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낙원 19화

19 폭우 3

by 아무




포청의 앞마당에 시체 섞는 냄새가 진동했다.

산사태에 쓸려 내려온 시체와 백골을 모두 그곳에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담장 너머에서는 며칠 동안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라진 피붙이를 찾으려다 섞은 시체만 구경한 꼴이 된 어떤 이는 절망에 짓눌려 통곡 옆에 주저앉았다.

오작인 박영제는 코와 입을 흰 천으로 가리고 아직 부패가 시작되지 않은 변사체의 검시를 시작했다.

이것으로 열한 구째 검시였다.

하나같이 손가락과 특정 장기가 없는 사체들.

범인은 어렴풋해도 사인은 명확했다.

현령도 그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사인이 명확하다고 검시를 거를 수는 없었다.

작은 단서라도 찾아야 했으니.

현령은 꾸역꾸역 오작인과 검시를 이어나갔다.

부패가 시작되어 신원을 알아보기 힘든 변사체가 아직 열 구나 더 남았다.

그 속에 어린아이의 시신도 여럿 있다는 것이 가장 끔찍한 일이었다.

그들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오작인 지 씨는 의관 김홍대와 마당의 다른 한편에 늘어놓은 백골들이 제 자리에 제대로 찾아가 놓였는지를 확인했다.

백골이라고 해서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살과 장기는 이미 썩고 뼈만 남았지만, 손가락 뼈가 모두 잘려 나갔으니, 갓 매장된 변사체와 사인이 다를 리가 없었다.

개중에 맹수의 이빨 자국이 남은 뼈도 간혹 보였으나, 배고픈 맹수의 습격이라기보다 먹이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 가능성이 컸다.

상당 부분 소실되고 일부만 남은 백골이 손가락 없는 손으로 억울함을 호소했으니 말이다.

대략 스물한 구의 변사체가 포청의 앞마당을 차지하고 있는 그 광경은 참으로 기괴하고 참담했다.

한차례 검시를 마치고 현령은 오작인과 의관, 포관을 이끌고 동헌으로 이동했다.

“사인은 교살로 만장일치했습니다. 납치 후 교살, 그리고 장기 적출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손가락은 장기 적출 후 절단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 맹수, 그러니까 범의 흔적이 남았습니다만 이 역시 사후 훼손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의관이 간략한 보고를 마치자, 나머지가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한 번씩 끄덕였다.

“세간에 떠도는 오래된 민간요법이 화근인 듯합니다.”

오작인 지 씨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손가락을 뼈째 말려 곱게 간 가루를 물에 타서 마시면 몹쓸 병을 고치는데 좋다 하고, 간과 쓸개는 양매창을 고치는데 탁월하다 합니다. 또 인간이나 동물의 음경을 먹으면 정력에 좋다 하니, 사체들이 저지경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포관이 말꼬리를 물었다.

“배를 가른 솜씨가 매우 정확하고 깔끔합니다. 통달한 자의 소행이라 여겨집니다. 하나 아무리 화적이라 한들 인간의 장기까지 통달하진 못했을 겁니다. 배우지 못한 자들 아닙니까. 그러니 직접 손을 대진 않았을 겁니다. 하니 그런 일에 익숙한 오작인이나 백정이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옵니다.”

“지금 우리를 의심하는 겁니까?”

오작인 박영제가 버럭 성을 냈다.

“가령 그렇다는 것이지 누가 범인이라 하였나!”

포관도 언성을 높였다.

쾅!!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에 탁자에 둘러앉은 네 사람이 놀라 현령을 쳐다보았다.

현령의 눈에 사나운 기운이 서렸다.

“하면 백정부터 조사하겠습니다, 현령 나리. 분명 밀매에 관여한 자가 있을 것입니다.”

포관이 눈치 보며 말하자 현령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이만 나가보게.”

현령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화적 떼와 호랑이라…….”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나리, 접니다.”

조금 전까지 함께 있던 오작인 박영제였다.

그가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다시 현령을 찾아왔다.

“들어오게.”

박영제는 문을 꼭 닫고 서둘러 입을 열었다.

“송구합니다, 나리.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려도 믿기 어려우시겠지요. 하지만 저는 절대로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참형에 처한 죄인의 육신에 손을 댄 적은 있습니다. 그 일은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나리. 하나 죄 없는 사람의 몸에는 결코 손을 댄 적이 없습니다. 믿어주십시오, 나리.”

바깥에 소리가 새어 나갈까 두려워 잔뜩 웅크린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알고 있네.”

“예?”

건조한 현령의 대답에 영제는 얼빠진 표정으로 눈을 들어 상관을 보았다.

“하면 왜 포관의 말에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까?”

“일리 있는 말이 아닌가. 오작인이 자네 하나뿐인 것도 아니고.”

“그, 그렇지요. 하지만 현 내에 오작인이라곤 고작 셋인데, 저도 아니고 지 씨도 아닙니다. 지 씨는 누구보다 정직한 사람이고요.”

“그것 또한 알고 있네.”

“그럼 정 씨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아닐세.”

허공을 응시하던 현령이 오작인에게 시선을 던졌다.

“한데 자네가 이리 날 찾아온 걸 누가 보기라도 했다면 나까지 의심을 살 수 있으니 앞으로 조심하게.”

“미처 거기까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현령 나리.”

“됐다, 이만 나가봐.”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하고 현령은 다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

관자놀이가 더욱 욱신거렸다.

어느덧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경 내 모든 백정과 오작인, 전과가 있는 범죄자들을 두루 찾아가 조사해 보았지만 수사에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

게다가 수사가 시작되자 화적 떼는 어디로 숨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쉽게 해결되리라 여겼던 사건은 갈수록 오리무중에 빠져 현령과 포관들이 난항을 겪었다.

‘실종자의 팔 할이 보름 밤에 변을 당했어.

하지만 백귀는 아니야.

만약 백귀였다면 흔적을 남기기 않았을 터이니.

아버지의 경우만 봐도 그래.

하나 설화가 범인들에게 도화선이 된 것은 분명해.

화적, 장기 밀매, 범, 백귀, 식량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야 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테지…….’

현령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진범을 잡을 수 없다면 희생양이라도 찾아야 하나.’

그 순간 어째서인지 한 계집의 얼굴이 떠올랐다.

윤희라는 그 계집이 사라지고 용모파기까지 뿌렸지만 어디로 달아난 건지 머리카락 한 올도 나오지 않았다.

아비를 잡아다 문초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들 세령은 자신의 불찰로 윤희가 험한 일을 당했다며 식음을 전폐하고 몸져누웠었다.

그 일로 세령은 아직까지 아비 희상에게 원망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세령이 애걸하며 호소하던 이야기 속에 도월이 등장했다.

‘박도월, 그자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단 말이지.’

그때, 등불이 요란히 흔들리고 집무실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짙은 자줏빛 도포를 입은 도월이 허락도 없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누구냐!”

희상이 자리에 앉은 채 반사적으로 외쳤다.

동시에 손으로 칼집을 꽉 잡았다.

“박, 도월이라 하네.”

도월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희상에게 다가갔다.

희상의 미간에 얕은 주름이 패였다.

“허락 없이 들어와 기분이 상했나 보군.”

희상은 말없이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도월이 희상 앞으로 가 앉았다.

그러자 활짝 열렸던 문이 저절로 닫혔다.

희상은 저절로 닫힌 문보다 도월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더 궁금했지만 그가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잠자코 앉아 있었다.

“골치 아픈 일이 있다고 들었네.”

결국 도월이 먼저 입을 열었다.

“관직에 있다 보면 골치 아픈 일이 하나둘이 아니지요.”

희상은 여전히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것 참 성가시겠구먼.”

도월의 은은한 미소가 점차 자신을 농락하는 듯이 느껴져 불쾌했지만 희상은 그 마음을 애써 감추었다.

“그저 저의 노고를 위로하러 온 것이 아닐 테지요.”

“그러하네.”

“무슨 용건으로 오셨소.”

“그 골치 아픈 일,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그게 무슨 말이오?”

이번엔 희상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화적 잡는 데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들었네.”

도월의 말을 듣고 희상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내가 화적 떼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 이 말이오? 한 달 동안 머리카락 그림자도 보이지 않은 화적 떼를 어찌…….”

희상이 제 말에 놀라 입을 다물었다.

실수였다.

외부인에게 이런 말을 해선 안 되었는데, 도월에게 휘말리고 말았다.

희상이 눈을 꼭 감았다가 뜨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화적을 잡는 것만으로는 이 사태가 온전히 해결되지 않으리란 사실도 이미 잘 알고 있겠지.”

도월이 마치 제 생각을 읽은 듯이 말해 희상은 더욱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모두 내가 도와드리리다.”

도월이 눈을 반짝였다.

희상은 불안하고 거북스러우면서도 자신이 그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리라 직감했다.

“나와 거래를 하세.”

도월이 고개를 쭉 빼고 희상에게 말했다.

그 모습이 마치 새로운 놀이를 발견한 어린아이 같아 희상은 더욱 불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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