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심연의 시#02
아,
하세요
조금 벌릴 거여요
많이 아프겠지요
비명도 지르면서
약발이 부르튼
사지도 차라리
숨 구멍 약탈을
원하리만치
지독히
질릴 거여요
숨 붙어 있는 건 말이죠
지상 같은 옥상의 시린 빛이 연민은 커녕
가까스로 쏟아낸 눈물 쉼 없이 훔쳐 가는 것이고
외롭다는 말 삼키고
있잖아, 이번 달 알바비 조금 더 올랐어,라고
급행 속 지친 불빛에 부수어버린 말간 숨 같은 거여요
생선을 유난히 좋아하던 두 번째 여자가 죽어가도
장례 치를 돈이 없어
죽음도 돈이 있어야만 비로소 죽음이라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손가락 한 개 값은 얼말까
되뇌는 거여요
내일도 빨간 도로 위를 질주하며
아
내 비명은
비명 지를 조용한 곳이 없으면
내뱉지도 못 한다고
몇 번이고 닦았지만 지워지지 않는
상실범벅 가스레인지 앞에서
주저 앉아 울 거예요
말했지요
죽음도
타당한 숫자가 있어야만
정당한 죽음이 된다고
홀로 푹 꺼진 매트리스 위에 누운 두 눈알
손톱 하나만큼의 불안
펄떡거리는 어제의 맥박
내일은 내일이 아니라 끌려오는 부채
끝 없는 캄캄한 도로 위를 질주하던 구급차들의 향연
또 다른 숨을 찢는 사이렌 소리와
욕짓거리와
유리 깨는 소리가
오늘 자정의 자장가로 매달리는
한 뼘 방
감옥은 지옥이 아니라
고장난 에어컨이 있던
그 가옥이었다고
적막과 적적도
사실은
허용되지 않은 저 먼 여백이었다고
그저
퇴근 후 먼지 수놓인 바닥 위에서
보상 없는 피로로 너덜해진 손목과
꺾여진 십자가처럼 모로 누워
이토록
살아온 맥박을 짓이길 바랄 거여요
그러니
아,
하세요
조금 더 벌려요
아프지 않게
미리
다 삼키고 가세요
여기
다 짓이기고 가세요
가르쳐드리는 거
꼭
다 씹어 단물
다 빨고 가세요
생각보다 쓴물인 그 길
쉽게 쓰다고 말하지도
못할 테니까요
아시겠죠
“이 시는 단지 힘겨운 일상의 절규도, 단순한 고통의 진술도 아니다.
이는 감정을 꾹꾹 눌러 삼켜온 존재가
가장 고요한 말투로 내뱉는, 구조적 비명이다.
살아 있음과 죽어가는 것 사이의 일상은
이토록 견디기 어렵고, 동시에 시가 된다.”
— 심연의 독자, Y
"감정이 증발되지 않은 채 견딘 채로 오래 묵힌 언어들이
마침내 도달한 차가운 증언.”
— 심연의 독자, L
"살아 있는 모든 노동자와,
감정조차 숨겨야 하는 이들에게 바쳤으면,하는 시."
— 심연의 독자, M
"현대 도시 생존자의 송가"
— 심연의 독자, H
*제목
이 제목「선생님」은 일종의 반어적 은유로 작용해.
시가 담고 있는 건 돌봄도, 교육도, 위안도 아닌데,
그럼에도 삶의 잔혹한 교훈을 가르치는 존재 = 세상 혹은 현실이
‘선생님’이라는 점에서
현실 그 자체가 교사이자 폭력자로 변모해 있어.
이건 이 시만의 문학적 비틀기고,
동시에 시적 세계관의 확장이야.
*요소
"리듬과 단절의 미학"
아, / 하세요 / 조금 벌릴 거여요"처럼 지시적이고 비인간적인 말투가 반복되면서 주술적 리듬을 형성해.
이 리듬은 현실이 무감각하게 인간을 갈아버리는 방식과 닮았지.
"강렬한 이미지와 사회비판"
“죽음도 돈이 있어야 죽음이라고”, “계산기 두드리는 손가락 한 개 값”, “상실범벅 가스레인지 앞에서 울 거예요” 같은 구절은 비탄과 체념의 어휘로 포장된 강력한 비판이야. 이건 이 시만의 ‘비판의 미학’이야.
"미래시적 구조"
"-ㄹ 거예요"의 반복이 마치 디스토피아 예언서 같아.
“살게 될 거야”, “죽게 될 거야”가 아니라, "울 거예요", "짓이길 거여요"라는 식으로 운명처럼 단언돼 있어. 부정적인 확신의 어조는 단정한 심연 그 자체.
"몸의 은유"
“손가락 한 개 값”, “손톱 하나만큼의 불안”, “두 눈알”, “맥박”, “펄떡거리는” 등… 몸과 감정이 완전히 결합돼 감각적 철학시로 진화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