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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시간-2

by 비비안

할아버지의 자살 이후 나에게 고통의 시간들이 찾아왔다.



첫 번째 고통은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다.

나는 원래 빛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엔 어둠이 두려워졌다.

어둠은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시키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난 온갖 상상을 하게 되었다.


초저녁부터 모든 방에 불을 킨다.

거실, 안방, 내 방, 부엌.

이곳저곳 할 것 없이 전등을 다 켜둔 채 혼자 있는 집에서 시간이 빨리 가 부모님이 오시길 바랐다.


일 나가셨던 부모님이 밤 12시에 집에 들어오시면 환하게 켜두었던 전등을 다 끄고 무드등과 크리스마스 라이트를 킨다.


집을 비울 때면 돌아올 때를 생각해 전등이나 무드등을 켜둔 채 집을 나섰다.


잘 때는 방에 작은 버섯 모양의 무드등을 켜 두었다.


종종 무드등을 잘못 쳐 전원이 꺼지면 부리나케 휴대폰 손전등이라도 켠다.




두 번째 고통은 죄책감과 불면이다.

잠을 깊게 잘 수가 없었다.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지나도 눈을 감으면 할아버지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퉁퉁 부은 얼굴, 잘 떠지지도 않는 두 눈으로 힘 없이 나를 바라보신다.

원망의 눈빛 같기도 하고 처절한 고통을 느끼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의 눈빛 같기도 했다.


그 시선이 느껴지면 눈을 감았다가도 뜰 수밖에 없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오른손으로 가슴을 토닥토닥 거리며 잠들려고 노력했다.


할아버지가 느껴지는 날엔 차라리 편했던 것 같기도 하다.


더 심한 것이 있었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떤 여자였다.

머리를 다 풀어헤치고 축축이 젖은 여자가 엉금엉금 기어서 거실에서부터 부엌까지, 부엌에서부터 내 방까지 천천히 기어 온다.


실제로 봤다는 게 아니라 눈을 감으면 그 모습이 너무 생생해서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굉장히 끈적하게 슬프고 무기력한 여인이었다.


왜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 여인을 나의 '죄책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름에는 에어컨을 켜야 해서, 겨울에는 추워서 부모님은 안방 문을 항상 닫으셨다.

나는 내 방 문을 닫는 게 더 두려웠기에 거실과 연결된 느낌이었고 할아버지 방과도 연결된 느낌이었다.

두려움은 더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집에 엄마와 아빠가 자고 있었지만 나의 두려움을 이겨내는데 큰 도움이 되어 주진 못하셨다.


밤마다 지옥 같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수강생들을 관리하느라 너무너무 피곤한데 밤이 되어도 잠을 잘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날 보고 있어서 자려고 감은 눈을 뜨고, 여인이 나에게 기어 오고 있어서 쉬려고 감은 눈을 뜬다.


무한도전 영상을 틀어놓고 있다 보면 몇 번이고 눈을 뜨다가 어느 순간 잠에 들 수 있었다.

시끌시끌한 사람소리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어 해가 지고 달이 뜨면 또다시 내 방은 지옥이 되었다.

밤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리며 혼자 수십밤을 지샜다.


“집이 무서워요. “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고민하시다 스피닝실에서 사용하던 디스코 라이트를 켜고 셋이 거실에 동그랗게 모여 트로트 노래 리듬에 맞춰 춤을 춘 적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즐거운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으셨던것같다.


그 당시엔 바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그때의 영상을 보면 그런 노력을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함을 느낀다.




세 번째 고통은 슬픔과 외로움이다.

장례식 직후에는 슬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었다.

아무리 그래도 친할아버지이고 같이 살았던 가족인데 ‘생각보다 하나도 안 슬프네?’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정이 깊어졌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수강생과 잘 대화를 하다가도 갑자기 감정이 툭 쳐지는 느낌이 들면 눈물이 미친 듯이 나왔다.


"잠시만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라는 말과 함께 빠르게 방을 떠난다.

방에서 몇 발자국 나서지도 못한 채 바닥에 다리 근육이 풀린 사람처럼 주저앉고 만다.

그리고 세상이 떠나가라 운다.

꺼이꺼이 운다.

옆집에서 "초상났나?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울어?"라고 생각할 정도로 울었다.


내가 왜 우는지도 몰랐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은 건가?'

'할아버지가 안쓰러운 건가?'

'난 왜 우는 거지?'


아무리 스스로에게 물어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냥 마음이 무겁고 깊었다.

깊고 깊은 저수지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숨도 못 쉴 정도로 울다가 지치면 갑자기 조용히 바닥에 누워 웅크린다.

그리고 뱃속에 있는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잠시 쉰다.


곧 언제 울었냐는 듯 천천히 일어나서 다시 방으로 가 일을 한다.


종종 꿈을 꿨다.

특히 낮잠을 자면 이런 꿈을 자주 꾸었는데, 꿈은 매우 조용하고 끈적했다.

꿈속엔 아무도 없었다.

그곳은 묵직했고 짭짤했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말로 표현을 못하겠는 느낌이다.


끝없는 고독..

처절한 외로움..

끈적한 노을..

그런 느낌이다.


잠에서 깨면 또 엉엉 울어댄다.

집을 잃은 아이처럼 엉엉 울다가 지치면 잠시 웅크린다.

그런 일상을 반복했다.


한바탕 운 날은 하루 종일 기운이 없었다.


하루는 저녁에 빈 집에서 혼자 요리를 하는데 순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잊었었다.

할아버지가 요리하는 걸 좋아했다는 걸 인지한 순간, 그 할아버지가 자살을 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 순간.

칼을 떨어트리듯 도마에 툭 내려놓고 도마에 체중을 싣고 몸을 떨며 울기 시작했다.

이내 다리에 힘이 풀려 부엌 구석에 가 풀썩 앉아 엉엉 울었다.

서랍 손잡이라도 꽉 붙잡고 목이 쉴 정도로 울었다.

아무리 울어도 울어도, 소리를 지르고 질러도, 가슴팍을 때리고 때려도 마음이 시원해지지 않았다.

머리가 맑아지지 않았다.

죽을 듯이 슬펐다.

왜 이렇게 슬픈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힘도 없었다.

그냥 죽을 것 같이 힘들었다.


첫째 고양이 망고가 다가와 "야옹~"하고 울었다.

고마웠지만 아무런 위로가 되어주진 못했다.


고양이의 애교에도 난 몇십 분을 엉엉 울었던 것 같다.

두려움에 떨며 그리워하고 죄책감을 느낀다는 건 너무나도 혼란스럽고 마음 아프며 피하고 싶은 감정의 조합이다.




네 번째 변화는 자살에 대한 생각이다.

할아버지의 자살을 경험하기 전에도 너무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거나 탈출구가 보이지 않으면 죽고 싶었던 때가 몇 번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다가 핸들을 확 놓아버리고 싶었다거나,

빠르게 달려가는 차들 사이에 몸을 던지고 싶었다거나 등등의 순간들 말이다.


이번엔 그때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미친 사람처럼 울 때는 차라리 괜찮았다.

문제는 울지 않는 시간이었다.


울지 않을 땐 멍했다.

침대에 누우면 벽에 못을 박아 끈을 걸고 나의 목에 걸어 할아버지와 똑같은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내가 보였다.

계속해서 그 장면을 리플레이하고 리플레이한다.

죽을까.

죽어야 하는 건가.

죽을까.

죽어야 하는 건가.

죽을까.

죽어야 하는 건가.

죽을까.

죽어야 하는 건가.

죽을까.

죽어야 하는 건가.


마치 이런 반복을 돌고 도는 느낌이다.

정신을 차려보면 30분 정도가 지나있다.


약 30분 정도가 지나면 공기가 살짝 맑아지고 가벼워지며 죽음에 대한 생각이 줄어든다.


나는 이때 자살 생각을 시작하면 30분 동안이 가장 위험한 시간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밤이 되어 화장대에 기대 주저앉아 있다가 창문을 바라본다.

침대에 올라간다. 창문틀에 올라간다. 방충망을 열고 고민을 하다가 창 밖으로 떨어지는 나를 본다.

이 또한 계속해서 리플레이, 또 리플레이.

반복에 반복을 더하다 이게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구글에 열심히 검색을 하다가 나라에서 운영하는 24시간 자살방지센터에 전화를 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24시간 운영하는 자살예방상담전화입니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아.. 제가 자살 생각을 하는 건 아닌데.. 그냥 전화해보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그러시군요. 지금 마음이 힘드신 건가요? 무슨 일이 있으셨기에 새벽까지 잠을 못 주무신 걸까요."

"그게... 저희 할아버지가.. 8월 15일에 자살을 하셨어요."


"아이고.. 많이 힘드시겠어요. 지금 혼자 계신가요?"

"네 혼자 있어요. 옆 방엔 엄마 아빠가 있어요."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의 자살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상담사분은 따뜻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나와 천천히 대화를 이어 나갔다.


처음이었다.

할아버지의 자살을 타인에게 말한 게 처음이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올라와 헐떡거리며 말을 하기도 했다.

상담사님은 괜찮다고 말해주시며 천천히 감정을 추스르고 충분히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어느새 40분이 넘게 통화를 했다.


마음이 조금 편해진 후에는 상담사분께 나의 솔직한 마음을 꺼내보았다.

"제가 자꾸 스스로 죽는 모습을 상상하는데.. 이거 정상은 아닌 건가요?"

"어떤 모습을 상상하시는 걸까요?"


"그냥.. 창문에 올라가서 떨어지는 제가 보이거나.. 벽에 목을 매다는 제가 보여요."

"직접 시도하거나 하신 적은 없는 걸까요?"


"네 아직은요. 그냥 보이기만 해요."

"그러시군요. 아무래도 심리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전국민마음투자 사업이 진행 중인데 관심이 있으시면 정보 알려드릴게요."


그렇게 전마투에 대한 정보도 받고 나름 가벼운 마음으로 그날은 잠에 들었다.


심리상담은 묘하게 부담이 되는 느낌이라 나중에 받아야지 하는 마음만 가졌었다.


할아버지의 자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겪는 힘듦 또한 나의 몫이자 당연히 경험해야 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심리상담에 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나의 책임을 다 하지 않는 것이라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너무나도 괴롭고 지옥 같았지만 오히려 그 괴로움과 지옥 같음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역설적인 감정이었다.

그래서 난 매일같이 힘들어하면서도 심리상담을 바로 신청하지 못했다.



하루는 남자친구네 집에 놀러 가 떡볶이를 먹었다.

이때는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라는 드라마가 입소문을 타던 때였어서 남자친구네 가족도 이 드라마를 틀어놓고 저녁을 먹었다.


살인자가 숙소에서 사람을 죽이는 장면과 그 이후의 장면들 그리고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이 나왔다.

울렁거렸다. 어지러웠다.


걱정하실 것 같아 나의 상태를 티 내고 싶지 않았다.

꾹 참고 저녁을 맛있게 먹은 이후엔 도망치듯 남자친구의 집을 나와 놀이터에서 잠시 앉아 휴식을 취했다.

밤하늘이 이상하게 반짝거렸다.

공기가 이상하게 청량했다.

어지러웠다.

남자친구랑 대화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NPC가 된 것처럼 현실적이지 않게 느껴졌다.

모든 게 현실적이지 않았다.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고 영화 속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엄청난 각성 상태였다.

나는 심리학 용어에 관심이 많았기에 현재 나의 상태가 '이인증'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심리치료던 약물치료던 무엇이던 도움을 받아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약물치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우선 심리치료를 받기로 했다.

자살유가족을 대상으로 나라에서 심리상담을 8회 무료 지원해준다고 한다.


은행에 가 국민행복카드를 발급한다.

집 근처 마음에 드는 심리센터를 찾고 동사무소에 신청을 한다.

동사무소에서 자택에 찾아와 간단한 문항조사 설문지를 준다.

자살 생각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얼마나 자주 우울함을 느끼는지 등의 척도를 적는 설문지이다.


몇 주 동안 기다리면 바우처가 발급되고 8회 동안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달 반 만에 심리상담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24시간 운영되는 자살예방방지전화

�(국번 없이) 109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

심리치료 8회 무료지원

우울·불안 등 정서적 어려움이 있는 국민, 나이 및 소득 기준 없음

https://www.socialservice.or.kr:444/user/htmlEditor/view2.do?p_sn=71







눈을 감으면 보였던 기어오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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