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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Oct 25. 2024

갱년기 우울감? No, 내면으로의 여행!

검색 창을 보면 갱년기의 증상이 나열되어 있다. 대체로 비정상적이고 심각한 증상이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호르몬 이상으로 인한 문제, 치료해야할 증상이라 설명한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갱년기는 조금 다르다. 단순히 호르몬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훨씬 복잡하고 근원적이며 심지어 긍정적인 측면도 많았다. 오히려 완경 이후의 삶에 대한 태도를 준비하고 기대할 수 있는 시기였다.  

물론 모든 ‘증상’이나 ‘대처법’은 사람마다 다르고 환경에 따라 다르다. 다만 검색창에 나온 갱년기의 증상은 지나치게 표피적이고 상투적이어서 다른 관점, 다른 해석도 있음을 전하고 싶다. 

나는 각각의 증상을 각각의 특징으로 승화하여, 사회가 애써 외면한 갱년기의 본질적 특징을 밝혀보려 한다. 매 꼭지마다 각 증상(특징)에 따른 의미와 영감을 준 책을 소개하고(또는 인용하고), 나만의 해석으로 갱년기 특징을 새롭게 명명해보려 한다.

사실 갱년기 책은 놀랄 만큼 적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찾기 힘들었고 오래전 내용이었다. 그마저도 대부분 증상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라는 내용이지 좀 더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질문을 하는 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최근 들어 갱년기 책이 조금씩 눈에 띄었는데, 많은 경우 갱년기 제품 광고와 발맞춘 내용이었다. 그래도 젠더 관점이나 나이듦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책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그들 덕분에 무사히 완경으로 넘어설 수 있었다. 

지금 갱년기로 고통을 겪는 이들과 앞으로 겪을 이들에게 갱년기는 단순하게 나열된 부정적인 증상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이고 긍정적인 ‘특징’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나는 갱년기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안하고 싶어졌다. 벼락같은 순간이었다. 

당시 나는 학부모 활동과 마을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협동조합의 일환으로 토마토체험농장까지 하고 있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과 농장을 들락거렸고, 회의와 토론으로 숨이 차도록 바쁘게 살고 있었다. 

그날도 막 단체 체험행사를 마치고 한숨 돌리던 차였다. 농장 여기저기 웃자란 풀 사이로 지열이 갇혀 후덥지근했다. 땀이 코끝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고 해가 지평선을 꼴깍 넘어가고 있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문 앞에 놓인 바위에 쭈그리고 앉았다. 나른했다. 더위와 일에 지치기도 했지만, 그것과는 다른 나른함이 몸을 덮쳤다.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덮친 듯했다. 


지긋지긋하다...

내 입에서 나온 말에 내가 놀랐다. 그동안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너무 활기차게 일을 하고 있었고, 순전히 내 의지로 일을 벌여왔던 터였다. 일을 채 마무리하지 못하고 서둘러 가방을 챙겨들고 나왔다. 다음 일정을 향해 서둘러 달려갔다. 

그날 이후로 어떤 장면이 자꾸 눈앞에 그려졌다. 툇마루에 앉아 마당을 내려다보는 내 모습이었다. 그곳은 절이었고,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절에 가고 싶다거나 여행을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자꾸만 그곳에 있는 내 모습이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가을 토마토를 새로 심었다. 토마토 이모작을 하는 농장들은 지금부터 한 달 정도 농한기를 보내는데, 쉬는 동안 주로 한의원에 다녔다. 여름내 작살낸 몸을 어르고 달래야 또 가을을 버텨낼 수 있었다. 나도 매년 비슷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이번에는 한의원보다 절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절에 가야 툇마루에 앉을 수 있을까, 그날 비가 부슬부슬 와야 할 텐데, 혼자 중얼거렸다. 평소 절에 다니지도 않았고 그런 장면을 연출할 절은 더구나 알지도 못했다.  

그런데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동창들이 놀러왔는데, 그중 한명이 곡성에 암자를 하나 샀다는 말을 했다. 동창이라고는 하지만 그날 처음 대화를 나눴다. 염치불구하고 나 좀 가자, 부탁했다. 며칠 후, 정말 툇마루에 앉아 비가 부슬부슬 오는 마당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다른 점이라면 내 상상 속에서는 마당에 흙냄새가 피어올랐는데, 그 암자는 대나무 숲을 끼고 있어 풀냄새가 났다는 것. 종일 대나무소리가 솨아솨아 났다는 것.   

대나무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알았다. 일을 그만두겠구나.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더 이상은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물론 현실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정말 그만둘 때까지 반년이 걸렸다. 그것도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 가능했다. 몇 년 전 회전근개파열로 왼팔을 수술했는데 다시 오른팔을 수술하게 된 것이다. 양쪽 팔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되자 진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막상 그만두라니 퇴출된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언짢았다. 


집에 덩그러니 앉아있으니 그동안 그만두고 싶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여전히 활발하게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 혼자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에 외로웠다.  

동시에 혼자 있고 싶었다. 아이들은 기숙사에 있고 남편과는 주말부부여서 주말에만 식구들이 돌아왔다. 주중 내내 혼자 있는데 격렬하게 더 혼자 있고 싶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일주일 내내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혼자 가만히 있다가 금요일에 가족들이 올 시간이 되면 반가운 마음보다 벌써 일요일 저녁이 그리웠다.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게 숨이 막혔다. 얼른 시간이 흘러 빨리 혼자가 되고 싶었다. 일요일 저녁, 가족이 모두 돌아가고 나면 살 것 같았다. 여전히 지긋지긋하다, 는 문장이 따라다녔다.      

‘지긋지긋하다’가 ‘사그라들고 싶다’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대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마무리라니, 무엇을 말인가? 일은 이미 그만두었으니 일은 아닐 테고, 도대체 무엇을 마무리해야 이 마음이 마무리(!)될 것인가. 암담했다.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꼽아보았다. 뭐든 ‘마무리’를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 해보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들을 모두 했으니 여한이 없었다. 20~30대에는 고민과 방황을 겪었지만 나름의 길을 찾아 열심히 살았다. 실패와 좌절도 겪었고 성취와 성장도 맛보았다. 그 정도면 되었다. 아쉬움도 없고 더 이상 바라는 것도, 꿈꾸는 것도 없었다. 아이들은 곧 성인이 될 것이고, 부모로서 자식을 독립할 때까지 키웠으니 되었다.


이대로 삶이 끝나도 괜찮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자꾸만 생각이 그리로 흘렀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죽음을 떠올린 것은 아니다. 그럴 용기도 자신도 없었다. 죽음이란 그렇게 쉽게 떠올려지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사그라들고 싶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생명 있는 자가 어떻게 저절로 사그라든단 말인가. 난감한 일이었다. 말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마무리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직도 까마득한 ‘자식의 독립’이라는 과업을 어찌 그리 단호히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더 까마득하게 먼 인생의 마무리를 함부로 입에 올렸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때는 그랬다. 어쩌면 사그라들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커서 충분히 완결되었다고 스스로 합리화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주어지는 텅 빈 하루가 버거웠다. 시들시들한 채로 시간이 흐르는 게 싫었다. 까마득하게 막막했다. 나라는 존재가 하찮고 부끄럽고 무의미해서 미칠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내게 갱년기가 왔다고 했다.   

   

  “남성과 달리 여성은 성세포, 즉 난자세포를 새롭게 생산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물려받은 총 500만 개 난자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미 태아 때부터 그 수가 줄기 시작한다. 태어날 때 대략 120만 개가 남아 있지만 사춘기가 시작할 때쯤이면 ‘겨우’ 30만개가 남는다. 나이가 들수록 난자세포의 수와 품질이 점점 더 빨리 하락한다. 40대 이후부터 난자 재고량이 서서히 ‘바닥나기’ 시작하여 약 10년이 지나면 완전히 종지부를 찍는다. ...(중략)...폐경은 글자 그대로 월경이 끝난다는 뜻이고, 그 후로는 난자와 난포가 모두 소진되고 없다. 그러나 신체가 정확히 언제 월경을 끝냈는지는 1년이 지나야 확정할 수 있다. 그 이전의 기간을 ‘갱년기’라고 부른다.”<호르몬은 어떻게 나를 움직이는가>   


그렇게 갱년기가 시작되었다. 나이가 들면 갱년기가 올 수 있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그게 정확히 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기껏해야 티브이에 나오는 광고나 드라마에서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한밤중에도 찬물을 끼얹어야 하고 잠을 못자는 모습을 본 게 전부다. 나이에 비해 일찍 온 편이라 또래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사그라들고 싶은 마음이 강하면 강할 수록, 사회가 규정한 프레임, 이제 끝났다는 식의 관점은 벗어나고 싶었다. 갱년기라는 시간이 주어진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찾은 갱년기 우울에 대한 이해일지도 모르겠다. 왜 우울한지, 내면으로 깊이 파고들어가는 것, 그래서 나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내 삶의 화두를 새롭게 찾는 것. 그렇게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몸과 자신의 삶을 발화하는 것.     

물론 그건 완경이 된 후에 찾은 답이다. 그때는 내가 바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챌 수 없었다. 그럴 정신도 없이 너무 외로웠다. 외롭고 쓸쓸한 고독의 시간이었다. 혼자 있게 될까 봐 안절부절못하면서 동시에 “날 좀 내버려 둬”라는 외침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한편 외로움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기도 했다. 너무 길게 말고 짧게, 그렇지만 너무 가볍지 않게. 길면 기운이 빠질 것 같아서 싫고 가벼우면 나의 소중한 침묵이 아까웠다.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뒤적거린다. 통화기록도 살펴보고 주소록을 검색해보고 카카오톡 대화창을 아래로 아래로 내린다. 마땅치 않다. 전에도 이런 때가 있었지, 기시감이 든다. 아이들 키울 때, 낮잠을 재워놓고 그 짧은 시간 나를 위해 최대한의 효과가 날만한 일을 해야 했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 평화를 깨뜨리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결국 아무도 찾지 못하고 아무에게도 연결되지 못했다는 외로움에 압도당했다. 혼란의 상태. 

그런데 그때와는 조금 다른 것이 있었다. 지금은 자발적인 고립이라는 것. 외롭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너무나 외로움이 사무쳐서 차라리 고독 속으로 뚜벅뚜벅 들어가 버렸다. 지금과는 다른 삶이 펼쳐지지 않으면 안되는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바닥을 쳐야 올라온다고. 또 바닥을 치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고. 나는 바닥을 뚫고 들어갈 기세였다. 그러니 바닥에 머물지 않고 또 다른 곳, 더 극심한 고독에 이르는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철저히 혼자가 되는 것, 철저히 자신 속에 들어가는 것. 그게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고독은 외로움과 다르다. 고독은 지극히 자발적으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외로움이 감정이라면 고독은 의지다. 외로움이 슬픔을 전제로 한다면 고독은 사유를 전제로 한다. 누군가가 곁에 있어도 외롭다면 차라리 혼자 고독한 게 낫다. 


많은 중년에 대한 책이나 강의에서는 친구를 많이 사귀라고 한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동안 연락 없이 지내던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정기적인 모임을 늘리기도 한다. 하긴 인생에 친구가 없다면 무슨 재미겠는가. 당연히 친구가 좋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며 에너지를 써버리면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허무하고 쓸쓸하다. 내 마음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친구의 자랑이나 한탄까지 들어주려니 힘이 들 수밖에. 잠시 멈추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친구는 혼자 놀 수 있는 힘을 키운 다음에 만나도 된다.   

이래다 완전히 혼자가 되는 건 아닐까, 때로는 '고독사'를 떠올리며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세상은 원래 혼자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 외로운 거다. 단호히 선을 긋고 보니 오히려 평안이 찾아왔다. 일부러 몰입을 방해하는 이들과의 약속을 가급적 멀리하고 독립적으로 일상을 꾸렸다. 

혼자 있을 때마다 자신의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우물 속을 들여다보며 왜 계속 살아내야 하는지, 이전의 나와 어떻게 다르게 살아가고 싶은지, 이제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인지, 꼭 의미 있어야 하는지, 쓸데없는 짓을 할 것인지 등 끊임없이 질문을 길어냈다. 우울이야말로 자신에게로 가는 길이다. 차츰 ‘혼자 놀 수 있는 힘’이 차올랐다. 갱년기는 내면으로의 여행을 위해 주어진 시간이었던 셈이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 기간을 통과하며 새로운 인간관계로 재구성되었다. 이전보다는 적은 수지만 안정적이고 깊이 있고 충만한 교류를 할 수 있는 이들이 내게 남았다.  


 “나 스스로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것이었다. 난 갑자기 나이듦을 느꼈고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나의 미래에 말이다. 살면서 걱정을 가불하지 말자 했는데 나는 나의 다가올 노년을, 미래를 두려워했다(…) 진짜 내가 걱정해야 할 것은 미래가 아닌 지금 바로 현재의 나임을 알게 됐다. 바로 지금이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마음을 다독이며 머리를 움직여야 할 때로 두려움을 가불해 진짜 두려운 삶 속에 나를 던져두면 안 되는 때였다(…) 나의 갱년기 수용에는 아직은 서글픈 내 갱년기를 남들에게 알리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갱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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