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C 그 이상의 무언가
우리 집은 식사를 마치고 과일을 먹는다. 다 같이 밥을 먹고 나서 엄마는 설거지를, 아빠는 과일을 깎는다. 언니와 나, 동생은 식탁을 정리하거나 과일을 씻어 아빠에게 가져다준다. 일종의 암묵적인 약속인 셈이다.
부모님의 손님이 집에 놀러 온 어느 날, 식사를 마치고 과일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엄마는 여느 때처럼 설거지를 하고 계셨고, 나는 사과를 씻어 쟁반에 담아 거실로 가져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빠가 앉아계신 자리 앞에 쟁반을 놓았다. 아빠는 자연스레 칼을 들고 사과를 깎았다. 손님은 내가 과일 깎아주는 줄 알았는데 아빠한테 가져다주는 거냐며 놀란 듯이 웃었다.
처음 웃음소리를 듣고는 꽤나 놀랐다. 우리 집에선 이게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다지 놀랍고 웃을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늘 그래 왔듯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손님의 웃음소리를 듣고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일을 깎아주는 아빠는 많지 않구나’
그리고 자취를 시작하며 후식으로 과일을 먹는 일이 당연하지도, 쉽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일을 혼자 다 먹기엔 양이 항상 많았고, 썩어서 버리기도 일쑤였다. 더군다나 과일을 깎아줄 아빠도 없었다. 하지만 19년 동안 길러진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았다. 밥을 먹고 난 뒤 후식으로 과일을 먹어야 했다.
다행히도 아빠가 과일 깎는 모습을 어깨너머 봐 왔기 때문에 과일을 잘 깎는 방법을 알고는 있었다. 부모님은 한 달에 한두 번 자취방에 과일, 반찬 등을 가져다주셨고, 부모님이 주신 과일이 다 떨어지면 마트에서 과일을 사 와서 혼자서도 후식을 챙겨 먹었다.
그렇게 지금도 후식으로 여러 과일을 먹으며 비타민C와 부모님의 애정을 동시에 충전한다. 이렇게 나는 또 나를 대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