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가라앉은 뒤에야 가능한 것들
ADHD 아이들은 쉽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어려움이 있어요.
센 불 위에 올려놓은 주전자 같은 느낌이죠.
쉽게 끓고, 쉽게 끓어 넘쳐요.
감정폭발은 사실 그간의 감정이 누적되어서 벌어지는 일이에요.
단계는 다음과 같죠.
감정 축적 -> 사소한 계기 발생(트리거) -> 감정 참기 -> 계기 재발생 -> 감정 폭발
부모는 마지막 단계인 감정 폭발에 주목하지만, 사실 아이는 폭발이 일어나기까지 꾹 참고 있었어요.
아이의 감정 폭발을 마주했을 때
'겨우 이런 일로 화를 내나'란 생각이 들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아이의 화 이면에 있는 그간의 축적된 감정들이 있어요.
이걸 이해하고 나면 아이를 더 성숙한 자세로 대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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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제가 처음부터 아이의 감정폭발에 잘 대응한 건 아니에요.
처음 아이의 감정 폭발을 눈으로 봤을 때, 머리가 하얘졌어요.
아이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서 저도 화가 났죠.
그 순간 저는 아이를 진정시키기보단, 상황을 멈추고 싶었던 것 같아요.
화를 내는 아이의 손을 잡고 방으로 끌고 들어간 적도 있고,
저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아이에게 저도 소리를 지른 적도 있어요.
그런데 이 모든 방법이 소용없었어요.
아이가 감정을 폭발시킬 땐, 아이에게 아무것도 들리지 않더라고요.
아이의 감정폭발로 힘들던 2년여의 기간 동안
아이의 담당 의사 선생님께 여러 번 상의를 했어요.
“아이가 감정 폭발을 일으킬 때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감정이 폭발됐다면 어머님이 할 일은 아이를 가만히 두는 것뿐일 거예요. “
“어떻게 그렇게 해요?”
“어려우시겠지만, 폭발한 감정은 언젠간 가라앉게 되어 있어요. 아이가 다치지 않게만 주변을 잘 봐주세요.”
당시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참 잔인하게 다가왔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은 제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조언으로 들렸는데, 그게 엄마로서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이었어요.
엄마인 내가 무엇이든 해줘야 할 것 같은 마음.
화를 내며 고통스러워하는 이 아이를 혼자 놔두는 게 미안한 마음.
이 통제감을 극복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 저 방법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써봤지만 효과가 없다는 걸 깨달은 뒤
저는 이 무력함이야말로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타인의 감정을 제가 진정시켜 줄 수 없다는 것.
이걸 받아들이는 데 2년이 걸렸습니다.
사실 이건 무력함이 아니라
자율성의 회복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감정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주는 것.
그리고 저는 곧 감정적 거리 두기의 효과를 체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감정폭발을 일으킨 날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물건을 적당히 치워주고 옆 방에서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뛰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30분쯤 흘렀을 때
아이가 조용히 방 문을 열었습니다.
퉁퉁 눈이 부은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 나 진정됐어.”
아이와 한참을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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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작가님의 책 <훈육의 정석>에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화내는 아이가 가장 바라는 부모의 모습은
평정심을 가진 부모다.
화내는 아이 앞에서
평정심을 갖기란 참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평정심을 갖고 아이가 감정을 가라앉힐 때까지 기다리는 것 밖에는 효과 있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내는 아이 앞에서 평정심을 갖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알아요.
아이가 가장 바랐던 건, 해결책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어른이었다는 것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