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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아이의 부정적인 말에 대처하는 법

by ADHDLAB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를 기억합니다.

만들기가 거듭 마음처럼 되지 않아 짜증이 쌓여 화를 내던 아이는

손에 쥔 걸 던지고 난 뒤에도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거렸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입에서 이 말이 나왔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

나아가 엄마인 나의 존재가 부정되는 말.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어떤 말이든 해야 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날 제가 해준 말은 이것뿐이었습니다.


아이는 이 말을 한번 내뱉은 뒤

감정폭발을 일으킬 때마다 끝내 이 말을 내뱉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이 말의 충격은 커서,

꼬리표처럼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아이가 또 그 말을 하면 어쩌지?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아이의 말에 잘 대답하고 싶은데 쉽사리 답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게 된 건

아이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부터입니다.

말은 마음의 표현입니다.

존재가 부정당했다는 충격 때문에 속뜻을 알아채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아이는 좌절감, 답답함, 짜증, 화, 실망감을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언어에 담았던 것 같습니다.

나 지금 너무 좌절하고 있다고

너무 화가 난다고

나 자신이 너무 실망스럽다고


존재를 부정하는 말의 겉껍질을 거둬내니

안에 부정적 정서에 휩싸인 아이가 있었습니다.

늘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하는 자신이 싫어 고통스러운 아이

그 순간 얼마나 고통스러웠기에 극단적인 언어까지 선택했을까.

아이가 안타까워졌습니다.



ADHD 아이의 특징 중 하나는

감정 조절의 어려움입니다.

전 처음엔 만들기 하다 잘 안 되는 것 가지고 왜 짜증이 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 기준으로 아이를 판단했기 때문이겠죠

아이는 감정 조절이 어려웠고

실수를 했을 때 느껴지는 좌절감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고 쌓아두었다가 '화'로 표출하고 있었습니다.


ADHD의 또 하나의 특징은 극단적 언어 선택입니다.

제 기준으로는 현재 상황이 죽음 또는 끝을 이야기할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이 아닌데, 아이는 극단적인 언어를 선택합니다. 상황을 양비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성공 아니면 실패다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성공과 실패 사이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죠.


위 두 가지 퍼즐이 풀린 건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부터입니다.

'그래 너는 그랬구나'

아이의 감정과 느낌을 알아채고 수용하고 나니 '행동 통제'라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육아의 대원칙 "감정은 수용하되 행동은 통제하라"

아이의 극단적 언어 앞에서 이 원칙을 적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궁리한 대응법입니다.


1. 표현의 한계&올바른 표현법 알려주기


반드시 아이의 감정이 가라앉은 뒤 말해줍니다.

"엄마는 너를 사랑하려고 낳았어. 네가 태어난 이유는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야. 속상하고 답답한 건 알겠어. 그런데 그 말은 너무 과해. 너무 속상하다고 말해도 엄마는 너의 마음을 충분히 알아."


2. 일상에서 실천법

자기 전에 말해줍니다.

"오늘 우리 많이 사랑했고, 내일은 더 많이 사랑하자"




이렇게 저는 아이의 극단적 언어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스스로에게 느끼는 실망감이나 좌절감을 다루는 데 미숙합니다.

미숙함을 감정폭발과 극단적 언어로 표현하죠.

엄마인 저는 아이의 극단적 언어에 담담해지려고 노력합니다.

이 말을 처음 듣고 엄마라는 나의 존재까지 부정당한다는 생각에 괴로웠는데요.

전혀 그럴 일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아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아이는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성장해 있을 겁니다.

11살 무렵 극단적 언어를 쏟아내던 아이는

약 2년 후 극단적 언어를 잘 내뱉지 않게 됐습니다.

혹여 극단적 말을 하더라도 자신이 한 말이 과했다는 걸 금방 인식합니다.

감정 조절력도 나아지고 있습니다.

화나 짜증 같은 부정적 감정이 비교적 빠르게 가라앉고

감정이 가라앉고 나면 저와 마주 보고 앉아

대화를 통해 행동을 되돌아보고 더 나은 방법도 생각해 볼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이렇게 성장하고 있는 아이가 대견하고 기특합니다.


아이의 성장 속도에 제 발걸음을 맞추니

비로소 아이의 성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저와 아이의 성장에 대한 기록입니다.

제 경험담이 감정표현에 미숙하고, 극단적 언어 앞에서 걱정하고 있는 부모님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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