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 투명성 챕터에서 언급했던 개방형 펀드와 폐쇄형 펀드를 상기해 보자. 개방형과 폐쇄형의 차이는 단순 설정 및 해지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개방형 펀드는 주로 상장된 자산을 보유하며 이들의 자산 가격은 매일 업데이트된다. 휴일이 아닌 이상 주식의 가격은 매일 기록되며 이로 인해 펀드의 기준 가격, 즉 NAV 또한 매일 업데이트된다. 반면 부동산과 인프라와 같은 비상장 자산은 매일 자산 평가를 할 수가 없다. 주로 분기 혹인 반기에 한번 이뤄지며 이를 보유한 펀드의 NAV 또한 해당 주기에 맞춰 업데이트된다.
이 점을 근거 삼아 오랫동안 ETF 회의론자들은 변동성이 커지는 극한의 상황에서 채권형 ETF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며 ETF의 종말을 점쳐왔다. 이들은 금융위기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ETF의 시장 가격과 기준 가격인 NAV 사이 심각한 괴리율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포인트다. ETF 시장 가격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실시간 가격이며 NAV는 ETF가 보유한 자산들의 종가를 기준으로 산출된다. 그리고 NAV를 기준으로 LP와 같은 유동성 공급자들이 차익 거래를 통해 시장을 조성한다. 문제는 금융위기나 코로나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모든 자산에 환매가 발생하는데, 채권과 같은 장외 거래 시장은 거래가 거의 중단된다. 22년 말 혹은 23년 초 부동산 시장을 생각해 보면 된다. 급격한 자산 가치 하락 및 변동성이 발생하면 시장에서는 매수와 매도 모두 사라진다. 팔고자 하는 사람도 없고 사려는 사람도 없다. 각자가 희망하는 가격 차이가 커지며 거래가 중단된다.
좀 더 구조적으로 설명을 하면, 시장의 마켓 메이커들이 교체됐기 때문이다. 금융 위기 전 OTC 시장의 시장 조성자들은 대형 은행들이었다. 이들은 보유한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시장 조성을 했는데, 정확히는 매도자로부터 채권을 사고 어느 정도 시간 이후 매수를 희망하는 고객에게 되파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런 방식의 시장 조성을 하기 위해선 먼저 물건을 사고 넘겨야 하므로 충분한 자본이 받쳐줘야 한다. 아무나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이 아니다. 반면 시장의 변동성 확대를 축소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매도자들의 물량을 받아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 위기 이후 은행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어 대형 은행들의 시장 조성 역할 비중이 축소됐다. 그리고 이 공백을 차지한 곳들이 바로 Jane Street, Optiver 그리고 Jump Trading과 같은 전문 트레이딩 하우스다. 이들은 은행과 같은 방식을 대신해 High Frequency Trading을 기반으로 매도자와 매수자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주로 수행한다. 혹은 매도자로부터 물량을 받더라도 곧바로 넘긴다. 굳이 비유하면 이들은 부동산 중개사들에 가깝다. 매수자와 매도자를 연결해 줄 뿐 본인들이 직접 부동산 거래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대규모 자금 없이 기술력 하나로 시장 조성을 할 수 있는 굉장히 큰 장점을 지닌다. 반면 변동성 확대를 막아주는 쿠션 역할이 없다는 단점이 있다.
결론적으로 ETF 회의론자들은 NAV와 시장 가격 사이의 괴리율 확대를 지적했다. ETF는 상장된 상품이므로 시장 가격은 실시간으로 변한다. 하지만 NAV는 보유한 자산 가격을 기반으로 산출되는데, 채권 시장이 코로나와 같은 극단적인 여파로 중단되면 NAV가 산출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괴리율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며 ETF 본연의 기능이 상실한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코로나가 발생했던 2020년 3월 중순 블랙록이 운용하는 Ishares Investment Grade Corporate Bond ETF (LQD)에서 5.35% 수준의 급격한 괴리율이 발생했다. LQD는 국채가 아닌 회사채를 투자하는 ETF다. 즉 보유하는 회사채 대분이 OTC 시장에서 거래되며 국채 대비 전반적으로 낮은 유동성을 지닌다. 회의론자들이 예견했듯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자산 시장으로 인해 NAV 계산이 중단된 반면 상장 시장에서 거래되는 ETF 가격은 급속도록 하락한 결과물이다.
5% 수준의 괴리율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정말로 ETF 회의론자들이 말했듯 ETF가 본연의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일까?
지금까지 다룬 ETF 구조의 핵심은 바로 벤치마크 지수다. 가령 지수가 1% 오르면 NAV도 1% 올라야 한다. 최소한의 추적 오차가 운용사 역량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장 가격 또한 1%로 같이 올라야 한다. 왜냐면 괴리율이 발생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즉 전통적인 구조에서 ETF는 지수와 NAV가 중심이다. 시장 가격은 이에 수렴해야 하는 숫자로 인식된다.
하지만 채권형 ETF에서는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이유는 지수가 실시간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S&P 500과 같은 주식형 지수는 주식 시장의 특성상 시장에서 실시간으로 거래되고 그 정보가 동시 다발적으로 반영된다. 이런 이유에서 지수가 기준이 될 수 있다. 동시에 하루에 한 번 종가로 산출된 NAV가 ETF의 표준 가격이 된다.
하지만 채권은 장외에서 주로 거래되므로 그 정보가 주식처럼 실시간 반영되지 않는다. 특히나 국채도 아니고 거래량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회사채와 정크 본드라면 필연적으로 딜레이가 발생한다. 즉 지수의 특성상 평가의 기준이 되기에 조금 애매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LQD에서 발생했던 5%의 괴리율은 NAV를 기준으로 시장 가격에 괴리율이 발생했다고 해석하기 어렵다. 되려 반대다. 극단적인 경우 특히나 LQD와 같은 채권형 ETF에서는 NAV가 아닌 ETF의 시장 가격이 기준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BIS, 블랙록 그리고 Nasdaq 모두 이를 두고 ETF의 Price Discovery 기능이라고 표현했다. 즉 극단적인 상황에선 시장에서 거래되는 ETF가 되려 NAV와 지수에 대한 가격 시그널링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ETF가 Price Discovery 역할을 하는 메커니즘은 LP의 역할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유동성 공급자인 LP는 저평가된 ETF를 시장에서 매수하고 ETF에 환매를 넣음과 동시에 결제일에 받게 될 CU를 시장 가격에 매도한다. 즉 저평가된 ETF 시장 가격과 ETF NAV 만큼의 차익을 얻게 되며 이 과정에서 괴리율을 좁혀진다.
시장이 극도로 불안정해지면 어떨까? LP가 시장에서 ETF를 매입할 수 있지만 ETF가 보유하는 기초 자산을 거래하기는 쉽지 않다. LQD가 담는 회사채는 상장된 ETF와 다르게 유동성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LP 입장에서는 ETF를 매입하며 동시에 ETF에 환매를 넣어 받게 되는 CU를 매도해야 하는데 이 CU를 구성하는 개별 회사채를 즉각적으로 매도하지 못한다. 혹은 디스카운트를 내고 더 낮은 가격이 자산을 시장에 던져야만 한다. 이는 곧 LP의 시장 조성 역할이 힘들어짐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시장이 불안정하면 거래는 줄고 자산의 가격은 하락한다. 채권형 ETF에서 괴리율이 커진 이유는 ETF는 시장 거래에 따라 가격이 바뀌는데 지수가 상대적으로 느리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S&P 500 ETF의 경우 급락과 급등 모든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반영되므로 NAV와 시장 가격 사이에 괴리율이 낮게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채권형 ETF의 경우 ETF는 움직이는데 지수는 천천히 움직인다. NAV도 지수와 같이 래깅 한다. 그러므로 ETF의 시장 가격이 지수를 선행하는 구조가 나타나는 것이다. 즉 ETF가 지수와 NAV를 견인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참고로 LQD에서 괴리율이 마이너스 5.35% 발생하고 그 다음날 4.8% 프리미엄이 발생한 이유는 시장의 자정 작용과 함께 연준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연준은 블랙락이 운용하는 LQD와 하이일드 채권 ETF인 HYG를 대상으로 매입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로 인해 LQD의 괴리율은 하루 만에 반대로 전환됐고 이후 정상적으로 0%에 수렴했다.
채권형 ETF를 둘러싼 의혹은 코로나를 기점으로 소멸됐다. 극단적인 상화에서 NAV와 시장 가격 사이의 괴리율이 크게 발생해 ETF란 그릇이 깨질 것이란 회의론은 이제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그 어느 때보다 ETF는 금융 시장의 핵심 상품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채권형 ETF는 핵심축을 담당하고 있다.
코로나가 한창 이었던 20년도 4월 이후 24년 초까지 채권형 ETF로 총 10조 달러 규모의 자금이 유입됐다. 결국 종말론자들의 종말이다.
출처
1. The recent distress in corporate bond markets: cues from ETFs
2. Lessons from COVID-19: ETFs as a Source of Stabi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