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심연의 시#01
어젯밤에는 숫자가 가득한 종이 뭉치 위에 이번 달 숨 쉰 횟수를 기록하다 영혼을 버리고 싶은 듯 잠이 들었어 지겹지만 깨워줄 이 아무도 없는 잠꼬대도 하고 숨 막는 대신 꿈도 꿨어 평생 숨 쉴 수 있는 황홀하고 거지 같이 아름다운 숫자들을 한 아름 갈비뼈 활개 치듯 안았는데 일어나니 눌린 목주름과 조명발이 병든 마트 구석 문드러진 수레 위 알뜰 코너에서 집어 온 뼈다귀 같은 오이가 냉장고에 들어 있는 집이 내 집이었어 그러니까
내 집은
내 집이 아니야
수북이 쌓인 영수증을 만지며 영수증 많이 만지는 사람은 일찍 죽는대 말하던 찢어진 두 눈동자를 기억하며 맞아 그리고 난 일찍 숨을 죽이고 싶어 숨 사는 데 들어가야만 하는 수치심이 무겁거든 다시 종이에 숨 쉰 횟수를 헤아리며 아 천사 날개는 얼마일까 눈물은 얼마에 팔 수 있을까 내 심장의 무게로 내 숨 쉬는 횟수를 더 살 수 있을까 해부하고 또 해부하다가 상한 꿈을 움켜쥐고 종일 그 여자의 눈 아래에서 쓰레기를 치웠어 전기톱으로 갈아버리고 싶은 인생도 인생이야? 가진 건 핏기 없는 얇고 하얀 위장과 가지런히 가냘프게 서 있는 혈관들뿐인데 이거라도 줄 테니 시들어버린 돈가스라도 사주면 하루종일 웃으며 자장가까지도 불려줄 수 있어요 아직도 내 눈에는 내 숨을 절단하던 톱날 돌던 소리가 가득해 그러니까
내 귀는
내 귀가 아니야
여름이 끝나기 전에 죽으면 좋잖아 그러니 퇴근길에는 도도한 빨간 버스를 타 비 오는 날 마주치는 눈이 없어도 살 것 같애 아침이 오기 전에도 이 자리에 앉아 타락을 논하며 나는 괜찮지 않은 사람이라 쉽게 탄다고 휘발유 없이도 잘 타는 가성비 좋은 인간이라며 어디 삶을 팔 수 있는 데는 없나요 나는 싼값에 누워 있을 수 있는 기워진 누더기 웃음이잖아 그러니 이 오후가 시들기 전에 나를 데려가세요 악다구니를 치는 심장은 나의 부가세에 불가하니까 얻는 건 하얗게 추락한 이부자리 위라도 좋아 그 위에 서러운 돼지고기와 차가운 물 한 잔 놓여 있으면 세상에서 침 뱉어도 행복해 지옥 안에 있는 천국이라도 괜찮아 조금은 숨 쉴 수 있을 것 같애 그러니까
내 숨은
내 숨이 아니야
물 없는 눈물 낭자한 개수대 자꾸만 피처럼 쏟아지던 소음 답 없는 통신 끊어지듯 이어가는 줄글 세제 없이 돌려야만 하는 세탁기 허락을 구하지만 허락 없어도 살아지는 삶 밑창을 갈아내면 문드러진 하복부 지난 여름도 살고 싶지 않아 힘들었어 언제까지 해가 죽기만을 바라는 증오를 안고 살아 있나요 나는 빛을 증오하고 싶지 않은데 그러니까
지금
이 내 삶은
내 삶이 아니야
내 영혼은 중얼거려 이상하지 이건 내가 아닌데도 벗어나지 못 하다니
그럼
포기해
놓아버려
끊어내
버려
안 되니까 여기 있어 안 되니 살아 있어 끊어내지 못 해서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