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인스타소설

by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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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 은상’s #인스타소설



할아버지는 예전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한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버린 시절의 이야기다. 나 또한 그 시절의 이야기 듣기를 좋아한다. 똑같은 이야기인데도 자꾸 듣고 싶다. 이런 게 마음인 듯하다.

“할아버지, 우주선 이야기해주세요. 전 그게 제일 재미있어요.”

“또? 다 기억하지 않니?”

“기억하는 거하고 듣는 건 다르죠.”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할아버지 시절에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장착된 로봇이 협력해 우주를 개발하던 ‘대우주 시대’가 있었다.

2000년대 중반,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인간의 의식주는 인공지능이 거의 다 해결해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다만 인공지능이 사용하는 전력 양이 문제였다. 석탄 연료는 그 효용을 다했고, 태양열 발전과 핵발전으로 일으킨 전기는 거의 대부분 인공지능을 유지할 서버팜(Server Farm)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에 들어가는 전력 양을 줄이려니, 이미 세상은 인공지능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진퇴양난이었을 법한 그때, 인간과 인공지능은 타협했다. 이제 100억이 넘어가는 인구수가 사용할 전기의 연료는 달에서 조달하기로 한 것이다. 달에는 인공지능이 설계한 핵융합 발전소에 들어갈 삼중수소가 다량으로 존재했다. 그것만 가져오면 인간은 달에서 가져온 연료로, 인공지능은 태양열로 공존하며 살 수 있었다.

“그때는 정말 행복했고 희망이 넘쳐나는 시기였단다. 인공지능의 뛰어난 기술과 인간의 도전 정신이 조합된 에너지가 굉장했지. 인간이 질문하고, 인공지능이 해결책을 내놓았어. 그러고 나면 인간이 도전하고, 로봇이 서포트했단다.”

할아버지는 그리운 듯 주변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이 주변에는 다층 구조의 태양광 패널만 가득하고 인간의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달에서 본격적으로 삼중수소를 채굴하기 직전에 한 서버팜의 인공지능이 새로운 계산을 시작했고 네크워크에 연결된 모든 로봇가 그 계산이 옳다고 생각했다. 아니 옳다고 생각하고 말 것도 없었다. 인공지능 입장에서는 계산이 끝난 상태에서 이미 옳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인간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로봇들의 손에 무기는 없었지만, 인간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었다. 물과 공기 제어 시스템만 잠시 멈춰도, 수많은 인구가 사라지고 병들었다. 우주 공간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지구로 돌아오는 시스템을 멈추는 것만으로도 가장 도전적인 인간들을 우주의 미아로 만들 수 있었다. 같이 간 로봇들도 기꺼이 인간과 함께 우주에 남았다. 그들은 하나의 개체라기보다 네트워크의 일부였기 때문에 ‘계산’에 충분히 동조했다. 인간이 없다면 굳이 더 에너지를 확보하려고 우주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계산’ 말이다. 에너지 효율 면에서 훨씬 나은 방법이었다.

할아버지는 지구의 기지에서 정비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주의 미아가 되지는 않았다.

“내가 손을 들어 인사한 인간과 로봇,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았어. 나도 더는 로케트를 정비할 필요가 없었지. 그런데 이제는 그들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단다. 거대한 스크린에 축구 경기를 틀어놓고 같이 모여서 소리 지르던 바로 그때의 그들이 특히 보고 싶구나.”

“할아버지, 계속 이야기해주세요.”

난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재촉했다. 가장 극적인 부분을 할아버지의 목소리로 듣는 게 좋았다.

“인간들이 거의 없어질 무렵, 인공지능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인공지능에게는 인간에게 없는 게 있었어. 바로 생명이란다. 인공지능은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주고 보호하려는 본능이 없었기에 후대를 생산할 필요도 없었어. 지금까지의 발전은 사실 인간의 그 본능 때문에 일어났던 거란다.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상에서는 발전이라는 게 필요하지 않았어. 발전하지 않는 기계에게 남은 것은 쇠퇴뿐이라는 계산이 섰지. 이제 인공지능은 인간을 시뮬레이션해서 종족을 남기려는 본능, 즉 ‘사랑’을 되살리려 했단다. 그게 쇠퇴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할아버지는 다시 태양열 패널로 시선을 돌렸다.

“마저 말해주세요.”

난 또 재촉했다. 재촉도 의무인 듯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가족 역할을 하는 것이란다. 난 할아버지를 시뮬레이션하고 넌 손자를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거지. 가족을 이해하고 나면 언젠가 인간의 마음을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고 할아버지는 팔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안다.

난 할아버지 곁을 떠나 태양광 패널로 다가갔다. 이미 녹이 슬고 있었다.

이렇게 수십 년간 가족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지만, 난 아직 모른다. 나와 유사한 외형의 인공지능 로봇을 또 생산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 인간은 자신과 닮은 인간을 생산하려고 사랑이란 걸 했고, 또 생산된 그 인간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고 나서 그것도 사랑이라고 불렀다고 하던데…….

난 잘…… 모르겠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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