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 몰입할 때 나무를 사주는 이유

‘건강한’ 자극을 찾는 ADHD 아이 이야기

by ADHDLAB

학교에서 오자마자 소파에 가방을 던져놓고

거실 바닥에 누운 채

유튜브 쇼츠를 넘겨보는 아이의 뒷모습을 봅니다.

낮시간 허락된 30분의 만들기 영상 시청은 눈감고 넘어갑니다.

자제가 안되는 날은 적당히 패널티도 주고 잔소리도 해가며 패드를 덮게 만듭니다.


그래도 '요즘 유튜브 좀 많이 보네'싶은 때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옵니다.

이럴 때 저는 원목 나무를 주문합니다.


나무를 주문한다니, 흔히 듣던 해법은 아니죠?

게다가 나무는 톱질을 해야하고, 조각칼로 파내다 손이 베일수도 있는 어찌보면 위험하고 학생과 어울리지 않는 재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에게 원목나무는 메이킹으로 관심을 옮길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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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여기 가자", "저기 가자", "이거 사자" 등등 요구가 많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아이는 늘 새로운 자극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ADHD 진단을 받고나서야 아이가 자극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는 걸 또렷하게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 제 고민은 아이를 어떻게 말리느냐가 아니라, 이 자극 추구 성향을 어떻게 다르게 흘려보낼까 였습니다.

왜냐하면 자극을 찾아다니는 아이에게 "참아." "그만해"라는 말은 그 순간을 넘기는 임시방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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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며 제가 가장 걱정했던 건 게임과 영상 과몰입이었습니다.

자극추구 성향이 있는 아이가 게임에 빠져버리면

그 외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재미없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게임이라는 게 모든 놀이를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습니다.

그 블랙홀 안으로 아이가 빨려 들어가면, 꺼내오기 어려울 것 같아 솔직히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유튜브를 오래 보거나 게임을 찾을 때면

"안돼"라는 말 대신 아이가 좋아하는 활동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기로 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목공입니다.

바다는 메이킹을 좋아합니다.

톱질을 하고 조각칼로 나무를 깎아내 형태를 만듭니다.

그래서 아이의 미디어 시간이 길다 싶을 때 나무를 주문해두면, 나무가 도착했을 때 현저히 미디어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집에 도착한 나무를 보는 순간 아이의 몸이 자연스럽게 작업대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쇼츠를 보는 대신 나무를 깎았어요.

이렇게 아이의 자극 추구 성향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보드게임도 많이 사주었고 함께 플레이했습니다.

디지털 세상 속 체험보다는 손 끝으로 만지며 전략을 짜는 보드게임이 백배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화면 앞에 혼자 앉아 게임할 때와 가족이나 친구들이 마주앉아 보드게임 카드 한 장을 뒤집을 때의 뇌는 분명히 다르게 작동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보드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웃음과 대화가 생깁니다. 유튜브를 볼 때는 쉽게 생기지 않는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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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다른 자극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을 계속 열어주고 싶습니다.


아이가 운동하러 나가자고 하면 바로 따라나서는 편입니다. 아이는 미국에 있을 때 골프를 좋아했습니다. 드라이빙 레인지에 가서 연습하고 싶어했고 저와 아이 아빠는 늘 함께 했습니다.

맑은 하늘 아래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하며 함박 웃는 아이의 얼굴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탁구로 흥미가 옮겨갔습니다.

아이는 매일 저녁 아빠의 퇴근 시간을 기다립니다.

아빠가 집에 오면 둘은 탁구장으로 향합니다.

집에 있었다면 유튜브를 켰을 시간에 땀을 흘리고, 수다를 떨고, 기분 좋은 피로를 안고 돌아옵니다.


제가 좋아하는 달리기도 아이를 꼬셔 함께 나가려고 합니다. 한강에서 달리면 기분이 좋다고 제안하고 풍경이 제일 멋진 곳에 데려갔습니다. 그리곤 러닝 메이트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러닝 벨트를 선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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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유튜브 말고도 기분 좋아질 수 있는 시간이 있고, 가족과 웃을 수 있으며, 자신의 취미생활도 할 기회가 계속 열려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디지털 기기를 멀리 하기가 참 어려운 시대.

아이가 두 발로 땅을 딛고 '지구인으로 사는 재미'를 아는 사람으로는 카우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그래도 계속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유튜브와 게임만큼 아니 그보다 더 재미있는 자극이 많다는 걸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자주 말해줍니다.


"이거 너무 재밌다!!!"


그러면 아이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두"


그 표정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유튜브보다, 게임보다,

우리가 함께 웃을 수 있는 자극이 아직 이 세상에 많다는 걸
아이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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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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