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매체 기자로 살아가는 마음
대학교 막학기에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다. 지방거점국립대학의 인문대생이며 학점이 별로 좋지도 않고 이렇다할 대외활동이나 인턴십도 하지 않았고, 국어와 한국사를 좋아했던 내가 당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다만 시기가 좀 늦었다. 남들은 6월이나 7월쯤 시작하는데 나는 12월에 강의를 결제했다. 벌써 5개월이나 뒤처진 셈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려고 치열하게 공부했다. 강의를 모조리 섭렵했고, 내가 듣는 강사가 출간한 거의 모든 문제집을 풀었다. 4월에 있던 국가직은 예상한 대로 망했지만 6월에 본 지방직은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거의 90점과 95점을 받았지만 영어에서 미끄러졌다. 한 번 더 할까, 생각했지만 시간을 더 투자한다고 해서 잘볼 수 있는 시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6개월 만에 시험 공부를 접고 취준을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고 나조차도 이 선택에 의문을 가졌다.
내가 두 번째로 도전한 것은 출판편집자였다.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고 있고, 일 년에 책을 100권 넘게 읽고, 국어와 철학을 공부한 내게 더할나위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출판편집자는 진입장벽이 높았다. 한겨례아카데미나 SBI를 수료하고 싶었지만 둘 다 여의치 않았다. 군산에서 혼자 취업을 준비했던 나는 서류도 거의 붙지 않았고, 운이 좋아 가끔 파주로 면접을 보러 가기도 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25살의 끝자락에서 나는 조급하고 불안했다. 모아둔 돈이 떨어져가고 있었다. 집에서 지원받을 상황도 아니었다. 닥치는 대로 서류를 넣어야겠다고 판단한 나는, 기자와 에디터 등 각종 공고에 서류를 냈다. 직종을 바꾸니 면접 연락이 대폭 늘었다.
케이팝 오타쿠였던 나는 늘 '기자'라는 직업을 동경해왔다. 기자면 연예인 볼 수 있는 거 아니야? 하는 깃털보다 가벼운 마음이었지만 어쨌든. 그래서 나는 한 인터넷 매체의 연예 기자로 취직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합격한 매체는 취재를 하지 않는 곳이었다. 실망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내가 재밌게 본 콘텐츠에서 '야마', 즉 기사로 쓸 수 있는 주제를 뽑아 발제한다. 나의 발제가 채택되면 그걸로 글을 쓴다. 고잉세븐틴에서 조슈아가 얼음물에 발을 담그고 라면 먹는 장면을 기사로 옮겨 적으며 나는 이 일이 정말이지 맘에 들었다. 이렇게 오타쿠에게 딱인 직업일 수가. 하지만 일에는 언제나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법. 나의 마음은 하루가 다르게 녹슬어갔다. 내가 별로 관심 없는 드라마에 대해 쓰거나 여자 아이돌의 노출 기사를 써야할 때는 퇴사 생각이 솟구쳤다. 내가 바로 기레기구나. 자조하며 한 글자 한 글자 힘겹게 적었다.
그래도 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는 건 기쁜 일이다. 가끔은 메일로 피드백이 온다. "기자님 기사 잘 읽었습니다"로 시작하는. 그럴 땐 내가 그래도 세상에 도움이 되었구나, 하며 안심하게 된다. 내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으며 대중이 무슨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매일 퇴사라는 단어를 품고 살지만, 이 일에 담긴 한 톨의 애정이 펜을 잡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