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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y 01. 2024

사랑하긴 했을까

 지아가 상담실에 들어갔을 때 강혜순 씨는 훌쩍이고 있었다.      


 이렇게 고운 분이 어쩐 일로 로펌에 와서 울고 있을까.    

  

 상담실 한편에 웅크리고 있는 그녀는 마치 어긋난 풍경 같았다.

    

 세상에 로펌과 어울릴만한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혜순 씨는 특히 부자연스러웠다. 그녀는 상담실 테이블 위로 꽃잎을 떨어트리는 꽃처럼 눈물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지아를 보고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어깨를 파르르 떨며 흐느꼈고 눈언저리뿐 아니라 볼까지 핏발이 서서 분홍색 작약을 보는 듯했다.      


 지아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그저 그녀 앞에 각 티슈를 조용히 가져다 놓았다.      


 한참을 그렇게 울던 혜순 씨가 진정되었는지 티슈 몇 장을 뽑았다. 휴지로 눈물을 훔치며 멋쩍게 말했다.      


 “변호사님. 죄송합니다. 여기 와서 앉아있는데 갑자기 울컥해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네요.”

 “아.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괘념치 말라는 말과 달리 지아는 무척 당황했다. 제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우는 어른을 볼 일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번이 지아에겐 두 번째 경험일 터였다. 처음은 중학생 때 마주한 엄마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아는 여태껏 의심해 왔다. 혹여 자신이 환상을 본 것은 아닌지.     


 한 장의 사진처럼 뇌리에 박혀버린 장면인데도 말이다.     


 학교에서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돌아온 날이었다.      


 현관문을 열었는데 평소와 달리 집안 공기가 휑했다. 적막하고 쓸쓸한 데다 무거운 분위기까지 겹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지아는 거실, 부엌, 베란다를 돌아다니며 엄마, 엄마 하며 엄마를 찾았다. 그러다 안방 문을 열었을 때 화장대 앞에 앉아있는 엄마를 보았다. 하루 새 폭삭 늙어버린, 푸석푸석한 얼굴을 하고서 숨죽여 울고 있는 엄마를…     


 “엄마, 왜 울어?”      


 지아가 물었다. 그러나 엄마는 지아의 목소리를 못 들은 사람마냥 계속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지아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부모가 울면 심각하게 불안해지는 여느 자식들과 같았다. 엄마의 불행이 자신 때문은 아닌지 염려했다.      


 지아는 하나하나 점검해 봤다. 자신의 어떤 행동이 엄마를 울게 했는지…… 엄마 말을 잘 안 들어서? 불성실해서? 연기가 힘들다고 칭얼대서? 대본을 제대로 외우지 않아서? 어제 말대꾸해서? 기타 등등 생각하느라 쩔쩔매고 있었다.     


 엄마는 딸의 걱정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 보였다. 수액이 다 빠져나간 고목처럼 메말라가고 있었다.     


 그날 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엄마는 아버지가 해외 출장을 갔다고 핑계를 댔다. 하지만 지아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 년 후 아버지가 돌아왔다. 엄마 앞에 무릎 꿇고 잘못을 빌었다. 그 때문에 지아는 아버지가 딸과 아내를 버리고 딴 여자를 선택해 떠났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외도는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 미세한 균열을 만들었다. 엄마는 아빠가 다시 그 여자와 만날까 봐 의심하고 불안해했다. 한 번 금이 간 관계를 봉합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엄마와 아빠는 자주 다투었고 원래부터 외모지상주의였던 엄마가 외모에 더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 집착은 지아에게도 손을 뻗었다.      


 여자는 무조건 예뻐야 한다고. 조금만 흐트러지면 남자는 바람난다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했다. 엄격했던 식단은 더 유별나졌고 해야 할 운동의 가짓수가 늘어났다.      


 몸매가 망가진다며 처음부터 지아 하나만 낳았던 엄만데.      


 그렇게 자기 관리가 철저했던 엄만데.      


 그래도 별수 없었잖아, 하면서 반문하고 싶었지만 엄마의 상처를 헤집을까 봐 참았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따랐던 것은 엄마의 생각에 동의해서가 아니었다. 불안에 잠식된 엄마를 끄집어낼 방도를 알지 못해서, 다시 메마른 고목 같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지아는 엄마가 기뻐하는 일들을 했다. 연기에 몰입했고 아름다워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필 혜순 씨를 보는데 왜 엄마가 떠올랐을까. 엄마의 관점에서는 가해자에 해당하는 그녀가 피해자의 행색을 하고서 슬퍼하고 있었다.      


 그랬다. 그녀는 유부남과 사귀는 사이였다.      


 “자그마치 십 년입니다. 그와 만난 지는요.”     


 혜순 씨가 겨우 말을 꺼내놓고선 다시 감정이 북받친 듯 머뭇거렸다. 지아는 조용히 기다렸다. 그녀는 잠시 기억을 더듬는 듯하더니 말을 이었다.      


 “제가 보험설계사를 하고 있을 때 인연이 되었어요. 저를 신뢰하던 한 고객이 그를 소개해 주었지요. 그가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거래처가 많아서 알아두면 좋을 거라고 했어요.      


저는 몇 번 그의 회사에 찾아가서 보험상품을 권유했고 그는 제법 좋은 조건의 상품을 몇 개나 들어주었지요. 그렇게 고객으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저에게 전화를 했어요, 회사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서 단체보험을 들어주겠다며 만나자고 했지요.      


그가 회사가 아니라 식당을 예약했다며 장소를 알려줬어요. 그는 중요한 고객이었기에 저는 흔쾌히 약속 장소로 나갔습니다.      


맛난 음식을 먹고 큰 계약도 따내게 되어 몹시 기분이 좋았지요. 이후 몇 번 더 식사 자리가 있었어요.      


그러다 그가 거래처를 만나는 자리에 저를 부른 적이 있었어요. 그의 추천으로 거래처 사장들의 보험도 다수 체결하게 되었답니다.      


그리하여 저는 보험왕이라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지요. 그에게 말도 못 하게 고마웠어요. 하지만 그에게 끌린 것은 단순히 그런 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일 때문에 이제껏 온갖 부류의 인간을 접해 왔습니다. 음~~ 입에 담기 거북한 일도 많았지요.  

    

변호사님도 사건 하다 보면 많이 보셨겠지만 일을 빌미로 부적절한 관계를 요구하는, 그런 거. 아시죠?     


그는 다른 남자들과 많이 다른 편이었습니다. 우리 나이엔 보기 드문 로맨티시스트였죠.      


박학다식했고 예술 관련해서도 조예가 깊어 그쪽 분들도 제게 많이 소개해 주었어요.      


제가 그에게 처음 받은 선물이 유명 화가의 그림이라는 게 믿어지시나요? 여하튼 저도 모르게 그에게 의지하게 되었답니다.      


그도 저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하루는 밥만 먹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술 한 잔 같이하자고 하더군요. 저야 이미 그에게 반해있던 터라 흔쾌히 술자리까지 갔지요.      


술을 함께 마시고 밤길을 걷다가 가로등 아래에서 그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겠어요. 그것도 나이에 안 맞게 빅뱅의 노래를 말이에요. 혹시 변호사님도 아시나요? ‘날 봐, 귀순’이라는 노래요. ‘날 봐 날 봐 혜순~ 날 봐 날 봐 혜순…… 가슴이 콩닥콩닥 콩닥’ 하면서 사랑을 고백했지요.      


그는 아내가 있었지만 사이가 나빠 별거한 지 꽤 되었다고 했어요. 고 삼 딸이 있어서 당장 이혼하긴 어렵지만, 곧 정리할 예정이라고… 교제를 원한다고 했어요.      


저도 남편과 사별한 지 꽤 되었기 때문에 외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시원시원한 성격에 열정적인 구애를 하는 그를 거부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렇게 우리의 사랑이 시작되었지요.”     


***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수민이 물었다.      


 “으, 응.”

 “뭐야. 왜? 혜순 씨 사건 골치 아픈 거야?”     


 지아의 엉거주춤한 태도에 수민이 염려하는 목소리로 다그쳤다.      


 “아, 아니. 그냥…… 수민아. 사랑이 뭘까?”

 “왜? 민선혁 때문에 아직 마음이 안 좋아? 내가 괜히 연애 이야기를 해서?”     


 “아니야. 그런 거. 혜순 씨 말이야.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가 몇 년 전에 사줬던 아파트를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어.”

 “헐~~ 왜에? 둘이 헤어진 거야? 그래서 달라는 건가?”     


 “헤어져서 달라는 게 아니라 소송으로 헤어지게 생겼지.”

 “엥? 그게 말이 돼?”     


 “혜순 씨가 사귀던 남자가 유부남이었거든. 아내가 둘의 관계를 알게 되어서 소송을 사주한 거지.”

 “정말? 혜순 씨는 굳이 왜 유부남과 사귀었을까? 안 그래도 남자들이 줄을 설 것 같은데…….”     


 “그렇지? 그녀를 보고 있자니 사랑이 뭘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남자는 결국 아내에게 돌아간 거잖아. 소송까지 하는 걸 보면.”

 “혜순 씨랑 잠깐 즐긴 거였다고?”     


 “십 년은 되었다고 하니 잠깐 즐긴 것도 아니지.”

 “그렇게 오랫동안 이중생활을 해왔다는 거야? 그 남자?”     


 “놀라운 건 혜순 씨는 정말로 그 남자와 결혼하리라 믿었다는 거지.”

 “남자가 유부남인 줄 몰랐던 거야?”     


 “아니. 알고 만났어.”

 “그런데 어떻게 결혼할 거라 믿었데?”     


 “그러게. 아내와 곧 헤어질 거라면서 십 년을 끌었데.”

 “그걸 믿었다고?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     


 “시부모 될 사람과도 교류했었데. 원고의 어머니가 정말로 며느리처럼 대했다지 뭐야.”

 “뭔 그런 집안이 다 있데? 요즘 같은 세상에? 그걸 아내는 모르고 있었다고? 완전 콩가루 집안 아냐? 그건 그렇고 청구원인이 뭐야? 증여한 걸 무슨 이유를 대며 돌려달라고 하던데?”


 “명의신탁을 주장하던걸. 혜순 씨 명의만 빌려서 산 거라고…”     


 지아의 대답을 들은 수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냉장고로 향했다. 그리고 차가운 맥주 한 병을 꺼내와 지아와 자신의 빈 잔을 채웠다. 좀 전까지 살 때문에 고민이라던 수민은 시원하게 원샷하고선 말했다.   

   

 “나 얼마 전에 했던 소송은 사귀던 중에 줬던 선물을 다 돌려달라는 사건이었어. 결혼하기로 해서 준 건데 결혼 못하게 되었다면서…


구체적으로 결혼 이야기를 한 적도 없고 헤어진 것도 본인 때문인데 전적으로 우리 의뢰인 탓만 하더라. 좋다고 줄 땐 언제고 마음 바뀌면 싹 다 돌려달라며 소송까지 하더라.


아직 제대로 연애도 못해봤는데 이런 사건, 이혼 사건 처리하다 보면 무서워서 연애도 결혼도 못할 것 같애. 사랑은 애당초 불가능할 것 같으니 우리 몸이라도 만들자. 너 약속했다~~ 발레 꼭 가는 거지?”     


 아마도 지아는 조만간 발레학원에 가야 할 것 같다. 수민의 손에 이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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