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망치질이 시작됐다
올 가을엔 내가 은행을 털어야겠다
아빠, 아줌마 같지?
간만에 머리를 자르고
가족 단체톡으로 사진을 올렸더니
아내가 '얼뚱이' 같다 놀리며 그림을 올린다.
현상수배 걸린 부부 사기단 같은데
기분 나쁜 건 사진과 얼추 비슷하다는 거다.
"ㅋㅋㅋ"하는 아들의 답이 아직 없는 걸 보니
연휴인데도 부대 일이 바쁜가 보다.
아침부터
그녀의 망치질이 시작됐다.
작년 양평에서 주워 온 은행들을 남았다며
전자레인지에 1차 데우더니
껍질이 덜 벌어진 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비장의 무기인 나무망치를 꺼내왔다.
몇 년 전 '오매락'이란 술에 딸려 온 건데
며칠 전 더덕구이 할 때도 한바탕 망치질을 했단다.
아내가 까 주는 은행알 하나를 입에 넣으니
내 가을도 시작되는 기분이다.
작년 요맘때 양평 생각이 난다.
비 온 뒤 높고 파래진 하늘 아래서
아내는 짱이와 아침부터 떨어진 은행을 많이도 주웠다.
한가득 모아진 은행을
뿌듯해하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었다.
저게 뭐라고 굳이
그냥 즐기면 될 것을...
하지만 오늘,
그녀가 까 주는 은행을 먹는 내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그녀 얼굴을 보니 알겠다.
자신보다 내 식구 챙기는 걸 먼저 배운
넉넉지 못했던 집 장녀의 오랜 습관이란 걸...
올 가을엔 내가
그녀를 위해
은행을 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