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과거의 의미는 바꿀 수 있다.
한 7년 전쯤 그림책 모임을 처음 접했을 때 그림책 이야기를 빌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이 '치유'가 되는 방법임을 알았다.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인정해 주도록 도와주는 것 중의 하나가 그림책 모임이었다.
너도 나도 자신의 흉터를 보여주는 분위기에 자주 노출되다 보니 나 역시 트라우마라고 생각될 만한 것들을 자꾸 꺼내보기 시작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들이 아니어서 실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아빠 공장이 망하고 할머니네 얹혀살면서부터 눈치 받고 자랐을 것이고 자기 할 말을 제 때 못하는 엄마를 보며 자라서 나도 그렇다 등등 한동안은 그런 환경에서 자랐던 내가 너무 가여워서 나의 내면 아이를 안아주기 바빴다. 쉽게 꺼내지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에 눈물을 쏟는 것만으로도 뭔가 치유가 되고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비슷한 이야기들을 반복해서 듣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건 그런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경우, 어린 시절에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것도 집이 여유롭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사랑은커녕 관심도 제대로 못 받았던 애정 결핍으로 누군가 내게 조금만 관심 보이면 마음을 확 열어버리고 그 사람에게 올인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사람에게 받은 상처들도 많았다. 최근 몇 년 전까지도 그랬다. 좋은 책이나 제대로 된 멘토를 만났다면 달랐을까 하고 가끔 생각해 보지만 그것도 모를 일이다. 땅에 떨어진 돌처럼 살았다. 누군가의 발에 치일 때마다 아팠고 내동댕이 쳐진 채로 살았다. 스스로를 아까고 사랑할 줄 몰랐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존감 있는 아이로 키우는 법을 알겠더라. 하지만 내가 그렇게 자라지 못한 것을 계속 탓한들 과거는 달라지지 않는다.
의미는 있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과거의 사실들을 붙잡고 나를 불쌍히만 여길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을 재해석하고 의미 부여하는 것이 나를 위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때는 과거에 가서 나를 안아주고 싶다, 키워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았는지 원인을 알았으니 그걸로 되었다. 왜 어리바리하게 휘둘리며 살았는지 이유를 알았으니 이제부터라도 나를 바꾸면 된다. 마흔 이후에는 나의 주 양육자가 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맞다. 나를 데리고 사는 것도 나를 키우는 것도 나다. 이제는 과거의 상황을 가지고 마음 아파하거나 슬퍼하기보다는 나를 더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할 궁리를 하는 것에 더 관심이 생겼다. 내가 나를 다시 키우고부터 달라진 점이다.
지금 읽고 있는 책 『거인의 공부』 에서 '과거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과거의 의미는 바꿀 수 있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과거의 상처조차 성장을 위한 거름으로 해석하는 힘이야 말로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진짜 생각'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어리바리해서 겪었던 그 파란만장한 일들이 없었다면 나에게는 평범한 스토리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20대에 지금처럼 생각했다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나의 과거들을 감사히 여기기로 했다. 그 모든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과거가 부끄럽거나 아프지 않다. 이제 나에게는 내가 있다. 나를 사랑하고 지키는 내가 있다. 요즘 나의 주된 관심사는 '깨어있음'으로 세상을 선명하게 보는 것이다. 어제의 나도 과거의 나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할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오늘의 나는 새로고침할 수 있다. 그거면 된 거다.
ON문장: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과거의 의미는 바꿀 수 있다.
OWN 문장: 과거의 나를 통해 오늘의 나를 새로고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