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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약 끊고 싶어요

by 어떤 Feb 27. 2025

선생님, 저 약 끊고 싶어요.


23년부터 정신과 약을 만 2년 넘게 복용 중이다.


병명은.. 좀 애매하다. 우울은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불안이나 공황에 가깝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이런 말을 한다.


선생님, 저 하나도 안 불안해요. 선생님, 저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공황 증세가 아주 가끔 나타나긴 한다. 목이 조여온다. 숨이 헙 하고 막힌다. 토할 것 같기도 하고, 토하고 싶을 때도 있다.


상담 선생님은 나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말아라, 상황이나 맥락이 겹쳐서 그런 것이다 라고 하시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상황이나 맥락은 20프로 정도, 나의 답답한 성격이 80프로 정도가 아닐까 싶다.


나는 할 말 못하는 성격이다. 소심하다. 거절도 못 한다. 부끄러움과는 다르다. 웃기지만 나는 무대 체질이다. 대학 때 팀별 과제에서 항상 발표를 맡았고,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해야 할 말을 못한다. 병가 중에 일 시키는 상사에게 알겠다고, 하겠다고 말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스노우보드를 타다가 누군가 날 치고 가서 내가 데구르르 구르면, 혼잣말로 욕은 해도,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말하는 그런 성격이다.


거기다 완벽주의 성향도 있다. 극 J다. mbti가 등장하기 전, 친구와 여행 계획을 세우는데, 일정표 버전 8까지 만들어봤다. 계획이 틀어졌을 경우를 고려해서 또 다른 계획을 세운다. 인사이드아웃 불안이와 다름없는 나이다.


얼마 전, 의사 선생님께 약 끊고 싶다고 말해보았다. 선생님은 단호하시다. 내가 자기 변호를 잘 하면 줄일 수 있다고 하신다.


아무래도 약 끊기는 글렀다. 솔직히 자신이 없다. 나도 노력하고 있는데 잘 안된다. 하고 싶은 말, 거절하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는데 정작 입 밖에서는 괜찮아요, 네 해볼게요 이런 말이 나온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나보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그랬다. 유한 성격으로, 모든 친구들이랑 친했고, 모든 친구들이 나를 좋아했다.


의사 선생님은 OOO님도 인간이에요, 화가 날 수도 있죠, 그럼 화를 내야죠. 라고 하신다.


인정한다. 머리로는 이해가 간다. 그런데 화를 참는 게 버릇이 되어버렸다. 화를 잘 안 내는 게 타고난 성격이기도 하다. 할 말 다 하고, 화도 내고 하는 게 노력으로 되나 잘 모르겠다.


선생님, 저 약 끊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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