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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n 12. 2023

몰래 먹는 고기

어쩌다 보니 온 가족이 육류를 섭취하지 않은지 두 달이 넘어간다. 의도해서 그렇다기 보단 요리를 좀 더 간단히 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B를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삼겹살이 너무 먹고 싶다. 꿈에도 나올 정도이다. 그래서 B에게 엄마 삼겹살 좀 먹으면 안 될까?라고 물었더니,


'엄만, 사랑스러운 돼지를 먹겠다는 거야? 먹고 싶으면 먹어봐. 그럼 엄마랑 뽀뽀도 안 할 거고, 옆에도 안 앉을 거고, 같이 잠도 안 잘 거고, 대화도 안 할 거야!'


나의 약점을 팍팍 건드리며 못 먹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일단 알았다고 했지만 큰 아이에게 물으니 너무 먹고 싶다고 해서 큰 아이 핑계를 대고 삼겹살을 구워 먹기로 결정했다. 슈퍼에 가서 삼겹살 한 팩을 집어드니 남편이 오랜만에 먹는데 한 팩으로 되겠냐고 두 팩을 사자고 했다. 한팩에 400g 정도 된다. 장을 봐서 집에 오자마자 삼겹살과 먹을 쌈장과 양파 무침을 만들고 각종 쌈야채를 씻고 밥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삼겹살을 구워 상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B가 보이질 않는다. 갑자기 위층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맛있게 먹어라! 그럼 나는 뭐 먹으라고! 그거 다 먹을 때까지 내려가지 않을 거야! 왜 엄마는 나를 서포트해주지 않는 거야!'


우린 오랜만에 보는 고기에 위에서 뭐라고 하든 말든 고기에 달려들었다. 처음 몇 쌈은 정말 꿀맛이었다. 그러다가 셋이서 젓가락 속도가 점점 느려지더니 반정도는 먹지도 못하고 남겼다. 셋다 공통된 의견이 삼겹살이 이렇게 질겼었나? 영국돼지가 한국돼지보다 질긴가? 오랜만에 고기 씹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더 질기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나중엔 턱이 아플 정도라... 첫 몇 점에 이미 욕구는 충족되었고, 굳이 이렇게 까지 턱을 혹사시키며 먹어야 하나... 하고 모두 젓가락을 놓아버렸다.


골이 잔뜩 난 B에게는 열무비빔밥을 만들어 주었다. 그 비빔밥도 우리와 같은 공간에 있기 싫다고 위층으로 가져가서 먹었다. 그리고 그날밤 나를 쳐다도 보지 않고, 잠을 잘 때도 고기 냄새난다고 등을 돌리고 잤다. 고기 먹은 입들이라고 아빠와 언니와는 대화조차 거부했다.


집에서 고기 한 점 구워 먹기 이리 힘들어서야.... 곧 첫 아이가 시험이 끝나면 학교를 가지 않고 9월 식스폼 학교 입학 전까지는 자유다. 나도 공식 시험이 끝나면 특별히 커버수업 요청이 오지 않는 한 집에 있을 테고, 그때 낮에 둘이 먹고 싶은 고기 틈틈이 먹고 B가 오기 전에 입을 쓰윽 닦을 예정이다. 몰래 먹는 고기가 더 맛있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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