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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Oct 28. 2021

별은 시간을 돌린다

양평 전원주택 체험기 2

솥뚜껑에 고등어를 구워 불멍 겸 긴 술저녁을 먹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별이 가득하다.


이래서 시골이지...


마침 틀어놓은 유튜브 음악에서 김민우의 <사랑일 뿐야>가 흘러나오고 시간은 과거를 찾아간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 직전에 여행 동아리에 들어갔다.

보통은 신입생이 되자마자 가입하는데

연애에 목말랐던 나는 독실한 교회 신자였던 첫사랑의 마음을 얻으려 하나님과 결투를 벌이다 결국은 승복하고 늦게 회원이 되었다.


여름방학 8박 9일간 처음 떠난 여행은 기대와 달랐다.

경치 좋은 곳에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재미있게 놀다 오는 그런 게 아니었다.

설악산 공룡능선을 완주하는 강행군에

신입생은 텐트를 포함 30킬로가 넘는 배낭을 메고 다니다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각종 잡일을 해야 하는 노예였다.


이거 장난 아닌데...


저녁 설거지까지 마치고

동아리를 탈퇴해야겠다 마음을 먹는 순간,

기타를 치며 베짱이처럼 놀고 있던 복학생 선배가 모닥불가로 나를 포함한 신입생들을 불렀다.


술 한잔씩을 따라주며

자신의 인생과 사랑, 철학과 고민, 그리고 이상과 꿈을 마치 영화의 내레이션처럼 조용히 들려주었다.

입시에만 빠져있다 갓 대학생이 된 후배들 눈과 귀는 그 선배의 카리스마에 사로잡혀 밤새는 줄 몰랐다.

그 순간, 나는 마음을 바꿨다.


나도 저런 선배가 돼야지...



2학년 되어 나의 첫 여행을 기획했다.


동아리 여행은

2학년 이상 3명의 리더진이 모여 프로그램을 짠다.


리더 : 프로그램 진행을 총괄

마더 : 경비 지출과 식사 등을 담당

바이스 리더 :  코스 이동과 안전 등을 담당


나는 리더로서 평소 눈여겨봐 왔던 여남 동기 2명을 포섭해서 2박 3일간 오대산~대관령 코스를 기획했는데

최종 기획안을 동아리 선배들로부터 심사를 받아 통과해야 포스터를 제작해 함께 할 멤버를 모집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심사 기준은 테마.

그것에 따라 코스나 저녁 프로그램이 잘 어울리는지가 포인트였는데, 우리의 테마는 "동심(童心)"이었다.

신입생 때 하도 힘든 여행만 정신없이 따라다녔으니

내가 짜는 여행은 좀 쉬운 코스로 여유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드디어 심사에 통과하고

10여 명의 멤버를 모아 여행을 떠난 첫째 날 밤.


저녁 프로그램은

스케치북에 크레용으로 어릴 적 꿈 그리기였다.

각자 동심으로 돌아가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소환해보고 서로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였다.

(아쉽게도 어떤 내용들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꿈 그리기에 이어진 또 하나의 프로그램은

계곡 평상에 누워 별 보기였다.

당시 오대산 자락에서 쏟아질 듯 꽉 찬 별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별빛은 백만 광년을 여행한다.

결국 과거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별은

우리의 시간을 '시절'로 돌린다.




그때,

오대산 평상에 누워 별을 보는데

누군가 옆에서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너는 내게 묻지만 대답하긴 힘들어
...
그대를 만나기 위해
많은 이별을 했는지 몰라
그대는 나의 온몸으로 부딪혀
느끼는 사랑일 뿐야


그때부터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그토록 많은 이별들이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뭔 소리지? 술 탓이다...)


내일 밤은 중미산 천문대에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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