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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Oct 02. 2022

아내는 이 마음 모르리

탈모와의 전쟁 선포 10주 후

아내의 손을 잡고


또 피부과에 갔다.

지난 연말에 점 135개를 뺀 바로 그곳이다.


"이번엔 진짜 안 아파.

그냥 마사지만 받으면 돼.

알았지?"


순진하게 그 말을 믿었다.


주말이라 그런가

병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대기 중인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전에 점 뺄 때 나처럼

마취 연고를 한창 바르고 있는 한 중년 남자를 보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고생하시겠네...)


그래도 경험자라고 슬슬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앉아서 기다리는 중

여기저기 붙어 있는 진료과목 안내문을 보는데

'탈모'라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모발도 결국 피부야.

이건 내가 케어해 주니깐 걱정 마."


옆에서 아내가 믿음직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ㅇㅇㅇ님 들어오세요


내 이름이 불렸다.

이번엔 자신 있게 진료실로 들어갔다.


"목 부분도 할 게 많은데

오늘은 얼굴만 먼저 IPL을 하시죠."


"그게 뭔데요? 아픈가요?

(전문용어다...)"


"레이저예요. 좀 아픕니다.

지난번에 한번 해 보셨으니 잘하실 거예요."


살짝 불안은 했지만

마취연고는 안 바른다는 말에 안도했다.


세안을 하고

시술실로 들어가 누워 눈을 가렸다.


의사가 들어오더니

한마디를 툭 던진다.


"시작합니다.

절대 놀라서 고개 돌리시면 안 됩니다."


"네.

(왜 불안해지지... 헉!)"


그 뒤로는 평생 처음 느껴보는

끔찍한 고통의 시간이었다.


분명 눈을 감았는데

불빛이 번쩍하고 얼굴 곳곳에 폭격이 이어졌다.


<스타워즈>에 나오는

광선검에 베이는 기분이랄까


사람이 너무 아프면

소리 지를 여유조차 없다는 걸 알았다.


"잘 참으셨습니다.

쿨링 마사지받고 가시면 됩니다."


난 이미 전사한 후라서

저승사자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두 번이나 호되게 당했으면서도

시술 후 얼굴 마사지를 받으며 나른하게 졸고 나니

피부과란 곳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집으로 돌아오다가

유튜브에 소개된 동네 전복집에서 점심을 먹고

별다방 아메리카노까지 마시고 나니


전쟁 뒤에 찾아오는 평화가

그렇게 꿀 맛일 수 없다.


요즘 꽂혀있는 트롯 노래가 입가를 맴돈다.


그대 곁에 있으면

허물어지는 마음

그대는 모르리, 모르리


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

웃음으로 통곡하네

그대는 이 마음 모르리...


https://brunch.co.kr/@jsbondkim/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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