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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Dec 12. 2021

아들 면회를 다녀왔다

도깨비 같은 날이었다

Oh 쉿
Time's up
벌써 엄마 뱃속에서 나와 20
알어 We all young
결국 꽃처럼 피어나겠지
I'll be fine mama
I'll be fine dad. . .

3년 전, 대학생이 된 아들이

어느 날 흥얼거리며 들어보라고 알려준 노래가 있다.


김하온의 <꽃>이라는 곡인데

당시에는 거의 가사가 들리지 않는 랩송이었는데

입대 후 첫 면회 다녀오는 차 안에서 이 노래가 떠올랐다.


그리고 날이 참 적당히

좋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은 군부대 정문을 지키는 위병이다.


부자지간 이런 것도 닮는 것일까?

30년 전 나도 위병이었다.

출입하는 많은 차량과 사람을 통제해야 하는 탓에

번호와 얼굴 익히는 게 지금 만만치 않을 텐데... 걱정하며


위병소에서 아내와 코로나 문진표를 작성하고

신분증을 주고 면회객 명찰을 받았다.

반려견 동반 시 주의사항을 듣고 10분 정도 기다리니

저쪽에서 익숙한 군인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분명 아들이었다.


위병 근무 중인 직속 선임 눈치가 보였는지

아님 군인 되고 처음 보는 부모에게 달리 보이고 싶었는지

처음 마주친 얼굴이 약간 굳어있었다.


하지만

면회실로 가 자리를 잡고

먹고 싶다던 장어덮밥을 몇 개 입에 넣더니

이내 예전 특유의 장난기 어린 웃음이 흘러나온다.

옆에서 보채는 짱이를 안는 모습이 그대로다.




챙겨 온 가방 속에서

훈련소 때 받았던 상장과 인터넷 편지들을 꺼내 보여준다.


이건 엄마가 보내준 거,

이건 아빠가,

아... 할머니, 고모, 형이 보내준 것도 있어.


그리고 사람을 좋아했던 녀석답게

친구들로부터 받은 편지들이 한 뭉텅이다.


나를 기억나게 해 주더라고


아무리 편해지고 짧아졌다 해도

군대는 군대인가 보다.


자유롭게 살던 영혼이

제멋대로 놀던 청춘이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에 익숙해지는 게 두려웠나 보다.


그래도 그 속에서

의무와 의지를 배우고, 의미와 재미를 찾고

자신의 미래 모습을 그려보려 노력하는 성숙함이 보인다.


떼쓰며 울던 애기가

언제 이렇게 컸지...


면회를 마치고

한번 안아 본 아들은 따뜻하고 듬직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지난 스물두 해가 <도깨비>처럼 지나갔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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