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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Sep 27. 2021

백신

가을밤에 든 생각

새벽에 깨어 덥다는 느낌에

거실로 나와 베란다 문을 열었다.


여름 다 지났는데, 혹시?

서랍을 뒤져 찾아낸 체온계로 재 보니 36.3도 정상.

휴~ 다행이다. (그냥 갱년기 증상인 걸로...)


그러고 보니 오늘은 백신 접종으로 하루 휴가다.

잠깐 소파에 누워 있기로 했다.


시원한 밤공기가 딱 기분 좋게 얼굴에 와닿고

시끄럽던 매미 소리 대신 귀뚜라미 소리가 귓가에 잔잔하다.


이제 가을이다.




스마트폰 배경화면에 아들이 보인다.


뉴욕 브루클린 다리 앞에서 한껏 폼 잡고 찍은 사진.

대학 들어가자마자 대기업 후원 해외 탐방 프로그램을 떠난 거칠 것 없이 자유로운 모습이다.


이후 2년을 코로나 세상에서 답답한 청춘의 시간만 보내다 얼마 전 늦은 입대를 해 걱정이 많았는데... 기우였다.


훈련소 성적이 좋아 사단장 표창까지 받고, 지금은 나름 군기 세기로 유명하다는 강원도 부대에 배치받아 생각보다 훨씬 잘 적응 중이다.


젊어서 고생은 어쩌면

백신 접종과 같은 건지 모르겠다.


약한 바이러스 균을 몸에 주입해

센 놈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면역력을 미리 만드는 것처럼

입시도, 군대도, 취업도, 결혼도 그런 인생의 한 종류 백신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 인생의 백신이 너무 세다는 거.


그래서 항체도 생기기 전에 대부분 병에 걸리거나

돌파 변이처럼 변해 버린 세상에 제대로 효과가 있는지조차 검증도 안된 채, 젊은 세대들에게 강요되고 있다는 현실이 아닐까...


아들이 좋아했던 잔나비의 노래를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가을밤은 깊어 간다.


머나먼 별빛 저 별에서도
노랠 부르는 사랑 살겠지

밤이면 오손도손 그리운 것들 모아서
노랠 지어 부르겠지

새까만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마저
불어오는 바람 따라가고

보고픈 그대 생각 짙어져 가는
시월의 아름다운 이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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