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단함이 추억을 될 때.
처음 인생이 고단하다고 느낀 게 언제일까?
아마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리라 생각한다. 고등학교 시절은 인생을 살며 처음으로 어깨에 무게를 짊어지게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와는 비교되지 않는 중압감, 학생이라는 책임감, 거기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라는 주변의 시선과 말들, 성적에 따른 대우의 차이와 경쟁... 하지만 그보다 더 이 시기를 힘들 게 하는 것은'처음 느껴보는 강한 억압'과'자유의 상실'이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두발 기준이 엄격했다. 머리는 무조건 단정한 스포츠머리에 3cm가 넘어서는 안됐다. 교복 기준도 꽤 까다로웠고 이를 어겼을 시 선생님들이 학생을 체벌하는 건 매우 흔한 일이었다.
강제로 머리를 한 움큼 깎거나 회초리로 때리는 건 양반이고 손이나, 당구대가 체벌의 도구로 등장하기도 했다. 거기다 성기를 꼬집거나 비트는 일도 있었다.
남고에 다녀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그땐 이걸 무섭게 느꼈을 뿐, 이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다. 물론 이제 와 선생님들에게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때는 그게 보통이었고 그것도 교육의 일부라 여기던 시절이었으니.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야간 자율 학습도 필수였다. 그러다 보니 겨울이 되면 해가 뜨기 전에 등교하고 해가 지고 나서 하교하는 일이 흔했다. 음식은 전부 급식으로 제공됐고 옷은 거의 교복만 입고 살았다.
"학생이라는 죄로 학교라는 감옥에서 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졸업이란 석방을 기다린다."
지금 보면 약간 오글거리기도 하는 이 문장이 그때는 가슴을 절절하게 울렸다.
지금도 여전히 학생들이 이 문구를 인용하는 걸 보면 좋아졌다 해도 이 대한민국에서 학교는 학교고 학생은 학생이라는 걸 느낀다.
난 당시 매일 석식시간에 창밖으로 지는 해를 보며 삶의 의미를 고민하곤 했다.
'하루가 없고 삶에 의미가 있는가?
'이렇게 해서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일까?'
아침에 등교할 때 아이들을 보면 모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하교할 때는 지정된 곳으로 가듯 기계처럼 학원으로 향했다. 나를 포함한 아이들의 움직임에는 생동감이 없었다.
그 시절 창 밖을 보며 태어나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었다.
물론 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고 지금 살아있다. 그리고 그때보다 더 어려운 사회 속에서 중압감과 책임감과 싸우고 있다.
그 시절을, 그 힘든 순간을 넘기게 해 준 것은 막연한 시간이었다.
'수능만 끝나면, 졸업만 하면...'그렇게 정해진 시간이 날 버티게 해 줬다. 그리고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고 무섭게 흘렀다.
그렇게 죽고 싶던 시절이 돌이켜보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수능이 끝나고 나에게 남은 건 개운함과 허탈감 그리고 아쉬움뿐이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고 적응하는 사이, 그 괴로웠던 기억은 희석됐고 나쁜 기억은 사라진 채 좋은 기억만이 남았다. 고통이 추억이 된 곳이다.
시간이 지나 사회에 나와 고등학교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짐의 무게를 느끼며 '아,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라 추억하지만 그건 시간이 주는 망각의 영향일 뿐, 우리 모두는 분명 그 시절 나름대로 힘들었다.
이렇게 넘기고 나면 '그땐 그랬지'가 된다는 사실이 참 우습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어려움도 시간이 지나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이 힘들고 고난했던 삶의 무게들이 긴 시간이 지나 하나의 과거로 남고 추억으로 곱씹을 수 있게 된다면 우린 그 긴 싸움을 잘 버텨냈다는 뜻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