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주 Oct 21. 2022

다른 세계를 만난다는 것

문과 문 사이, 우리 집만의 레시피는?

차를 타고,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야만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을까?

그렇진 않다. 꼭 여행(이동)을 통해서만 다른 세상을 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커다랗고 네모난 문과 문 사이, 그 경계도 다른 세상으로 가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우정을 나눈 친구가 2명 있다. 엄마들끼리 친구로 지냈고, 우리는 당연하게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고 있다. 가족과 친구, 그 사이 애매하지만 특별한 관계다.


초등학생 때는 거의 매일 그 친구네 집에서 놀았다. 어느 날은 저녁까지 놀다가 밥을 얻어먹었는데 식탁 위에 올려진 수많은 반찬 중 계란찜이 유독 특이했다. 우리 집에선 뚝배기에 계란찜이 있는데 친구네는 유리그릇에 계란찜이 자리 잡고 있었다.


워낙 계란을 좋아해서 가장 먼저 계란찜을 한 입 먹어봤다. 너무 부드러운 탓에 자연스레 부서졌다. 과장 조금 보태서 입 안에서 녹았다. ‘어..? 우리 집 계란찜은 부드럽긴 하지만 그래도 씹어야 했는데.. 이건 뭐지..?’라는 생각과 함께 그 맛에 반해버렸다. 마치 급식 계란찜의 상위 호환 버전 같았다.


그때 먹었던 보드라운 계란찜을 항상 잊을 수 없었다. 지나고 나서야 알았지만 그게 일본식 계란찜이었던 것이다. 요즘은 일본식 계란찜을 전자레인지로 쉽게 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때 당시엔 너무 보드라운 계란찜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친구는 우리 집 계란찜이 신기했겠지?


그리고 생각해본다.
우리 집 만의 레시피가 있을까?
친구들을 만나며, 사회생활을 하며 알게 된 우리 집에서만 먹는 특별한 메뉴 두가지를 소개한다.


가래떡 + 조미김
갓 쪄서 나온 뜨끈뜨끈한 가래떡은 그냥 먹는 게 제일 맛있지만, 김을 한번 싸 먹어보자. 다시는 조청을 안 찾을 수도 있다. 콩국수에 설탕 대신 소금! 을 외치는 사람이라면 안 좋아할 수 없는 맛이다


막장으로 만든 된장찌개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는 강원도식 막장은 된장과는 조금 다르다. 색도 더 진하고 쿰쿰한 냄새가 난다. 나는 모든 된장찌개를 막장으로 만드는 줄 알았지만 몇 번 외식을 해보니 우리 집 된장찌개가 특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의 요리하면 막장으로 만든 된장찌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렇게 십수 년이 지난 후, 엄마의 수술로 간호를 하고 있을 때였다. 친구네 어머니께서 수술한 친구(우리 엄마)와 간호를 하고 있는 딸(나)에게 집밥을 해서 보내준다는 연락이 왔고 먹고 싶은 걸 말하라 하셨다. 나는 단번에 계란찜을 말했다. 전복죽부터 잘게 썬 김치, 김밥과 갈비까지 다양한 음식들 사이에서 초등학생 때로 돌아간 듯 계란찜을 가장 먼저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이전 09화 재료에도 시상식이 있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