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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Aug 15. 2022

맏이의 무게

무한책임만 남은 사회적 감투

내가 늙어 보여?


아내가 생뚱맞게 묻는다.


사연을 들어보니

처제와 병원에 함께 갔는데

접수처의 간호사가 '딸'이냐고 했단다.


안 그래도 젊어지려고

노화방지 화장품을 이것저것 꾸준히 바르고

최근 탄수화물 줄이는 다이어트도 한창인 사람에게


4살 차이밖에 안나는 동생을... 말이다.


아내는 자신이 '보호자'로서 간 거니

그 간호사가 그냥 말실수한 거로 웃어넘기고 말았지만

은근한 모양이다.


"두 사람 얼굴 보고 한 얘기가 아니다.

병원에선 '보호자 = 부모 또는 자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분명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을 거다."


나도 열심히 달래 보았지만


친정엄마의 오랜 병치레 끝난 지 얼마 안돼

다시 쉰 가까이 된 미혼 여동생의 부모 노릇을 해야 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맏이'로서 자기 연민이 되살아난 듯

 

그녀에게 어두운 표정이 스친다.




맏이


형제자매 중 가장 손위를 뜻한다.


나는 솔직히

혼자 사시는 노모 곁을 지금도

나무처럼 지켜주는 고마운 누나가 있어서


태어나면서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떠안게 되는

'맏이'란 무한책임의 무게를 평소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어릴 적

누구(누나 이름) 엄마로 불리는 게 마냥 부럽기만 했던

철없는 막내 역할에 더 익숙할 뿐이다.


하지만

나의 가정을 꾸리고

오래 직장을 다니다 보니


가장(家長)이나 부장(部長) 같은

보통, 사회 공동체의 연장자(長)를 뜻하는

그 '감투'중력이 가끔씩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예전엔 분명 자리 부러웠지만

이제는 묵직함그 이상으로 버겁다는  알아버렸다.


그래서,

권한은 없고 책임만 남은

요즘 세상 허울뿐인 '장녀(長女)무게' 잘도 버티는

누이 아내에게 진심 어린 존경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철없는 막내남의 평생 기득권을 이제라도 포기하고


조금씩 조금씩

감투의 무거움을 나눠 짊어지도록 노력해 보련다.




코로나 걸려서 일주일 고생하던 아들 녀석이

다음 달 병장(兵長) 단다고 신이 나서 톡이 왔다.


권한이니 책임이니

모르겠고

그만큼 제대가 가까워졌음을

기뻐하는 것이리라. 


아들아,

맏이의 세상에 들어온 걸

환영하고 또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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