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ETF는 주식과 채권형 ETF처럼 특정 지수를 벤치마크로 추종한다. 이렇게 보면 주식과 채권형 ETF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 미묘하지만 엄청난 차이가 숨어있다. 바로 원자재 ETF는 주로 실물이 아닌 선물에 투자한다는 점이다.
선물 거래와 함께 원자재 ETF의 구조에 대해 알아보자.
엔비디아 주식에 투자한다고 가정하자. 해당 주식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질적인 회사에 대한 지분이다. 즉 엔비디아 주식에 투자하는 행위는 엔비디아라는 회사의 일부를 소유하는 행위다. 즉 실물이 존재한다. 채권도 마찬가지다. 미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가정해 보자. 해당 채권은 주식과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실물이다. 그러므로 주식형 혹은 채권형 ETF는 대체로 실물 자산으로 이뤄져 있다.
원자재 투자는 이와 다르다. 물론 원자재는 그 자체로 실물이다. 주식과 채권처럼 전산 데이터도 될 수 없다. 엄연히 존재하는 원유, 구리 및 니켈과 같은 물질들이다. 그럼에도 원자재 ETF가 실물을 담지 않는 이유는 보관 이슈 때문이다. 원유 ETF가 정말로 실물 원유에 투자한다면 중대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왜냐면 실물 원유를 가져와 어디 간에 보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유업체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실물 원유를 보관하고 싶지 않아 한다. 구리도 마찬 가지다. 그 무거운 구리를 들고 와서 도대체 어디에 보관할 것인가? 그러므로 원자재 투자는 실물 자산 보관이랑 맹점이 존재하며 이로 인해 주식 및 채권형 ETF와는 조금 다른 구조를 가져가게 된다.
전 편에서 언급했듯 일반적으로 금융 투자자들이 원자재에 투자하는 이유는 (1) 경제 및 특정 산업의 성장에 대한 베팅과 (2) 인플레이션 헤지다. 한 마디로 실물 원자재로 무엇인가를 할 의도는 전무하다. 원자재에는 투자하고 싶지만 원자재를 직접 보유하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원자재 ETF는 실물이 아닌 선물(Future)로 많이 거래된다.
선물(Future Contract)은 오늘 정한 가격(Trade)으로 미래에 결제(Settle)하는 거래다. 보통 거래와 결제를 혼동하는 데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거래란 가격을 정하는 행위며 결제는 정해진 가격으로 돈과 상품을 주고받는 행위다. 가령 이마트에 가서 맥주를 사면 거래와 결제는 동시에 이뤄진다. 돈을 주고 맥주를 받는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대부분의 상거래는 거래와 결제가 동시에 일어나는 구조다.
하지만 가격과 결제일이 서로 상이한 사례는 매우 흔하다. 대표적인 예로 주식 거래를 언급할 수 있다. 국내 주식을 거래할 경우 거래는 주문을 넣는 지금 당장이지만, 결제되는 시점은 2 영업일 이후다. 즉 오늘 팔면, 2 영업일 후에 돈이 들어온다. 반대로 오늘 사면, 2 영업일 후에 돈이 빠진다.
선물은 가격과 결제일 사이의 간격을 2 영업일 이상으로 늘린 거래다. 2 영업일 이내의 거래를 선물 거래. 그리고 2 영업일 이후로 결제되는 거래를 바로 선물 거래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거래를 오늘 하고 결제를 먼 미래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물 거래의 주요 용도 중 하나는 미래에 발생할 가격 변동을 현시점에 고정시키는 것이다. 가령 오늘 원유가 $100인데 국내의 어떤 수입업체는 1달 후 원유 가격이 $120로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원유가 필요하지는 않다. 원유를 보관할 수 있는 저장고가 꽉 찼다고 가정해 보자. 현물 거래만 가능한 경우 해당 원유 업체가 현시점에서 할 수 있는 딱히 없다. 시간이 지나 원유가 필요한 시점에서야 원유를 수입해야 한다. 물론 이 경우 수입업체의 예상에 따라 가격이 $120 올랐다면 그만큼 높은 가격으로 사야 된다.
선물이 가능한 경우 수입업체는 다음과 같은 거래를 할 수 있다. 한 달 후에 결제되는 원유에 대해 현재 가격인 $100로 매수하는 선물 거래를 일으킨다. 그렇다면 원유 가격이 한 달 후 $120이 되더라도 수입업체는 $100에 원유를 수입할 수 있게 된다. 즉 $20 만큼의 이득이 된 셈이다. 물론 가격은 반대로 움직일 수 있다. 1달 이후 원유 가격이 반대로 $80이 되더라도 수입업체는 이를 기존에 계약했던 가격인 $100에 매입해야 한다. 이 경우 $20만큼 손실이 된다.
선물 거래의 대상이 되는 자산은 원자재뿐만 아니라 주식과 환율도 포괄한다. 가령 해외에 물건을 수출하고 달러를 받는 수출업체가 있다가 가정하자. 수출업체가 물건을 팔고 받게 되는 달러는 미래에 들어온다. 수출업체 입장에서는 물건을 잘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달러 변동에 의한 외환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령 현시점의 환율이 1 달러 당 1,000원인데 미래에 800원 되면 20%의 손실이 발생한다. 이러한 외환 리스크가 우려되는 수출업체는 선물 거래를 통해 잠재적인 환율 하락을 헤지 할 수 있다. 즉 달러를 현시점 가격인 1,000원에 파는 계약을 맺는 것이다. 만약 미래에 환율이 800원 되더라도 수출업체는 들어오는 달러 대금을 1,000원에 팔 수 있다.
선물 거래는 미래 가격 변동에 대한 리스크를 제거하는 목적도 있지만 동시에 순수한 이윤 추구의 거래로도 성립된다. 일반적인 금융 투자자가 향후 원유 가격이 오를 것이라 생각해 원유에 베팅하고 싶다 가정하자. 투자자는 수입업체가 아니므로 실물 원유를 들고 갈 수 없다. 그렇기에 투자자는 실물 원유를 매입하지 않고 원유 선물에 투자한다. 한 달 후에 원유 가격이 120$이 될 것이라 예측하고 현재 가격인 100$에 선물 계약을 하면 된다. 1달 후 투자자는 20$의 차액을 얻게 되고 해당 기간 동안 실제 원유를 소유하지 않는다.
실물은 없다. 원유 가격에 베팅하는 선물 계약만이 존재한다.
선물 계약의 특성상 결제를 약속한 미래의 날짜는 만기일이 된다. 그리고 선물 계약의 만기는 주로 월 단위로 이뤄진다. 즉 오늘 거래한 계약의 만기일은 한 달 후, 두 달 후 혹은 석 달 후 이런 식으로 월에 한번 꼴이다.
그렇다면 선물 계약의 만기일이 도래하면 어떻게 될까? 원유 선물 매수 계약이라면 만기일에 돈을 주고 실물 원유를 사 와야 한다. 구리 선물 매수라면 만기일에 현금을 주고 구리를 실물을 받는다. 달러 선물 매수라면 만기일에 원화를 주고 달러를 받게 된다.
문제는 계약이 그대로 이행된다면 원자재 투자자들은 실물을 얻게 되는 골치 아픈 문제에 봉착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선 기존 선물 계약에 반대되는 거래를 해야 한다. 가령 2월 구리 선물 매수 포지션이 있다면, 만기 때 기존 2월 만기에 대해 구리 선물 매도 거래를 일으킨다. 이 경우 두 거래는 서로 상계되므로 실물을 얻게 되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다. 간단히 비유하면 +1에 -1일 붙임으로 전체 포지션을 0으로 만드는 것이다. 다만 전체 포지션이 0이 된다는 의미는 더 이상 구리와 같은 원자재에 베팅하지 않게 됨을 뜻한다. 원자재 ETF는 지속적으로 선물 포지션을 들고 가야 상품으로써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신규 만기일에 대해 새로운 선물 계약을 하는 구조다.
결론적으로 만기가 됐을 때 ETF는 (1) 기존 선물 계약과 반대 계약을 하고 (2) 다음 만기의 신규 선물 계약을 함으로써 실물을 보유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원유에 투자한다. 이를 "근월물(기존 계약)을 매도" 및 "원월물(다음 계약)을 매수"라고 표현하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거래를 바로 선물 롤오버(Roll Over)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 롤오버 때 발생한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원자재(Commodity) ETF 구조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우선 선물 가격은 만기가 길어질수록 가격이 상승한다. 선물 거래 구조를 생각하면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 선물은 오늘 거래하고 실물을 미래에 받는 계약이다. 이는 누군가가 만기일까지 실물을 "대신" 보유해야 함을 의미한다. 즉 만기가 길어질수록 보관비용은 상승하고 이는 선물 가격에 더해진다.
잠시 돌아가서 저번 장에서 WTI 원유 선물 가격이 코로나 때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점을 상기해 보자. 어떻게 원자재 가격이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실물 원유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 하지만 선물 시장에선 가능하다. 그 이유는 바로 보관 때문이다. 이벤트는 20년 4월에 발생했는데, 당시 4월 WTI 원유 선물의 만기가 도래했으며 5월로 넘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셧 다운되며 원유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다. 즉 원유로 보관하는 창고의 룸이 꽉 차 더 이상 신규 원유를 보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로 인해 원유 트레이더들은 4월 원유 선물 매수 포지션을 청산시키기에 위해 가격과 무관하게 매도 선물 계약을 덤핑 했다. 만약 매수 포지션을 청산시키지 못하며 원유 실물을 가져와야 하는데 도무지 이를 보관할 수 있는 창가고 그 당시에 없었다. 마이너스 원유 선물 가격은 코로나로 인해 나타났던 시장의 극단적인 움직임의 여러 예시 중 하나다.
추가적으로 금리도 한몫을 한다. 투자자 입장에서 선물은 오늘 거래하고 미래에 돈을 주는 계약이다. 투자자는 만기까지 대금을 은행에 예금해 최소 예금 금리를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실물을 보관하는 주체는 만기에 결제금을 받기에 해당 기간 동안 기회비용을 잃게 된다. 즉 금리 또한 선물 가격에 한몫을 하며 만기가 길어질수록 기회비용이 커진다. 이는 보관비용처럼 선물 가격에 더해져 선물 가격을 끌어올리는 구조다.
선물 가격이 만기가 길어질수록 상승하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며 이를 콘탱고(Contango)라고 부른다. 반대의 경우를 백워데이션(Backwardation)이라 한다. 세계적인 파상생품 거래소인 시카고 상업거래소 (CME)에 반영된 구리 선물은 전형적인 콘탱고를 보이고 있다. 24년 8월 선물 가격은 $4.09인 반면 9월 물 가격은 $4.11이다. 이후 25년 2월까지 지속적으로 구리 선물 가격이 상승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만약 8월 만기 시점에서 콘탱고는 롤오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선 구리 ETF는 롤오버를 위해 근월물인 8월 구리 선물을 팔고 원월물인 10월 구리 선물 매수해야 한다. 즉 $4.09에 팔고 $4.11에 되사는 거래를 하는 셈으로 마이너스 $0.02 만큼의 스프레드가 발생하는 셈이다.
논란의 여지가 되는 부분은 여기서 $0.02 차이가 손익에 바로 즉각적으로 반영되는지에 대한 여부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0.02는 손실이 아니다. 기존 $4.09에 구리 계약 근월물을 청산하고 $4.11 만큼 신규 계약을 맺을 때 투자자는 동일한 개수의 계약을 유지할 수 없다. $0.02만큼의 스프레드로 인해 4.09/4.11에 해당하는 0.995 개수의 계약을 맺게 된다. 이 상황에서 구리 가격이 100% 올랐다고 가정해 보자. 구리 ETF의 벤치마크는 100% 상승한 반면 해당 ETF는 0.995 x 100%인 99.5% 오르게 된다. 즉 0.5%만큼의 추적 오차가 발생함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콘탱고에 따른 롤오버 비용이다. 결론적으로 롤오버 비용은 롤오버 직후 확정되지 않고 추후 원자재 가격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콘탱고에 따른 근월물과 원월물의 괴리는 크지 않다. 위의 그래프를 보더라도 콘탱고의 추이는 완만하다. 그래서 콘탱고에 따른 롤오버 비용은 코로나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핵심은 실물이 아닌 선물로 원자재에 투자하는 모든 ETF는 이러한 롤오버 리스크에 직면한다. 그러므로 원자재 ETF에 투자하고 싶다면 사전에 선물 거래과 롤오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수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