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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작가 Sep 21. 2020

군복은 벗었지만

바이러스 게놈 복제가 충분히 진행되면 이제 세포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먼저 바이러스 게놈을 보호할 캡시드가 조립된다. 이후 외피가 없는 바이러스는 대개 세포막을 용해시켜 세포사멸과 함께 밖으로 나간다. 외피가 있는 바이러스의 경우 착외피 단계를 거친다. 세포 밖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바이러스 겉껍질을 얻는 단계다. 이 과정을 식물의 눈(bud)이 돋는 것에 빗대어 출아(budding)라고 한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세포의 원형질막을 통해 출아하지만, 소포체나 핵막을 통해 출아하는 경우도 있다. 세포의 막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 외피가 만들어진다. 풍선을 손으로 밀면 손가락을 따라 고무가 씌워지는 것과 비슷하달까. 따라서 어디서 출아하느냐에 따라 바이러스 외피의 성분이 달라진다. 즉, 바이러스 외피의 지질 성분은 그것이 출아하는 막의 지질 성분과 동일하다. 외피형 바이러스의 입자 조립과 착외피는 순차적으로 수행되기도 하고, 두 단계가 공조하면서 동시에 수행되기도 한다.




군 복무 중 늘 꿈꿨다. 직책보다 내 이름으로 불리기를, 내가 계획하는 하루를 살기를 말이다. 하지만 매번 '민간인'이 되기를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잘 되지 않아 마음을 접었을 뿐, 어쩌면 오히려 진짜 군인이 되기를 더 절실히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제2 연평해전 때에 그랬고, 천안함 피격 사건 때 그랬다.  

천안함 피격 사건 때는 나도 같은 서해 바다에 있었다. 천안함은 경비 임무 수행 중이었고, 나는 연합훈련 중이었다. 사건이 일어났고, 급하게 훈련이 중지되었다. 사건 장소로 전속력으로 달려가던 그날 밤, 나는 내 어깨의 견장과 내가 입은 군복의 무게를 실감했다. 침몰된 선체와 실종된 동료를 찾는 기간 내내 무력했고, 동시에 피가 끓었다.


누구보다 군인다워지고 싶었다. 매섭게 부하를 통솔할 줄 몰라 군인답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휘통솔의 방점이 매서움이나 권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말 못 하는 어려움을 알아보는 따스함을 가졌고 공감과 화합할 수 있는 친근함이 있었다. 나의 이런 면모가 군인답지 않다 평을 받게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내 성격이 그러한 것을. 내 성격대로 대원들을 아끼는 방법이었고,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나름의 방식이었다.

군인답기 위해 본성을 숨기고 성격을 바꾸려 애써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군인다움의 공백을 메꿔보려 업무만큼은 철저히 임했다. 해야 할 일 앞에서는 날카로웠고 훈련 때는 매서웠다고 자평한다. 그럼에도 마치 나에게는 군인의 DNA는 없는 듯 보였다.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지만 누구나 알 수 있는 평가. 나는 그게 늘 속상했다.


다정하고 따뜻한 남군도 많았지만 같은 포지션의 여군에게서 남군과는 다른 의미를 찾아내는 이들의  입방아는 나의 탓이 아니었다. 나의 날카로움과 매서움을 짜증과 히스테리로 생각하는 이들의 찌푸린 이맛살도 내 탓이 아니었다.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매번 주눅 들었고 자책했다. 그리고 두려웠다. 그들의 평가처럼 내 웃음이, 나의 친절이 군 기강을 해치는 것일까 봐, 병사들의 군기를 해이하게 만드는 것일까 봐 내색하지 않는 마음 한편이 쪼그라 붙었다.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로 나는 더 '군인다움'에 집착했고, 좀처럼  냉철한 군인상에 가까워지지 않는 나를 원망하며 채찍질했다. 나와 내가 속한 부대를 위해서 진심으로 열과 성을 다해 공부하고 훈련하면서도 내가 나에게 맡겨진 임무를 감당해낼 깜냥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스러웠고, 실전이 닥쳤을 때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나에게 군 생활이란, 이토록 끊임없고 무자비한 자기 검열의 시간이었다.




올해로 퇴역한 지 8년 되었다. 군 복무했던 시간과 거의 비슷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군대에서의 기억이 생생하다. 남편은 가끔 내가 기억하는 디테일에 놀라고 각 잡는 집안 정리에 아직도 군인인 거냐며 놀린다. 군 복무 중에 습득하고 체득한 여러 습관들은 이미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내가 군인이었음을 몰랐던 이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 정말?"과 "어쩐지~"라는 반응을 세트로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제대로 군인다웠던 적 별로 없고, 그렇다 평가받은 적 또한 적지만, 군인이었음이 숨겨지지 않나 보다. 바이러스가 출아하는 위치에 따라 막 성분이 달라지듯, 나 역시 '군대'라는 한 시절을 입었기 때문이겠지.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아니다. 그 시절이 아니다.

미치도록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온전히 소속되기를 눈물 나게 바랬던 그때. 치열했고 뜨거웠던, 극복하고 싶었고 살아남고 싶었던, 그때 그 시절의 찬란했던 내가 그립다.


그러니 매일 고꾸라져도 포기하지 않으련다.

막을 뚫고 나가보자.

단단한 막일수록 단단한 갑옷이 되어줄테니,

무너지는 오늘을 찬란했다 여기는 내일이 오리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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