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독립 선언
영어는 관사와 더불어 단수를 쓸 것인지 복수를 쓸 것인지가 규칙으로 간단히 정리도 안되고 외국인에게는 영 쉽지 않은데, 다른 것들도 그렇지만 신체 부위는 대부분 대칭으로 둘 씩 있기 때문에 더구나 복수 사용이 참으로 난해하다.
예를 들어, 어깨는 한 덩어리로 생각하기 쉽지만, shoulders는 해부학적으로 양쪽 두 개다. 눈도 귀도, 팔꿈치도 손도 어떨 때는 단수로 쓰고 어떨 때는 복수를 쓴다. 그렇게 생각하면 코나 머리는 하나씩이니 감사할 정도다.
손가락은 더구나 열개나 되는 데 굳이 단수 손가락 하나만 쓰는 표현이 있으니 이쯤 되면 괘씸하기까지 하다.
역시 규칙을 말하면 언제든지 예외가 있기 때문에 똑 부러지게 설명하기는 그렇지만, 그래서 일단 복수 손가락들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뭔가에 호되게 데는 것을 get fingers burned라고 한다. 데는 것이 엉덩이도 아니고 손가락이면 그다지 교훈을 잘 배웠을지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뭔가를 덥석 집다가 여러 손가락을 덴 모양이다. 살면서 이따금 실수를 조금 하더라도 손가락 몇 개 데는 정도로만 넘어가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과, 손가락 데는 정도로 안 되어서 결국 엉덩이를 데고야 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다.
cross one's fingers 손가락을 십자로 겹치다, 는 말이다.
I will keep my fingers crossed. (손가락으로 십자를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볼게.
뭔가 기원하는 것이 있을 때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그려 기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영어 표현에는 성경 인용구도 많지만, 셰익스피어를 인용하듯, 그저 일종의 속담같이 쓰이는 경우가 더 많아서, 십자가가 들어간다고 해도 특정 종교와 관련 없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표현이다. 종교 감수성을 지니는 것은 좋지만 이 경우는 그렇게 민감하게 생각할 필요 없을 것 같다.
이런 경우는 이 동작을 하려면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손가락이 필요하니까 복수가 적절하다.
손가락의 이름은, 엄지, Thumb, 검지는 index findger, 가운데는 middle finger, 약지는 ring finger, 새끼손가락은 little finger, pinky 다.
엄지부터 보면, 뭘 해도 영 시원찮고 손재주가 없이 clumsy 한 사람을, He is all thumbs라고 한다.
인간이 물건을 쥐는 데는 엄지가 나머지 네 손가락을 마주 보도록 진화한 것이 주요한 역할을 했듯이 엄지가 없으면 물건을 쥐기도 힘들지만, 그렇다고 열 손가락이 모두 엄지라고 생각하면 끔찍해진다. 새끼발가락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없으면 몸의 균형을 잡기 힘들다고 하듯이, 우리 몸은 다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모두 이대로 완벽한 것이다!
하지만, 벅차오르는 감정을 가다듬고 문장을 다시 가만히 들여다보면 손가락 열개가 모두 엄지도 아니다.
He is all thumbs. ‘사람’ 자체가 모두 엄지... 라니.
have sticky fingers라고 하면, 도벽이 있는 것을 말한다.
도벽이 있는 사람이 주변에 많을 리가 없을 텐데도 이 표현을 사실 심심찮게 만나는 이유는 아마도 책이나 드라마에 도둑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의 대부분의 드라마가 애정물 (라고 쓰고 통곡 드라마라고 읽는다.)이 대세라면, 미국의 쇼는 (장르 불문 티브이에서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을 미국인들은 통칭 'show쇼'라고 부른다) 범죄물이 대세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정말이지 왜들 그렇게 울어대는지, 한국 여행 중, 남해행 고속버스 안에 소리 없이 이름도 모를 드라마 하나가 틀어져있었는데, 책을 읽는 간간히,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간간히 고개를 들 때마다 번번이 누군가가 소리를 내어 울고 있는 모습이어서 정말이지 내가 다 피곤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범죄물도 지치기는 매한가지다. 특수분장도 하루 이틀이지 이제는 누가누가 더 징그러운 시체를 만들어내나를 경쟁이라도 하는 듯하다. 인간의 자극 추구는 불닭볶음면만큼이나 끝이 없는가 보다.
그밖에, 뭔가 다 잡은 것이나, 부지불식간에 뭔가를 스르르 놓쳐버리는 것은, slip through one's fingers라고 한다. 모래같이, 물같이 그만 손가락'들' 사이로 새 나가버리는, 허탈한 감각이 느껴진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대략 그밖에는 손가락 한 개로 승부한다.
index finger은 검지, 또 다른 말로는 집게손가락이니까, 영어로 둘째 손가락은 가리키는 기능이, 한국어로 둘째 손가락은 엄지와 더불어 물건을 집는 기능이 중요했던 모양인 것이 흥미롭다. 가리킨다는 뜻은 오히려 손가락 指 '지'가 가리킨다는 뜻으로도 쓰이는 것과 비교해볼 수가 있다.
가운데 손가락 하나를 드는 것은, 많이들 아시겠지만, f word 욕이기 때문에, give/raise middle finger이라고 하면 ‘그 욕을 한다’는 뜻이 된다. 굳이 활용할 필요는 없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니까 알아는 두자. 물론 하나만 쓰므로 이런 경우는 단수이다.
주의할 것은, 사실 손등을 바깥으로 향하고는 어느 다른 손가락을 드는 것도 비슷한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어느 손가락이든 손가락을 한 개만 펴고 싶으면 손바닥이 보이도록 하는 게 안전하다. middle을 빼고 give (someone) the finger. 이라고만 해도 무슨 뜻인지 알 정도니까 말이다.
서구에는 손가락에 리본을 묶어서 기억하려고 하는 오랜 풍습이 있었고, 둘째 손가락이 기억력을 관장하는 신경과 연결이 되었다나 하는 학설도 있지만, 수건에 매듭을 짓는 것으로 기억하는 방법도 있으니 정설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
She has him wound/ twisted/turn around her little finger. 직역, 그 사람을 새끼손가락에 감아놨다 = 그녀는 손 까딱 하나로 그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한국어로 말하자면 목을 매개한다? 뭐 그런 상태라고 볼 수가 있다. 이성 간에도 쓰이고, 아이들에게 보호자가 끌려다니고 있는 것처럼 한쪽이 휘둘리는 경우이다. '목' 씩이나 매게 하는 것보다는 손가락이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새끼손가락을 까딱거리기만 해도 절절매는 모습을 생각하면 서글프기도 하지만, 사랑이란 뭐 그런 것이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약속을 할 때 새끼손가락을 거는 것은 pinky swear, pinky promise,라고 하는데, 그냥 새끼를 내밀며, 약속 promise? 하고 promise 하고 답하는 것은 같다.
hand를 동사로 쓰면 손으로 만지는 것이 아니라 건넨다는 뜻이었지만, shoulder, elbow, 처럼 finger을 동사로 쓰면 손가락을 쓰는 것, 즉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린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뭔가를 '짚는' 것은 put (one's ) finger on이다.
그래서, 뭔가 생각이 날 듯 날 듯하면서 떠오르지 않던가, 구체적으로 말하기가 어려우면,
I know something is wrong but I can't quite put my finger one it.
뭔가 잘못된 건 알겠는데 그게 뭔지는 꼭 집어 말을 못 하겠네.
로 사용할 수 있다.
뭔가를 지적하는 것도, point a finger이라고 한다. 한국말로 손가락질을 한다고 하면 놀리거나 비난하는 것이지만, 영어로는 주로 누구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것, blame과 같은 뜻이 된다.
He started pointing a finger at anyone other than himself.
그는 자기만 빼고 그 누구에게든 잘못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두 경우 모두 손가락 한 개가 적절하다. 손가락 여러 개로 짚고 가리키면 더 혼란스러울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미국인들은 특정부위를 지정하는 단어 사용을 좋아해서, 손으로 뭘 한다고 하면 손바닥까지 손 전반이 연관된 동작이고, 특히 손바닥 위에 뭘 올려놓는다든가 하면 또 손바닥이라고 짚어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영어로는 뭔가를 손으로 먹는다고 하면 hand를 쓴다고 하지 않고 꼭 손가락을 쓴다고 말한다.
그래서 간단히 손으로 집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finger food라고 하기도 하고, 아주 맛있는 음식을
finger licking good 손가락을 핥도록 맛있다, 고도한다.
한국말로는 손가락을 빤다고 하면 '먹고 싶어서' 빠는 것인데, 미국인들은 이미 다 먹고 손가락까지 빨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의 food fight를 처음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느 아시아의 국가들보다도 문호도 늦게 열고 전쟁을 겪으면서 빈곤의 세월을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나라 사람이라서 그런지, 한국에서는 온 국민이 그 더운 여름 악취를 불사하고 음식물 쓰레기 분리를 실천하고 있는데, 낭비와 쓰레기 양산을 일삼는 미국인들을 보면 화가 나는 게 사실이다.
손가락 얘기에서 괜히 갑자기 쓰레기 분리수거 얘기로 넘어가 뒷목을 잡게 되었다.
목이 뻣뻣한 것은, stiff neck이라고 하고, 그래서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나는 것은 'crick' in my neck.이다. 실제 나는 소리가 딱히 삐그덕도 아니거니와 소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리가 나게 되었으니 목'뼈'에 이상이 있다는 말이다. I got a crick in my neck.이라고 하면 목이 뻐근, 삐그덕 아프다, 는 말이다.
참고로, 감기 걸리면 아픈 목 throat과 그 목 neck은 물론 다른 인물이고, 이 책에서는 후자만 알아보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