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아이의 특별한 학원 선생님

아이의 속도에 맞춰주는 선생님 찾기

by ADHDLAB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입니다.


"오늘 피곤해. 학원 못 가. 엄마가 선생님한테 연락해 줘."

오후 4시에 영어학원 수업이 있는 날. 학원 가기 10분 전..

오늘은 꼭 가기로 했는데, 아이의 마음이 바뀐 모양이에요.

아이의 말 한마디에 오늘은 학원에 갈 거라는 기대감이 와르르 무너졌습다.

학원 가기 10분 전에 자주 벌어지던 장면이었기 때문이에요.


아이가 왜 학원 가기 10분 전에 늘 이런 말을 꺼낼까.

오래 지켜보고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하교 후 주의력을 끌어 모아 만들기를 하거나 유튜브를 보다 에너지를 다 써버린다는 것.

몰입해서 놀다 보면 정작 해야 할 일을 놓치게 되고,

ADHD 아이의 특징인 '과제 전환의 어려움'도 겹쳐졌습니다.

맘껏 놀다가 학원에 가야한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주의를 전환하는 일이 아이에게 버거워보였어요.

게다가 학원은 솔직히 지루한 곳이잖아요.

자주 반복되는 일이었기에 옆에서 지켜보기 힘들었습니다.

정해진 스케줄을 소화하는 습관은 충동적이고 산만한 ADHD인 우리 아이가 키워야 할 중요한 능력이라는 걸 알기에

이럴 때마다 제 안의 불안함이 자극되어

깊은 한숨이 나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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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직접 소통하는 선생님


그날 영어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습니다.

"선생님 오늘 아이가 학원에 못갈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답장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어머님, 아이랑 통화할 수 있을까요?"

였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아이와 직접 통화를 했어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대화를 엿들어보니

오늘 어떤 상황인지, 학원에 오는게 왜 힘든지, 어떻게 하면 학원에 올 수 있겠는지 차분히 아이에게 묻고 있는 것 같았어요.

고개를 푹 숙인채 통화하던 아이는 전화를 끊자마자 가방을 주섬주섬 챙겼습니다.

"선생님이 오늘은 한시간만 수업 할거래."

아이는 터덜터덜 현관문을 나섰고 그날 학원에서 한시간만 수업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집에 온 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선생님이 이제 학원 가기 싫을 땐 내가 직접 연락 하래."


제가 선생님께 감사했던 건

그날 선생님은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설명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한 사람으로 대해주었다는 점입니다.

학원 시스템에 맞춰 행동하는 아이들도 많을텐데 겉도는 저희 아이를 챙겨주려고

직접 에너지를 더 써가며 아이에게 맞는 방식을 제안해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아이는 그날 학원에 갈 수 있었고,

그 뒤에도 여러 번 아이는 선생님께 직접 "학원 못가요" 연락을 하고 선생님의 제안에 이끌려 다시 학원에 가서 1~2시간만 수업을 하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수업 시간을 줄여준 덕분에 학원을 끊는 최악의 상황을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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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학습량을 주기


몇 달이 지나자 아이는 학원에 애정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반 아이들과 팽이를 접어 놀기도 하고, 학원 근처에서 음료수를 사먹는 소소한 즐거움도 생겼어요.


그런데 두번째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숙제였습니다.


늘 미루다 못한 숙제가 부담이 되어 학원에 가기 싫어질 정도였죠.

이 때도 선생님은 아이에게 맞춰줬어요.

숙제의 양을 줄여주었죠. 그리고 못한 숙제는 학원에 와서 할 수 있도록 격려해줬어요.


숙제를 못하더라도 학원엔 갈 수 있도록,

숙제를 줄여주어 완료하는 경험을 해보도록 배려해줬어요.

이렇게 환경을 바꿔주니 아이가

"아 숙제 못했다. 학원 가서 할게."

라고 말하기 시작했어요.

숙제 때문에 학원을 포기하지 않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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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를 심어주기


학원을 어떻게든 갈 수 있게 해주고

숙제를 어떻게든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니

아이가 의지를 갖고 학원을 다녔어요.

상담을 하게 됐을 때 감사 인사를 전했어요.

덕분에 아이가 학원에 적응을 하게 됐고 애정을 갖고 있다고요.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아이는 목표를 정해주면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아이에요."

아이의 장점을 알아봐주었기에 이렇게까지 환경을 바꿔주셨나 싶어 고마운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영어학원의 총 3시간 수업 중 한 시간은 영어책 읽기 수업이었어요.

영어책을 읽고 퀴즈를 풀어야하는데, 한 달에 읽어야하는 목표 권수가 정해져있었죠.

처음 한두달은 그 목표를 채우지 못해 아이의 흥미가 눈에 띄게 떨어졌는데

언젠가부터 목표를 채워야겠다고 의지를 다지고 있었어요.

어째서일까 궁금했는데 선생님이 알려주시더라고요.


아이의 목표 권수를 다른 아이들의 절반으로 줄여줬고,

목표를 채우면 포켓몬카드 1박스를 주기로 했다고요.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했던 건 더 큰 목표가 아니라,

도달 가능한 목표 하나였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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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아이에게 맞는 선생님은
특별한 교육법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속도를 ‘느리다’고 판단하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를 시스템에 맞추는 대신,
시스템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준 어른 한 명.
그 한 사람이 아이의 학습을 이어지게 했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바꾸지 못해 불안해하지만,
사실 아이가 버틸 수 있도록 환경을 조정해 줄 어른이 한 명만 있어도
아이는 계속 걸어갈 수 있다는 걸, 그때 저는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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