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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nie Oct 27. 2022

브라질 Brazil

리우 데 자네이루



오늘을 살다

언젠가 만난 브라질리언 친구가 말했다. “브라질리언들은 항상 행복해! 왜냐하면 우리는 오늘만 사니까” 이파네마 해변의 사람들을 보다 보니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그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오늘만 산다. 아저씨의 원빈도 아니고, 오늘만 산다니… 하지만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해변에서 노니는 브라질리언들을 보니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았다.

사람의 걱정이라는 건 대부분, 과거에 대한 후회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오는 거니까, 현재만 사는 이들에게 근심은 없어 보였다. 물론 실상 그렇기야 하겠냐만은 최소한 그래 보이긴 했다. ‘오늘을 살아라’,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정작 꿈을 위해, 혹은 미래를 위해 달리다 보면 오늘을 살기는 쉽지가 않다.

코파카바나와 이파네마에서 본 브라질리언들을 본받아 오늘을 충실하게 살자 다짐했건만 한국에 돌아오고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또 내일을 살고 있다. 하지만 가끔 리우 데 자네이루 해변의 그 브라질리언들이 생각나는 날이면 ‘오늘을 살아야지’라고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구원의 예수

우리가 브라질 하면 떠올리는 것. 바로 이 구원의 예수상이다. 양팔을 벌린 채로 리우 데 자네이루를 내려다보는 예수상. 구원의 예수상은 브라질의 포르투갈로부터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조각상이다. 구원의 예수상을 보기 위해서는 트램을 타고 코르코바도 산 정상에 올라야 한다.

 정상에 도착하니 예수상의 뒷모습이 먼저 보였다. 옆을 돌아 예수상 앞으로 가보니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예수상과 사진을 한번 찍어볼 거라고 바닥에 눕고, 멀리 가기도 하고… 갖은 방법을 다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내 눈길을 잡은 것은 예수상 앞에 펼쳐진 리우의 풍경! 과연 세계적인 미항이라 할만했다. 리우의 또 다른 랜드마크인 설탕 빵산과 해변, 항구들이 파노라마 뷰로 펼쳐졌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를 굽어 살피는 구원의 예수상이라니, 베트맨이 지키는 고담시티의 성스러운 버전이랄까. 인자하게 양팔을 벌린 커다란 예수상을 보고 있자면 리우 데 자네이루는 영원히 축복받는 도시가 될 것 같다.




이과수 폭포 

누가 만든 건지, 세계 3대 폭포 중에 하나라고 하니 기대를 아니할 수 없었다. 이과수는 파라과이 원주민 과라니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물] 과수[경탄할 만큼 큰], 즉 아주 큰 물이라는 뜻이다.

이과수에는 수백 개의 폭포가 있고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웅장한 폭포는 악마의 목구멍 [Garganta del Diablo]이다. 길이 700m 폭 150m에 달하는 악마의 목구멍을 보고 있자면, 과라니족들이 왜 큰 물이라고 했는지, 이곳을 왜 악마의 목구멍이라고 했는지 절로 이해가 되었다. 흔히들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라는 표현들을 많이 쓰는데, 악마의 목구멍은 뭐랄까. 엄청나게 장엄하게 떨어지는 물줄기?! 실제로 봐야만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장엄함이다.

잔잔한 상류와 대비되게 수직으로, 하아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장대하게 떨어지는 폭포를 보다 보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떨어지는 폭포를 따라 머리도 비워지는 느낌이다.

세계 3대 폭포 중에 하나. 이렇게 이과수를 정의하기에 이과수는 너무 크다. 과라니족들이 말한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큰 물이라고 하면 모를까. 그러니까 이 광활한 대자연 속에 나는 한낱 미물이라는 글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이과수로 가야 한다.




Girl from Ipanema

나는 보사노바를 좋아한다. 나긋나긋한 리듬에 조근조근한 보컬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저기 어디 인도양 어드메의 해변 해먹에 누워있는 기분이 든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곡을 뽑으라면 단연 ‘이파네마의 소녀’다! 듣기에는 나긋나긋 기분 좋은 곡이지만 가사를 알고 나면 꽤 슬프다. 이파네마의 소녀를 짝사랑하는 한 남자, 남자는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고백을 하고 싶지만 그녀는 그에게 관심이 없다.

‘이파네마의 소녀가 걸어가네. The girl from ipanema goes walking

그녀가 지나칠 때마다 그는 웃어주지만, And when she passes, he smiles

그녀는 그를 보지 않아. But she doesn’t see, but she doesn’t see-

어떻게 이렇게 시적인 가사를 적었을까 싶은데, 이 시적인 노래가 탄생한 장소가 아직 남아있다! 이파네마에 있는 한 레스토랑인데 톰 조빔과 비니시우스가 여기서 이파네마의 소녀를 작곡했다고 한다. 원래부터 이름이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레스토랑 이름도 이파네마의 소녀 ‘Garota de ipanema’다. 그러니 안 가볼 수가 있나- 가로타 지 이파네마의 내부는 ‘이파네마의 소녀’와 관련된 전시로 가득했다. 보사노바의 창시자가 보사노바의 대표곡을 쓴 이 레스토랑은 지금은 삐까냐라는 소고기 요리로 유명했다. 보사노바의 성지에서 거한 고기 요리를 먹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명곡과 소고기라니… 아주 안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소고기도 기차게 맛있고 술도 술술 들어간다. 그러니까 소년도 결국 이파네마 소녀의 마음은 얻지 못했지만, 맛있는 소고기는 먹었겠지.




빵 지 아수카르

이름도 예쁘다, 설탕 빵. 브라질 설탕 빵은 저렇게 동글 뾰족한 모양인가부다. 설탕 빵산은 보기에도 예쁘지만 빵산 정산에서 보는 리우 풍경이 장관이다. 우리는 일몰 즈음 설탕 빵산에 올라서 해가 지고 캄캄해진 리우 데 자네이루에 불빛이 들어올 때까지 오래도록 풍경을 즐겼다.

 저어 멀리로 구원의 예수상이 조그맣게 보였다. 항구에는 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해변가로는 집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저 어딘가에는 파벨라도 있겠지. 어느 도시든 양면을 가지고 있지만 리우는 그런 차이가 더욱 극명한 도시였다. 코파카바나, 이파네마 같이 여유로운 해변, 구원의 예수상과 빵 지 아수까르 같이 유명한 랜드마크, 세계 최대의 축제 카니발까지… 이런 면면이 있는가 하면 무법이 난무하는 악명 높은 빈민촌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기도 했다.

 하지만 빵산 정상에서는 모든 게 아득하니 아름답게만 보였다. 장난감처럼 보이는 작은 요트들과 빼곡한 건물들,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을 만큼 아득한 높이의 빵 지 아수카르 정상에서 우리는 오래도록 맥주를 홀짝였다. 




셀라론 계단

리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많지만 실상 리우는 ‘파벨라’라고 불리는 빈민촌으로도 유명하다. 공권력이 통하지 않을 만큼 악명 높은 동네라 수많은 영화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그런 파벨라와 가장 맞닿은 리우의 랜드마크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셀라론 계단이다.

셀라론이라는 칠레 사람이 1990년부터 2013년 사망할 때까지 만든 계단으로, 처음에는 폐기물 더미에서 수거한 타일로 만들었지만 계단이 유명해진 뒤로는 전 세계에서 타일을 기부해주었다고 한다. 한 구역의 계단 전체가 알록달록 비비드 한 컬러의 타일로 뒤덮여 있는 모습은 제법 장관이다. 채도가 높은 빨강, 노랑, 초록 등등의 타일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경쾌해지는 느낌이랄까. 컬러테라피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계단을 따라 오르다 보면 수많은 관광객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셀카를 찍고 있다. 한 사람이 20년 남짓 이룬 업적이다 보니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타일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다 보면 하루 종일 봐도 모자랄 것 같은 셀라론 계단. 어떤 타일에는 아프리카가, 어떤 타일에는 유럽이, 어떤 타일에는 아시아가 들어있다. 전 세계가 들어있는 이 계단에서 관광객뿐만 아니라 파벨라의 사람들도 밝은 에너지를 많이 많이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Is this love

해 질 녘의 이파네마를 산책하는데 밥 말리의 is this love가 들려온다. 하늘은 바알갛고 물안개는 뿌옇게 끼어있고 서핑을 즐기는 사람, 해변에 누워있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들 사이로 밥 말리의 노래까지 깔려버리니까 이건 뭐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다. 결국 밥 말리 밴드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세계일주의 마지막 밤, 이파네마에서 밥 말리를 듣는 것보다 더 완벽한 마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가만히 보니 우리 옆에 앉아있던 여자와 아이들이 메인보컬 아저씨의 아내와 아이들인 듯했다. 아이들은 아빠가 버스킹을 하는 게 익숙한 듯 아빠를 바라보다 관중들 사이를 뛰어다니다를 반복했다. 묘한 분위기였다. 가난하지만 동시에 여유가 느껴지는 분위기. 집시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그때 가만히 지켜보던 아주머니 한 분이 갓 튀긴 따끈따끈한 감자튀김 한 봉을 아이에게 건넨다. 아주머니도 아이도 서로를 보면서 활짝 웃었다.

저게 감자튀김이 아니라 돈이었다면 어땠을까. 아이에게 동정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하면서 작은 도움을 준다는 게 얼마나 감동적이던지. 그러니까 나에게 세계일주 마지막 밤은 밥 말리의 is this love와 감자튀김을 받아 들고 활짝 웃는 아이의 발간 얼굴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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