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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비율 이대일 May 20. 2019

법정 스님과 이태석 신부님


"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이다.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나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런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안 완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그런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증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것이므로 한번 가 보고 싶다  "

- 미리 쓰는 유서, 법정- 





  법정 스님이 돌아가셨다. 올바른 생각(正思)과 올바른 말(正語), 그리고 올바른 삶의 태도(正業)로 평생을 일관하신 스님의 타계 소식에 가슴이 아릿해온다. 나로서야 이 분을 직접 뵌 일이 없어 단지 그 저서나 강론을 통해 알고 있을 뿐이지만 누구보다 맑은 생각과 생활로써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아온 분이다. 두 발을 대지에 깊이 내려 무욕의 삶을 꼬박꼬박 걸어오신 분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 1817~1862)나 조주선사(趙州禪師 ; 778~897) 같은 분을 친구 삼고 자연을 스승 삼아 청빈의 덕을 온 몸으로 실천해낸 분이다. 사색과 명상을 통해 텅 빈 것의 충만감과 아름다움을 짚어내고 올곧은 언어를 심어낸 고매한 분이다. 보스턴에 있는 「윌든」호수를 찾았을 때도 소로우의 집터에서, 나보다 먼저 이곳을 다녀간 당신을 떠올리게 만든 분이다. 향년 79세. 옛날 같았으면 수를 누릴 만큼 누렸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러나 요즈막의 수명으론 아쉬운 생각이 드는 연세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로부터 이태석 신부 얘기를 전해 듣고 이 분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필름을 접하게 된다. 이 분이 법정 스님에 두 달 앞서 타계했다는 걸 알게된다. 평범한 우리들 대개가 꺼려하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는 한센병 환자를 돌본 분이다. 의료봉사와 교육활동을 펼치는가 하면 온 몸으로 사랑을 실천해낸 분이다. 소리 없이 홀로 사랑의 불길로 타올라 대지의 열기를 따사로운 마음의 온기로 바꿔낸 분이다. 진정 사랑과 봉사가 무언지를 일러준 분이요 속진에 찌든 우리들에게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안겨 준 아름다운 분이다.


 향년 49세. 아프리카에서 우물 파다 왔다고, 우물 파러 가야 한다고 걱정하며 암으로 쓰러진, 정녕 안타까운 나이다. 한창 사랑의 향기를 내뿜을 수 있었던, 너무도 이른 죽음이다. 




가진 것 하나를 열로 나누면 우리가 가진 것이 십 분의 일로 줄어드는 속세의 수학과는 달리 가진 것 하나를 열로 나누었기에 그것이 ‘천’이나 ‘만’으로 부푼다는 하늘나라의 참된 수학,
끊임없는 나눔만이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행복 정석을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이태석 신부


  


  두 분 모두 우리 사회에서 참으로 희소하고 정말로 아까운 분들이다. 진정 종교인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온 몸으로 구현해낸, 꽃 같은 분들이다. 홍진으로 범벅된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한 송이 연꽃으로 솟아났다 사라져간 분들이다. 그런데 내가 이상해하는 건 이런 분들이 무슨 일인지 거의 동시에 자취를 감추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건, 이런 분들이 무슨 도를 닦고 마음 밭을 갈아 이렇게 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가령 법정 스님의 경우 불문(佛問)으로 들기 전엔 산지기나 등대지기를 원했다고 하거니와, 인생의 후반부를 바로 그 같은 형태로 살았고 이태석 신부 또한 어릴 적 소원이 고아들을 돌보는 것이었다고 하거니와 실제로 그런 형태의 삶의 길로 들어섰으니 이 어찌 기묘한 일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인생길은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결정된 다음에 시작된다. 그리고 이런 분들은 무슨 자연의 법칙인 양 극소수만이 등장한다. 실상이 이러하니 이 두 분의 삶의 길은 당신들이 선택한 것이기 보다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요, 사랑으로 청빈으로 옳고 바르게 산다는 것 또한 우리의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닌 듯하니, 우리에게 자유나 의지라는 게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 가득해진다. 


 꼭 30년 차이로 지상의 빛을 본 이 두 분이 같은 해에 거의 동시에 이승을 뒤로 한 것 또한 우리가 모르는 이유에 따른 건 아닐까. 아니면 그저 우연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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