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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아! 제발 이러지 마요 +18

내 얘기 좀 할게요.

이제 본격적으로 적어보겠습니다. 적는 내용이 여전히 창피하고 참담하지만 적으면서 더 나은 남편이 되도록 노력합니다. 격려도 부탁드립니다.

 


지난 연재동안 제가 마치 '심야식당의 마스터'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가진 소재들을 정성껏 적어서 매주 화요일 뵙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필로그에도 그 느낌들을 적으면서 마무리했었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oebius01


이번에는 오답노트를 만드는 수험생 같은 느낌으로 글을 쓰게 됩니다. 글을 쓰려고 아내가 말했던 말들을 정리하다 보니 벌써 가슴 한 구석이 시리고 시립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까요? 아내가 한 말들은 길지도 않습니다. 외국어나 화려한 미사여구를 사용한 것도 아닙니다. 말을 빙빙 돌리지도 않았고요. 주로 짧은 '한 문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알아듣지 못하고 이해를 못 하였을까요? 상황을 통해서 짚어보겠습니다.




공간 확보를 위한 대화를 하다가


아내와 대화를 하다 보면 제 말이 길어집니다. 말이 길어지는 이유는 아내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기어이 바꾸고 싶은 남편의 고집 때문입니다. 내 생각이 옳다는 그 고집을 꺾지 않고 관철시키려다 보니 말이 길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고집이 철저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부부상담 때 알고 많이 놀랬기도 했습니다.

 

"상대는 바꾸는 게 아닙니다. 나를 변화시키면 상대가 저절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나 먼저입니다."  그런 것을 모르고 힘겨운 대화를 했던 것입니다. 이번 상황도 그랬습니다.  




"여보, 옷이 많던데 안 입는 거 버리고 공간을 더 확보합시다."

"난 그렇게 해서 공간도 확보했고 옷 입을 때마다 훨씬 수월해요. 시간도 여유로워졌고요."

"남편. 나는 괜찮아요. 많이 버렸고 지금 옷들은 다 이유가 있는 옷들이에요." 



"에이~ 아이 셋 낳고 골격이 달라져서 옷이 안 맞다면서요. 버릴 건 버리고 그럽시다. "

"이제 손바닥만 한 치마는 못 입잖아요. 이제 영영 "

"그렇지 않아요. 남편. 살이 빠지면 다 입을 수 있는 옷들이에요. "



"여보!!!!! 그냥 좀 버립시다!!! 웬 미련이 심해요. 심지어 옷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해당 계절을 지내면서..."

"계절이 바뀌어서 옷 교체하다가 '어! 이 옷이 여기 있었네.' 라며 못 입었다고 아쉬워하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몇 년간 못 입고 박아둔 옷도 버립시다. 그렇게 과감히 정리합시다. 제발."

"맨날 그러니까 옷 없다는 타령이지. 옷 좋아하는 내가 옷을 안 사면서까지 옷을 사줘도 소용이 없네요."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옷이 없다고.. 남들은 형편이 안돼서(남편이 무능해서) 옷도 못 사 입는 줄 알잖아요."

"나는 맨날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무능력자같이 느껴져서 비참하고 그래요. 이게 뭐예요."


남편, 내 얘기 좀 할게요.



"내 말 안 끝났어요. 이따가 해요. 점점 화가 나네요. 몇 년간 안 입는 옷을 못 버리는 이유가 뭐예요."

"제발 좀 버립시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아이들 옷을 더 많이 걸어줘야 해요. 공간이 없어요."


"결혼해서 이사할 때마다 내 옷 많이 버렸어요. 심지어 남편 옷이 더 많았어요. "

"결혼할 때는 내가 의류회사에서 일했잖아요. 그래서 내 옷이 많았던 거고요."

"내 얘기 좀 할게요. 당신 얘기 말고요. 나 얘기 아직 안 끝났어요."

"그래요? 그럼 해요."

"당신이 하도 말 많이 해서 까먹었어요. 속상해요."


주로 제가 말을 쏟아내고 아내는 하고 싶은 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대화여서 사실 좋은 대화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


직장을 옮기다 보니 이사까지 여러 번 하게 되면서 아파트에서 작은 아파트로, 거기서 더 작은 빌라로, 그리고 처가살이로 바뀌면서 사용하는 공간이 점점 작아졌습니다. 처음 처가살이를 시작할 때는 기저귀 찬 아이 셋이라서 괜찮았는데 5년 이상 살다 보니 공간이 점점 부족해졌습니다. 저는 추억유무 상관없이 과감하게 제 옷을 버리며 가족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당장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 가거나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곳으로 이직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풍족한 가정환경를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서 제 물건들을 무작정 버리면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는 전혀 동참 안 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대화하다가 비난으로 끝났습니다.



기준으로 아내의 행동이 못마땅해서 대화시작했으니 시종일관 몰아붙인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아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못 버리는 옷들도 있어요. 결혼 전 입었던 옷들은 일할면서 나름 예쁘고 날씬했을 때 입던 옷이라 추억이 가득한 옷이에요. 그래서, 버리기가 쉽지 않아요. 아이 셋을 놓고 나니 골격이 커져서 옷이 들어가지가 않아요. 현실을 알고는 있지만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게 쉽지 않아요. 나중에라도 입어 보고 싶어서요.

받은 옷들도 많아요. 누가 줘서 고맙게 받았지만 입고 갈 곳이 없어요. 매일 집에서 아이들 키우고 어쩌다 모임에 나가니까요. 그리고, 옷을 받았지만 입어보니 내 스타일이 아닌 옷들도 있기도 해요.  

남편이 사준 옷도 많아요. 남편이 일하다가 봤다면서 나한테 어울릴 것 같은 옷을 종종 사주잖아요. 그런 모습에 고마워하며 받았지만 사실 내가 안 입는 옷이거나 내가 소화하기 어려운 스타일들도 있어요. 때로는 용기를 내야 하는 색깔들도 있어요.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지요. 남편이 없는 돈에서 큰맘 먹고 사 온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그리고, 어쩌다가 억지로 입은 것들은 전부 해져서 더 이상 외출복으로는 불가능해요. 그런데, 남편이 사 온 것이라서 보는 앞에서 버리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옷이 많아졌는데 어떻게 버리나요? 그렇지만.. 공간이 없는 것도 알고 있어요.  남편이 몰아붙이며 잔뜩 버리라고만 요구하잖아요. 나는 어떻게 해야 해요? 버릴 만큼 버렸어요.


이 모든 말들을 하고 싶어서  "남편, 내 얘기 좀 할게요." 했는데...


아내 말을 들어보면 전부 이해가 됩니다. 다른 방법을 찾던가 시간을 주는 배려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내 얘기 좀 할게요."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말을 들었는대도 아내 말을 들을 생각을 안하고 제 말만 했던 것입니다. 돌아보면 늘 의견차이가 날 때마다 일방적으로 제 말만 하면서 감정싸움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대화하고 지낼까요?:


부부상담 전 5년은 매번 제가 고집부리고 제 의견으로 추진했습니다. 그러다가 부부상담 후에는 종종 '내 의견이 틀렸어요?"라면서 아내에게 확인하고 더 나은 의견으로 추진하기도 합니다.

 


가정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도 아내가 다른 의견을 말하면 '변명하거나 토 달지 않고 듣겠다. 말을 끊지 않겠다.'라면서 일단 경청합니다. 아내가 말하면 "아! 그래요? 내가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요?"라며 실수를 인정합니다. 함께 살아오며 저의 장단점을 모두 알고 있는 아내의 조언과 의견이 제일 정확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니 아내의 의견을 수용해서 추진한 것들이 좋은 결과들을 가져올 때가 많았습니다. 진작 그러지 못했음을 후회하며 자냅니다.  





남편, 내 얘기 좀 할게요. 를 쓰면서 느낀 소감은..


글을 적어가다 보니 후회와 미안함이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일할 때는 타인의 의견을 수렴하고 합의하여 가장 나은 방향을 위해 추진하였습니다. 그런데, 내 가정을 함께 꾸려나가는 동반자이자 제일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어쩜 그렇게도 안 듣고 고집 부렸나라는 후회가 수시로 들면서 미안함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 후회와 미안함과 함께 또 생기는 것은 '이해'입니다. 그런 극한 감정싸움에서 가능하면  참아주면서 상황을 견뎌준 아내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와중에 아기 셋이 '앙앙'거리며 엄마를 찾기도 했을 것이고요. 저는 그런 싸움뒤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면 그만이었고요. 엄청 힘들었을 아내의 마음을 다시한번 느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주제에 맞는 상황 속에서 제 행동을 제가 적고 있는데도 저절로 반성과 감사가 넘치는 것이었습니다. 제 행동의 부족함에 대한 반성과 남편인 저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참아준  아내의 마음에 감사했습니다.



브런치스토리에 공개적으로 반성과 비전선포를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지속되는 노력을 위해서 많은 분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심정으로 쓰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동안 저절로 더 반성하고 더 올바른 길을 찾기도 합니다.



그래서, 브런치 스토리 쓰는 것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꾸준히 쓰면서 노력에 박차를 가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의 입보다는 두 귀가 바쁘게 해 볼 생각입니다. 개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할 일도 많다는 생각으로요.



여기까지 읽어주시려고 화요일에 또 찾아주시고 '라이킷'을 눌러주실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다음 화요일에는 "편! 내 얘기 듣고 있어요?"로 찾아뵙겠습니다.

부족하고 창피한 모습이지만 여전히 적어 보겠습니다. 또 다른 '반성 & 감사'의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 사진: Unsplash의 Toa Hefti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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