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물정 모르면 어때요. 쫌.
결혼 후 여전히 아는 것이 거의 없고 매번 상황을 겪으면서 '아! 이런 거구나!'라면서 가족과 관계된 일들을 처리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엄마한테 물어보던가 친구에게 물어봐서 일처리 해요!'라고 큰소리치기도 했습니다.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뭔가 생각보다 풀리지 않는 일들에 대해 당황스러워하면서 전화를 하던가 퇴근 후 가정을 위해 처리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잘 모르겠어서 못했다.'며 의논 좀 하자고 말하면 화 먼저 내기도 했습니다.
모른다고요?
아내와 처리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대화를 할 때였습니다.
"지로용지로 처리해 본 적 없어요? "
"몰라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요."
"수도 요금 내본 적 없어요? 지로번호 확인해 봤어요? 아니면 링크 찾아봤어요?"
"아니요. 어떻게 하는대요?"
"에? 뭐예요. 진짜 몰라요. 해본 적 없다고요? "
"그런 거 부모님이 하셨지요. 내가 할 일이 없지요."
"그런 일에 관심 가져본 적도 없어요?"
"사실 관심 가져본 적이 없어요. 그런 일에."
"아니!! 도대체 집에서 얼마나 애지중지 키운 거예요? 아는 건 모예요?"
"농담이긴 한데~ 당신, 한동안 교도소에 있었어요? 어떻게 세상이 돌아가고 무엇이 있는지 모르지요?"
"웬 교도소요. 말이 심해요. 진짜... 남편. 그냥 부모님이랑 평생 살아서 그런 거 신경 써본 적 없어서 잘 모르는 것뿐인데......"
"참....... 내... 내가 선택한 것이니 내가 감수해야지요. 근데 속이 터져요."
하다 하다 심한 말도 했고요. 말하면 할수록 속이 터질 것만 같아서 한숨만 퍽퍽 쉬면서 울그락불그락 얼굴을 붉혔습니다. '어떻게 아는 게 하나도 없냐......'중얼거리면서 가슴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고 아내는 계속 보고 있다가 한마디 더 했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면 어때요. 쫌."
그렇게 말하고는 아내는 잠시 가만히 있었습니다. 저는 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터지기 일보직전의 얼굴로 쳐다봤습니다. 조금 뒤 아내가 말을 이어갔습니다.
"남편, 부모님과 사는 동안 내가 처리할 필요가 없어서 사실 신경 안 썼어요. 그러니 일상생활에 대한 일처리는 거의 모르지요. 그러다 보니 그냥 내 할 일만 하고 살았어요. 그런 걸 굳이 먼저 알 필요는 없지요. 필요할 때 알아보고 하면 되고요. 조금 실수할 수도 있고요."
"결혼을 하고 나면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생기는데 미리 알거나 배웠으면 좋지요. 실수도 없고 무난하게 처리할 수도 있고요. 해야 할 때가 돼서야 알아보고 실수를 하고 나서야 알고 나면 얼마나 힘들어요."
"남편, 나는 술 먹는 거 안 좋아해요. 밤에 다니는 거 불안해서 싫어하고요. 그냥 집밥 먹으면서 출퇴근하고요. 특별한 일 없으면 퇴근하고 집에 갔고요. 주말에는 교회 가서 청년들과 봉사하고 시간 보내고요. 그렇게 사는 게 전부예요. 불편한 것도 없었고요. 물론 특별한 것 아니면 관심 안 가지긴 해요."
"그렇게 심플하게 지냈던 것은 존중할게요. 세상일에 관심 없다 해도 알겠어요. 그렇지만 결혼한다고 정했으면 필요한 것들은 미리 알았다면 가정 일처리를 하면서 뭔가 순조롭잖아요."
"상황에 닥치면 알아보고 하면 돼요. 그런 건...."
"머리가 좋아서 공부는 벼락치기해서 하는 건 알겠지만 언제까지 매번 일처리 할 때마다 당신이 잘 처리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직도 공과금내기, 신고하기 등등 매사에 내가 방법을 설명해 주고 그러잖아요."
아내 일침과 이어진 말에 급기야 저는 더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우리 의견차이가 좁혀질 기미가 안 보였고 감정의 골도 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화내용이 어떠셨나요?
아내는 일상생활이 단조로운 것을 선호하고 꼭 필요한 일에는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투자하며 집중하는 편입니다. 저는 다채로운 삶을 추구하면서 기회가 주어질 때마가 여건이 허락하면 이것저것 경험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면 그 안에서 재미를 즐기면서 사는 것을 추구하고 지냈습니다.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늘 깊게 알지는 못해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잡다하게 아는 것이 '조금' 있는 편이었습니다.
아내와 의견차이가 생기고 자주 대립을 했던 이유는 제가 해박한 지식이 있고 전문가라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것저것 경험한 것을 자부심으로 여기고 아내에게 아는 척을 했던 것입니다. 아내 입장에서는 결혼하고 나서 해야 할 일은 그때그때 알아가면서 처리하면 되는 것이고 별 관심 없는 세상 잡다한 것들은 그냥 모른 채로 지내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들을 '조금' 안다고 아는척하고 모른다는 것에 대해 짜증 내며 수시로 화내는 남편의 반응에 매번 서운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숱하게 겪으면서 아내와 세 아이들과 10년 이상 살다 보니 느낀 것이 있습니다. 세상 물정을 잘 몰라도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주 큰일이 일어나거나 큰 결례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다만 예상보다 일처리 시간이 더 걸리거나 가끔 서툰 모습을 드러내긴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사는데 큰 지장이 없긴 합니다. 세상 물정 중에 잡다한 것을 일일이 알아가며 살아갈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살아가는 것도 힘들 수 있는데 매사에 새로운 것, 새로운 경험, 새로운 관계를 흥미 가지면서 추구하는 것도 에너지가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체력도 부족하고 나름대로의 한계를 알고 있어서 적당선에서 관심 가지고 적당한 에너지로 일상을 소소하게 지내는 것도 '괜찮은 삶'이라는 것을 알려준 셈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라는 것도 더불어서 리마인더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깨달음에 대해서 요 근래에 아내에게 말했더니 이런 말을 해줍니다.
"그래요. 남편. 우리 가진 돈을 생각해서 분수에 맞게 살듯이 살면서 우리가 가능한 정도로 신경 쓰고 겪고 살아가도록 해요. 당신은 어떨지 몰라도요. 나는 내가 가능한 체력과 생각범위만큼 일상을 사는 게 평범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가장 안정적인 삶인 거 같아요. 어쩌다가 새로운 과자를 먹는 것은 괜찮지만, 매일 매번 새로운 과자를 먹는 것은 너무 힘든 것과 같아요."
추가로 해준 아내 말을 곰곰이 곱씹어보면서 저의 삶의 관점을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글을 발행하면서 가끔 고백하는 말이 있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세상 물정 좀 몰라도 괜찮습니다.'입니다. 혹여 가정을 위해 우리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 생겼을 때 아내가 모르는 것이 발생하면 다그치거나 빨리 알아보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 그거 몰라요? 그럼 내가 처리할게요."
"정 모르면 내가 처리방법을 찾아볼게요. 그럼 당신이 처리만 해줘요."
라고 하면서 어차피 세상 모든 것을 모르는 우리들의 모습을 인정하고 지냅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오히려 아내의 말처럼 사는 것이 덜 힘들고 지칠 때도 생기기 시작합니다.
"세상 물정 모르면 어때요. 쫌."를 쓰면서 느낀 것은 무엇일까요?
1.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대립했다.
세상 물정을 제대로 모르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애지중지 공주님'을 만나서 사는 것일 수도 있고, '아는 것이 없는 여자'를 만나서 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실도 생각해 보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몰랐던 것도 알게 되고 알던 것도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등 매번 업데이트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시간을 거치다 보니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 때문에 아내와 왕왕 대립했던 것이어서 후회했습니다.
2. 1을 보고 9를 소홀히 대했습니다.
살아온 과정의 차이로 생긴 아내의 약점을 알아챘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수시로 '큰 문제'로 부각하면서 대립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내의 장점 9를 모두 소홀히 대했습니다. 9가지 장점으로 살면서 얻게 되는 것들은 모두 무시하고 매번 눈에 보이는 약점 1가지에만 집중하면서 아옹다옹한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일침'을 가하고 나서야 '아!! 그렇군!'이라면서 생각의 관점을 바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3. 나도 모르면서 상대를 몰아붙였다.
아내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면은 있습니다. 그렇다고 매사에 일처리를 잘못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잡다한 세상 물정을 일부 안다고 해서 모든 일처리를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 부부 중 잘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것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살면서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닌 것들이 많았습니다. 아내의 일침을 맞고 나서야 제가 깨달은 것은 '나도 모르면서 아내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네.'였습니다.
이번 글을 발행직전까지 수정하면서 창피했습니다. 창피하고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X 묻는 개가 X 묻은 개를 나무란다.'라는 말이 제게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물정을 잘 몰랐던 아내와 결혼해서 살기 시작하면서 세상 물정이라는 것들 중에 중요도를 떠나서 잡다한 것들을 가지고 아는 것이 많다고 아내와 늘 대립하면서 몰아붙였던 제 자신이 너무 창피했습니다. 따져보니 저 또한 세상 물정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주 조금'이었습니다. 거의 불필요한 것들을 아는 것 가지고 세상 물정을 꽤 아는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온 것도 있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도 그렇게 지낸 시간에 대해 아내에게 엄청 미안했습니다. 글을 수정하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이 글을 공개하면 수많은 분들이 읽으실 테고 특히 아내분들이 읽으실 것이기 때문에 너무너무 창피해졌습니다. 더 늦기 전에 알게 돼서 다행입니다.
아내의 '일침'은 참아주다 참아주다 터트리고 날린 것이기에 들어보면 맞는 말이 많습니다. 그 '일침'을 가하기 전까지 늘 말해주는데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꼭 '일침'을 맞고서야 '아이코'하면서 알아듣고 고치기 시작합니다. 매주 화요일 글을 발행할 때마다 점점 더 제가 고쳐야 할 것들이 더 명확해지고 정리가 되어서 다행이기도 합니다.
다음 편은 "애를 셋 낳았어요."편입니다. 이 글을 수정하면서도 엄청 미안하고 몸 둘 바를 모를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주 동안 그 과정을 통해 제가 고쳐야 할 것을 명확히 정리하게 되고요. 아내의 마음속의 아픈 조각을 알아내면서 아내와 덜 아프고 사랑하며 살 수 있어서 좋습니다. 직면하는 것을 이제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살짝 고민하게 됩니다. 아내의 말을 이해하면서 고치느라 연재하다 보니 벌써 계획했던 연재가 마무리되어 갑니다. 그런데, 아내가 '당신 고칠 것이 만 가지'라는 말이 자꾸 떠오르면서 계속 이 테마를 이어간다면 아내 맘도 이해하고 저의 부족한 것을 고쳐가는 것도 이어갈 테니 이어갈까?라는 고민도 하게 됩니다.
다음 주 화요일까지 수많은 고민과 수정을 통해 뵙기로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계속 관심 가지고 읽어주시며 공감과 격려해 주심에 대해서 몸 둘 바 모르지만 가정회복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는 힘이 되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매주 감동하고 있습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 사진: Unsplash의Nathan Duml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