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by 임현정
https://www.youtube.com/watch?v=FelHhj5jB54
고생했어.
설렘과 고백을 지나 투정과 질투와 원망의 소리까지 참을성 갖고 들어주느라고.
삶의 모든 것들에 기승전결이 있다고 하지만 꼭 그렇게 정형화된 4단계가 아니더라도
너와 나의 사랑만큼 변화무쌍한 곡선이 또 있었을까.
우리만 그러진 않았을 거란 건 확실해.
서로의 짝꿍이 사랑스러워 미치겠는 거리의 한쌍과
이제는 아련하게 그릴 수밖에 없는 과거의 연인들 누구라도
별처럼 셀 수없는 감정의 굴곡과 밤새워 털어놔도 끝나지 않을 이야기들을 품고 살아가고 있겠지.
그러니 우리 모두는 존중받아 마땅해. 잔잔한 냇물과 격랑의 바다를
건넜거나 건너가고 있는 사람들이잖아.
오늘 난 널 그리워하는 건 틀림없지만
굳이 돌아와 달라고 하진 않을 거야.
모든 인연들이 끝까지 달라붙어야 완성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넌 내 기억 속에
지금처럼 누워있으면 될 뿐이야.
매일 아침 노크를 하고 널 불러낼 거고
매일 밤 너에게 지난 날들 이야기를 해준 다음 편안하게 재워줄 테니까.
그러니 내 가슴 밖의 넌
그냥 잘 살아가면 되는 거야.
너무 잘 살아서 오히려 별다른 소식이 들리지 않는 편이 좋겠어.
널 만난 게 어딘데.
성격이 무지 급했어, 난.
지금도 느긋한 성격은 못되지만 어릴 땐 뭐든지 빨리빨리 빨리빨리.
그래서 그랬는지 길을 걸어갈 때에도 다리가 먼저 앞서 가더라구.
하체는 폭주, 상체는 그저 따라갈 뿐.
후륜구동이 아닌 하체구동이라고 해야 되나.
친구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그렇게 걷는 나 자신을 전혀 몰랐다는 얘기야.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
웃기지 않아? 다른 사람도 아닌데 그렇게 오랫동안 내 걸음걸이조차 몰랐다니.
그런데 말이야.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의 모습이라 깨닫기 더 힘들었겠다 싶더라.
전신 거울을 몸에 붙여놓고 살아갈 수도 없는 일이니까
날 내가 더 모를 수도.
아니 세상에서 내가 내 모습을 가장 모를 수도.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내 안의 모습도 그럴 수 있겠다 싶어.
난 그런 감정으로 살아왔다.
너보다 너를 훨씬 더 사랑했다.
모두가 우리를 위한 마음들 뿐이었다.
대단한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면목이 없어지는 걸.
문득문득 깨닫게 되는 것. 분명한 것.
네가 얼마나 큰 사랑을 주었는지.
눈에 보이는 사랑뿐이 아닌
얼마나 심해 같은 아픔들을 이 악물고 참아왔는지
내가 어떻게 발버둥을 쳐도 너에겐 털끝일 뿐이야.
그래서 더욱 돌아오면 안 될 것 같은 거야. 네가.
하나가 되기 위해 깨부수어지는 것쯤 콧방귀도 뀌지 않았던
너 닮은 사람이 네 옆에 있어야 하고
그럴 거라 믿고 있어.
이 노랠 좋아해.
듣고 있으면 이 불어난 몸이 깃털인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라니까.
있잖아 이 노래는
첫사랑의 설렘을 주는 느낌도 아니고
잔잔히 흐르다 갑자기 폭발하는 미친 사랑의 클라이맥스도 주지 않아.
그렇다고 심장을 잃어버린 슬픔이 애절하게 묻어나는 것도 아니거든.
말하자면
무언가 다 털어놓은 느낌. 개운함.
이 노래가 왜 내 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는지.
결국 너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아.
꽃들의 두근거림도 얼음장 속 날카로움도
모두 다 담아낼 수 있었던 건
너 때문이야.
재회라는 건.
직접 마주치지 않아도 할 수 있다는 걸
이제 알 것 같아.
시야에서 벗어난 너는
내 안에 더 깊숙이 들어오고 말았으니
한시도 빼놓지 않고 나는 너와 재회하는 중이야.
재회란 것은 그래서
한 시점에서 불꽃처럼 튀는 스파크의 촉발이 아닌
강물처럼 멈추지 않고 흐르는 연속된 시간임에 틀림없어.
고마워.
나에게 너는 그러므로
영원.
별 볼일 없는 글 읽어주고 애써 골랐던 노래들 들어주어 고마워.
죽어도 잊지 못할 시간들이었어, 그때만큼이나.
누가 엿볼지도 몰라.
너 이제 그만 내 안으로 들어와.
돌아가자 같이.
쌀쌀해지니까 더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