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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아! 제발 이러지 마요. +1

애를 셋 낳았어요.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어른들이 앉았다가 일어나 설 때마다 '아고고'라는 말이 그냥 추임새인 줄 알았습니다.


제가 한참을 앉았다가 일어날 때 '후딱'일어나지 못할 때가 생기면서 '아! 노화인가!!'라면서 허탈해했습니다.

아내가 어느 날인가부터 "아이고"를 연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으이그"하면서 무작정 핀잔을 줬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은 나보다 아직 젊잖아요! 무슨!'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것과 관련된 대화를 하다가 아내가 어느 날 강력한 '일침'을 쏘는 날이었습니다.

이젠 아내가 '일침'을 날릴 때면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아! 진짜 몰랐구나!'하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여보! 얼른 일어나요. 우리 나가야 해요."

"잠시만요."

"참내. 맨날 임박하게 일어나서 허둥지둥하느라 이게 모예요"

"빨리 못 일어나서 그래요."

"아이고.... 으....."

"참...... 내... 그게 모예요. 나보다 나이도 어리면서 맨날.."


애를 셋 낳았어요.



헉! 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가 애를 셋 낳았다는 말에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습니다. 두고두고 평생 그럴 겁니다.

https://brunch.co.kr/@david2morrow/286

외전 (1~3) 편은 아내가 아이 셋을 거의 연년생처럼 놓으면서 매번 제왕절개한 순간들과 저의 감정을 적어놓은 글입니다. 저의 세 아이들은 2년 터울입니다. 임신-출산-수술을 5년간 세 번 반복한 것이고요. 세 아이 모두 모유수유를 했습니다. 아이를 사랑해서 최선을 다한 것도 있지만 분유를 사 먹일 형편도 되지 못했던 것도 있고요.  



아내는 그 말을 들어도 미처 이해 못 했을 남편을 생각해서 몇 마디 더 했습니다.

"애를 모두 수술해서 낳았어요. 당신 출근해서 저녁 늦게 들어올 동안 등에 업고 유모차 밀고 걸리고 다니면서 병원, 마트 다녔어요. 첫째 빼고는 출산 후 제대로 못 먹었어요. 당신 출근 후에 집에 혼자 있으면서 온갖 일하고 아이 수유했어요. 세 명 모두 기어 다니고 울고 부르고 떼쓰면서 내 주변에서 맴돌았고요. 지쳐서 아무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날도 있었어요. 당신 없는 낮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알아요?  세 아기들과 어떻게 지냈는지 잘 모르잖아요. 그 시간 동안 영양제 보충이나 운동은 아예 하지도 못했어요. 하도 걸레를 짜서 닦았더니 이제 손목이 아파서 생수병뚜껑을 못 열어요. 허리가 너무 아파요.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려요. 지금 일하면서 하도 일어나고 앉고 무릎 꿇고 하다 보니 아픈 게 사라지지 않아요.


당신이 한동안 현장일하면서 어깨가 삐걱거린다고 걱정하고 일 그만두었지요? 나는 진작부터 어깨, 팔이 삐걱거려요. 당신 언젠가 지하철 계단 내려가면서 무릎에 뚝뚝 소리 난다고 걱정했지요? 나는 애 셋 낳고부터 계속 그래요. 젊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일들이 많아지면서 정말 당황스러워요. 맨날 의욕 있게 나서지 않는다고 핀잔주지요? 의욕 부릴 만큼 힘도 체력도 이제 없어요. 아직 50이 안되었는데 이런 내 모습에 나 스스로가 허탈해요. 알아요? "


"나이가 몇 살 어리다고 늦게 늙는 줄 알아요? 애 셋을 낳았더니 당신보다 더 빨리 늙어가는 거 같아요. 나보다 몇 살 많은 당신보다 흰머리가 더 많아요. 우리 친정에서 내 나이에 흰머리 생긴 사람은 내가 처음이에요. 나는 마음이 너무 힘들어요. 이런 모습에!! 속상하고 허탈한 내게!! 당신은 어찌 그런 말을 하지요?"


"애 셋 제왕절개하고 더 이상 임신하면 안 된다고 남편이 어느 날인가 수술하고 왔지요. 그러면서 왠지 이제 더 이상 능력자가 아닌 것 같다면서 씁쓸해했지요? 나는 애 셋을 낳고 나니 몸매가 변해서 안 돌아와요. 가진 옷들이 맞는 게 하나도 없어요. 손가락 마디가 다 커져서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아요.  심지어 배꼽도 원래보다 몇 배나 커져서 이제 돌아오지 않아요. 당신이 느낀 상실감보다 내가 느낀 허탈감과 상실감은 당신과의 나이차이보다 몇 배나 커요. 그런데도 버티고 살아가고 있어요."



드라마에서 보면 옷장문을 열면 정리 못한 옷들이 쏟아져 나오듯 아내의 말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끊어서도 안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모두 진실이니까요. 아내의 속마음이니까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들었습니다.


    


대화 내용이 어떠셨을까요?


남편인 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애 셋 낳았어요." 한 마디로 그저 상황 종료입니다. 아내가 몸이 힘들다고 하면서 저에게 도움을 바랄 때도 저는 바깥에서 살겠다고 아등바등 일했다면서 힘들다고 지치다면서 은근히 모른척하고 떠넘기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몸 어딘가가 욱신거리거나 아프다고 하면 "나보다 나이가 어리잖아요."라면서 은근 핀잔주면서 금방 괜찮아질 거라는 말로 넘기기도 했고요. 그렇게 은근히 넘어가는 남편의 얼렁뚱땅 에 '일침'을 놓은 것입니다. 애 셋을 놓고 젊을 때는 바쁘고 힘들고 정신없이 흘러가는 통에 몰랐는데, 이제는 슬슬 여기저기 본격적으로 아프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저보다 나이가 아직 어리다는 것은 신체적으로도 젊다는 것으로 인식하고 은근히 말도 안 된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제 몸의 무릎이 뚝뚝거리고 어깨가 통증도 있고 삐걱 소리가 나면 아픈 것이고요. 소화가 잘 안 되면 아픈 것이고요. 허리가 아프면서 다리가 저리면 안 좋은 것이고요. 손등의 피부가 언제부터인가 거칠어지고 얇아지기 시작하면 나이 먹어간다는 것이라면서 한숨을 쉬곤 했습니다. 아내는 그런 행동을 보다 못해 말했습니다. '나는 진작부터 그랬어요. 남편....."



그런 말을 듣고 나니 더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나이가 몇 살 어린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온몸의 세포가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내고 먹고 걸어 다니면서 자기 생각을 하는 로봇 아닌 사람을 셋이나 출산하고 양육을 한 아내가 먼저 여기저기 아픈 게 당연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 상황 때문에 여기저기 아파도 묵묵히 감당하며 지내는 아내를 보면서 너무 모른척했던 것을 반성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낼까요?


경각심을 가지고 지내고 있습니다. 아내가 뭔가 아프다고 하면 "진짜예요?"라고 하기보다는 "어디가 아파요?"라는 말과 함께 "언제부터 아팠어요?"를 먼저 물어봅니다. 아내는 아프면 일단 참기부터 하니까요. 물론 참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사는 탓도 있고 불협화음이 생기는 상황이 불편해서 싫어서 그런 것도 있고요. 돈을 걱정해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인식하고 나서는 "얼마나 아프고 언제부터 아팠어요?"부터 물어보면서 신경을 씁니다. 이제는 "당신이 나보다 몇 살 어리니까 아직 노화는 아니지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이 셋을 낳고 저보다 먼저 여기저기가 노화증상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산후유증이 이제 본격적으로 괴롭힐 수도 있고요.



애 셋을 수술할 때마다 수술실 앞에서 나올 때까지 미안해하며 엉엉 울고 수술 후 침대에 눕혀 나와서 마취가 풀리면 '으으으으.. 너무 아파요." 하던 그 아내에게 '정말 미안해요. 정말 고마워요. 평생 잘할게요."라는 '진심의 고백'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 고백을 다시 떠올린 것을 잊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가끔 서로 컨디션을 진심으로 물어봅니다. "아픈데 없어요?" 물론 아직 노화를 따질 나이는 아니지만 애 셋 놓은 아내가 이제는 혈기왕성하기보다는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낼 나이가 되어가니까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철을 씹어먹어도 멀쩡할 나이보다는 이꼭꼭 씹어먹으면서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아직은 성실한 사회생활을 해야 할 나이이니까요.




아내와 결혼하고 지내면서 아내의 속마음을 모르는 것 때문에 아내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많습니다. 그런 것과 함께 아내가 애 셋을 낳아서 저보다 아픈 것과 부위가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애 셋 낳았어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진짜 망치로 머리를 "땡~"하고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내의 컨디션에 대해서 귀 기울이고 신경을 쓰기로 했고요. 아내가 참다못해 '일침'을 가할 때면 정신이 번쩍 드는 것도 이제는 속상합니다. '왜! 이 정도로 몰랐지?'라고 말입니다.



부부로 지내면서 서로 알아야 할 것들을 잘 알고 잘 기억해서 좀 더 조화로운 관계를 잘 이어가면 좋을 텐데요. 바로 옆에 있어서 그런지 은근 신경 못써주고 지내곤 합니다. 흔히들 말씀하시길 '아내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라는 말을 그냥 흘려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아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꼭 말해야 알아듣는 것을 늘 느끼는 아내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습니다. 글을 적으면서 아내가 묵묵히 참아주며 지내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아내가 참아주면서 지내온 시간 덕분에 남편인 제가 그 시간들을 깨닫고 반성하다 보니 아내가 그냥 옆에 앉아있는데도 '보배'처럼 보입니다.



애 셋 낳은 아내와 대화한 것을 공개하면서 또 속은 쓰리고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마음은 창피함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글을 수정하는 마지막까지  '어쩜 그리도 모르고 지냈소?"라며 추궁하고 묻고 싶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저'라는 것이 창피했습니다. 그런 감정을 잘 기억해서 아내를 더 사랑하기고 합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다음 화요일에 또 뵙겠습니다. 다음번에는 "결혼반지 그런 건... 싫어요."편입니다. 준비된 글을 한 주 동안 수정하면서 창피함과 미안함은 제 몫입니다. 잘 감당하면서 발행준비하겠습니다. 아직도 만 가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발행글이 엄청 많이 필요한대요. 고민을 해보려고 합니다. 이번 발행 편들을 발행할 때마다 진짜 '깨달음'이 엄청납니다. 스스로에게 효과가 큽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 fe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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