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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에게. +29

챙긴다는 것

사랑하는 아내에게


오늘도 당신을 바라보니 할 말이 많아요. 그 할 말은 투정이나 불만이 아니고요. 미안함에 사과할 말들이에요. 그래서 오늘도 당신에게 편지를 쓰네요.



함께 해가 넘겨갈수록 내가 고집부린 것들과 당신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결과가 나오는 일이 많음을 알게 돼요. 또, 그런 시간들 때문에 당신이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그런 시간들이 종종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요.



얼마 전이었어요. 당신과 점심먹고 커피 마시면서 대화하다가 또 사과를 했네요. 이제는 매번 사과하는 것이 힘들지 않아요. 그간 마음고생에 조금이라도 치료약이 된다면 몇 번이라도 할 수 있어요.



특히 미안했던 것이 있어요. "입막음"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부부모임을 할 때마다 내 마음은 당신 입막음 준비에 바빴어요. 혹여나 해서 조마조마도 했고요. '아내가 아무 말이나 하면 안 될 텐데. '라는 마음으로 당신에게 꼭 했던 말은 " 당신! 이런 것은 말하지 마요!"였지요. 그렇게 지내는 동안 당신은 부부동반 모임은 좋은데 제대로 말을 못 하니까 속 답답한 모임이라 고역이었지요.



바람피우거나 술, 담배로 걱정 끼치지 않는 정도면 최고 아니냐면서 당당하게 말하는 나와 그런다고 "최고의 남편"이 아니라는 당신과 대화할 때면 이해가 안 되었어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나쁘진 않잖아요."


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큰소리친 것들이 언제부터인가 이상한 말같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마치 술을 끊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술맛이 다르게 느껴진 것처럼요. '나 정도면~'이 아니라 "나 정도에도~" 당신이 아프고 숨 막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인가 봐요.



당신을 사랑하고 챙긴다는 것은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함께 하거나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고요. 당신과 진짜 필요한 것에 대해서 말을 잘 주고받는 소통이 중요한 것인데 돌아보니 정반대 말만 했던 것 같아요.


"그런 말은 하지 마요."

"왜 그런 말 했어요."

"나에 대해서는 말하지 마요."

"내가 만만해 보여요?"

"돈 적게 벌고 무능하니까 조용할게요."


지금 생각해도 이런 말들은 듣는 당신의 목을 죄거나 마음밭을 갈고리로 긁는 듯한 느낌이에요. 내가 적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어요. 출퇴근 지하철을 타고 앉아 있으면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지하철천정을 바라보면서 그냥 멍하니 있는데 드는 생각이었어요.


"내가 왜 그랬을까요?"


그 생각이 든 날, 그 느낌을 잊지 않으려고 혼자 있을 때마다 되뇌다가 당신과 둘이서 밥 먹고 커피 한 잔씩 놓고 대화하던 날 말했지요.


"미안해요. 그때는 왜 그런 말들만 했을까요.. 미안해요."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말을 이어가 주는 당신이 고맙고 이뻐 보였어요. 그런 당신과 사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더라고요.


"고마워요. 늘"



정말 그랬습니다.

술, 담배, 바람, 돈문제 등등 사회적 문제들을 끌고 다니는 남자가 아니라면서 이 정도면 괜찮은 거라고 생각하고 말하고 지냈습니다. 그것들은 배우자의 몸과 마음을 망치는 것들임이 틀림없습니다. 신뢰를 깨기도 하고요.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소통이 되지 않거나 마음고생을 시키면 겉은 멀쩡한데 속은 썩은 사과처럼 마음은 병들어서 마음의 병 때문에 몸까지 망가져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짜 고마운 것이었습니다.

소통 안 될 때 기다려주고요. 입막음하면서 할 말도 못 하게 하면서 부부동반할 때도 참아주고요. 뒤늦게 알고 사과하면 "미안해요"라는 한마디 말도 "그래요 "라고 받아주는 아내가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언제나 늘 그런 사람이었고 저와 함께 해주고 있는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아내가 저를 사랑해 줍니다.

100가지 마음고생을 시켰는데 이제 10가지 사과를 했을 뿐인데도 "그런 말 해줘서 고마워요 "라면서 받아줍니다. 큰돈을 벌지 못해도 주간, 야간 근무를 번갈아 하고 있는 저를 더 챙겨주겠다면서 애틋하게 대해 줍니다.

저는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은 함께 살고 있는 아내에게 제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적어봅니다. 벌써 29편째 가족에게 쓰고 있는데 저는 이 편지들 덕분에 또 1% 달라진 것 같습니다.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며 1% 시작하고 이제 1% 더해가고 있지만 차근차근 계속 달라지려고 합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항상 함께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unsplash의 emiliano vittorio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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