함에 튕겨져 나왔다.


하필이면 내가 세 번째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 외쳤다.


    - 안녕하세요. 오늘 새로 온 온라인팀 인턴 김다현입니다. 제가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하면 잘 왔다고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잘 부탁드립니다!

    - 잘 왔다!


나는 재빠르게 건배를 하고 목구멍에 소맥을 들이붓고 자리에 앉았다. 너무 창피했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려 애썼는데, 귀가 빨개진 탓에 아마 다 들켰을 게 분명했다. 수치스러움에 잠겨가고 있던 탓에 다른 사람들이 어떤 건배사를 했는지는 듣지도 못했다.


건배사 타임이 끝났을 때쯤 내 귀도 트였다. 수치스러움의 정도가 '일상생활 가능' 수준으로 내려간 듯했다. 회식은 막바지를 달려가고 있었는데, 이미 두 시간은 먹은 뒤였다. 국장은 주머니에서 흰 봉투 두 개를 꺼낸 다음 곧 팔 벌려 뛰기를 할 것처럼 팔을 양쪽으로 팍 하고 펼쳤다. 그의 어깨는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놀란 듯 '뚝' 뼈소리를 냈다.


    - 자 이거 팀장들 받어~. 연말인데 팀원들 맛있는 건 또 사줘야지. 그래야 또 연초에도 일할 힘이 생긴다고, 허허허허.


여긴 법인카드 대신 현금을 주나 보다 생각하는데 예상치 못한 말이 귀에 꽂혔다.


    - 아이 나 한창 때는 이런 거 받으면 다 같이 돈 모아서 여자 나오는데나 가고 그랬는데 말이야. 요즘은 그럴 수가 없지?

    - 헐...


국장의 어깨뼈만큼이나 놀란 내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다행히 소리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는지 가까이 앉은 몇 사람 정도만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이런 좆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실제로 보다니, 그 좆같은 생각을 입 밖으로 내다니, 저게 부끄러운 건지도 모른다니, 이런 좆같은 인간이 국장인 곳에서 일해야 한다니!!!!! 출근하기로 한 게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후회가 마구 밀려왔다.


분위기가 조금 싸해진 걸 국장 본인도 느꼈던지 그는 주섬주섬 테이블 위에 뒀던 스마트폰과 라이터, 담배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는 외투를 손에 쥐며 말했다.


    - 먼저 갈 테니 다들 커피 마시고 오라고.

    - 잘 먹었습니다~

    - 국장 조심히 들어가세요.

    - 잘 먹었습니다 국장!


다들 엉거주춤 일어나 외쳤다. 나는 인사하지 않고 잠자코 앉아 있다가 팀장이 식당을 나설 때 그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아, 몹시 좆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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