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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버드 Nov 15. 2019

특별하게 여김으로 특별해진다.

 많은 직장인이 그렇듯 나 또한 오랫동안 지옥철을 타고 회사에 출근했다. 지옥철은 출퇴근 시간의 서울 지하철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계단 입구에서부터 쓰나미처럼 사람들이 밀려들고 이미 꽉 찬 객차 안으로 계속해서 들이친다. 표정 없이 밀고 밀리는 얼굴들. 방어할 틈도 없이 겹겹이 쌓이는 무기력한 무게는 이내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고 하루를 채 시작도 하기 전에 심신의 힘을 뺏어버린다.


어느 날 출근길, 전철이 한강 위를 지날 때였다.


“안녕하십니까, 승객 여러분. 잠시 여유를 내어 창 밖을 봐주시겠습니까. 오늘은 유난히 날씨가 맑고 한강도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근심 걱정 떨쳐 버리시고 힘찬 하루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000 기관사였습니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도착지 안내가 아닌 손님들의 안부를 묻는 젊은 기관사의 밝은 목소리가 객차 스피커 아래로 청량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무생물 같던 사람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들어 밖을 보았다. 나도 사람들 어깨 사이 틈을 비집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솜사탕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 파란 강물과 빛나는 윤슬. 새들이 대형을 지어 수면 위를 비행하고 붉은빛의 아침해가 찬란한 빛줄기를 사방에 뻗고 있었다. 멍한 내 얼굴 위로 빛 하나가 튕겨와닿자 순간 내 마음이 스르르 떨리며 움직였다. 다른 이들도 그랬을까. 사람들의 무감각한 표정이 잠시나마 생기를 찾고 함께 생동하는 세상을 느끼는 듯했다.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지옥철이 그다지 싫지 않았다. 그리고 전철이 한강 위를 지날 때면 자주 고개를 들어 밖을 봤다. 매일 지나는 똑같은 길인데도 해가 뜰 때와 질 때, 비가 오고 눈이 올 때, 매 순간 세상의 모습은 다양한 모습으로 달라졌고 그걸 보는 내 마음도 다채로워졌다. 


곰돌이 푸가 말했다.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마치 보물찾기 같았다. 어릴 적 학교에서 소풍을 가면 나무 둥치 안에, 돌 틈에, 풀숲 사이에 숨겨져 있는 보물 적힌 쪽지를 찾으려 여기저기 열심히도 뛰었다. 어른이 된 우리는 이제 매일의 일상에서 그 쪽지를 찾아야 한다. 설령 예상치 못한 힘든 날이 오더라도 섣부른 낙심은 금물이다. 그 안에 어떤 쪽지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므로. 우리의 하루는 특별해서 특별한 게 아니라, 특별하게 여김으로 특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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