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령이 내달리며 일으킨 흙먼지가 다 가라앉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대로의 끝에 군사의 인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기마 군관 셋이 앞장을 섰고, 보행 군졸이 포승줄로 포박한 죄인들의 사위를 둘러쌌다.
그 뒤로 후방을 지키는 기마 군관 둘과 사냥꾼으로 위장한 군관 십수 명이 대열을 이루고 따랐다.
군사 행렬이 가까워질수록 관아 앞에 모인 구경꾼들은 더욱 술렁였다.
“어디 이놈들 낯짝이나 한 번 보자.”
한쪽에선 걸걸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울리고 다른 한쪽에선 한 맺힌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고, 아이고…….”
터져 나오는 곡소리와 주저앉아 흐느끼는 누군가의 가족, 그리고 군중을 헤치고 달려들다 군졸에게 제지당하는 비쩍 마른 여인.
“내 새끼, 내 새끼 돌려 내! 내 새끼…….”
숨이 넘어갈 듯 꺽꺽거리자 뒤에 선 구경꾼들이 여인을 부축해 물러났다.
군사 행렬이 군중 속에 완전히 포위됐을 때,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돌팔매질이 시작되었다.
죄인을 둘러싼 군졸들도 이따금 날아온 돌을 맞았으나 차마 그들을 말리지는 못했다.
나흘 뒤 오후, 화적의 우두머리와 심복 넷의 머리가 관아의 정문 옆 담벼락에 내걸렸다.
효수형은 비인도적이라는 이유로 오랜 세월 집행되지 않던 형벌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피해자의 수가 많고 범행 또한 잔혹하여, 모방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현령이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며 그들을 효수형이라는 극형을 내린 것이다.
속 시원하다면 속 시원한 처사였지만 그 광경은 너무나도 끔찍했다.
이 끔찍하고 기괴한 광경을 한경에 사는 사람이라면 보지 않은 자가 없었는데,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극형에 처해진 죄인의 낯을 구경하기 위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현령이 관아의 곳간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원하든 원치 않든 한 번은 봐야 했다.
“옘병, 주려거든 먼저 주던가, 저것들 다 치우고 주지, 왜 보기 싫은 사람들까지 다 보게 만들어!”
줄을 서서 기다리는 한 노인이 노여워하자 여기저기서 참견하기 시작했다.
“나쁜 놈들 죽어서도 편치 못하게 하려는 거 아니우!”
“거, 본보기 모르시오? 본보기!”
“저 꼴을 봐야 누구든 죄 지을 생각을 못할 것 아이오.”
“저놈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제 식구 아니라고, 어쩜 저래-.”
걸걸한 목소리로 과격하게 소리는 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옆사람과 쫑알거리는 이도 있고, 그저 쯧쯧 하고 혀만 차는 이도 있었다.
군중이 밀집한 자리이니 온갖 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란이 한 번 들썩이자 고요가 멀리 날아갔다.
“그래도 이번 현령이 화적 떼도 잡고, 쌀도 나눠주는 걸 보면 전 대감 아들이 맞긴 해. 그렇지?”
“내 말이. 인물이며 성격이 영 딴판이라.”
아낙이 말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얼굴값이나 할 줄 알았더니 아주 제법이야.”
누가 들을 새라 손으로 입을 가리고 쑥덕거렸다.
그때, 구휼미를 받아 가지고 나오는 한 사내가 아낙들에게 아는 체를 했다.
“내 오다가 포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현령이 부러 무딘 칼로 목을 베라 명령했대. 네 놈들도 당해봐라 이거 아니겠어?”
“아휴, 끔찍해라.”
한 아낙은 몸서리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다른 아낙은 눈을 치뜨고 효수된 죄인의 목에 손가락질했다
“그래도 싸지! 잘했다, 잘했어. 죽여달라 빌 때까지 더 고초를 겪었어야 하는데!”
실제로 죄인들은 무딘 칼로 여러 번에 걸쳐 목이 베었다.
때문에 아주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지켜봐야만 했던 군졸과 관리들 역시 죽을 맛이었다.
그 모진 장면을 다섯 번이나 봐야 했으니 말이다.
죄인 다섯을 참수하는 동안 형장에서는 구역질 소리가 멈추지 않았고, 등 돌리고 서서 귀를 막고 바들바들 떠는 관리가 몇, 의식을 잃고 쓰러진 관리도 몇 있었다.
이 피비린내 나는 형장의 정점에 선 현령 희상은 눈앞의 아비규환에도 이따금 미간만 찌푸릴 뿐,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무감한 표정이었다.
이는 현령 뒤에 서서 참관 중이던 도월도 마찬가지였다.
도월은 도리어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화적보다 무서운 인간들이 저기 있었구먼…….’
한 관리가 창백한 낯으로 시선을 돌리다 문득 눈에 들어온 희상과 도월의 얼굴을 보고 든 생각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참수형 집행이 드디어 끝이 나자, 관리들은 황급히 형장을 빠져나갔다.
현령도 뒤처리에 대한 지시를 짧게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건이 얼추 마무리가 되어서인지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얼른 내아로 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희상은 동헌의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약한 적은 없으나 집무실에 방문자가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참수형 참관까지 한 그가 집무실에 들르지 않을 리가 없었다.
희상은 집무실의 양문을 활짝 열고 들어갔다.
예상대로 도월이 먼저 와 앉아 있었다.
“베풀어 주신 쌀은 내일부터 배포할 것입니다.”
“그건 알아서 하시게.”
“그럼 다른 할 말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창가에 서서 도월을 돌아보며 희상이 말했다.
“내게 남은 죄인을 보내기로 한 것을 잊었는가.”
눈을 깊게 감았다가 뜬 희상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랬지요. 저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 봅니다. 그 일을 망각하고 있었군요.”
“저런.”
도월이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제물은 내가 직접 고르겠네.”
“몇이나 필요하십니까.”
“여덟.”
“여덟이나 필요한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희상이 창틀에 걸터앉아 물었다.
그러자 도월의 얼굴에 웃음이 크게 번졌다.
“그게 이제야 궁금한 모양이군.”
희상의 얼굴에 얼핏 불쾌함이 스쳤으나 입은 열지 않았다.
“지옥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나는 팔열 지옥을 좋아하네. 내가 불을 좋아하거든.”
환히 웃으며 말하는 도월을 보고 희상의 미간에 절로 주름이 패었다.
“그 팔열 지옥에 한 놈씩 보낼 생각인데, 어떤가? 재미있지 않겠나?”
희상은 그저 멍하니 도월을 바라보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농일세.”
도월이 크게 한 번 웃고는 웃음을 싹 거두었다.
“닷새 뒤, 보름날 아침까지 제를 준비하게. 그대가 제사를 지내고 나면 내가 와서 제물을 데려가지.”
“제사까지 지낼 필요가 있습니까?”
희상은 이 일이 조금 성가시게 느껴졌다.
“명목상이긴 하나 어쨌든 백귀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이니 제사 지내는 시늉은 해야 하지 않겠나?”
“일리 있는 말입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군요.”
도월의 대답에 희상이 빠르게 수긍했다.
“그럼 그 제물들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어찌했으면 좋겠나?”
“이미 처형된 자들 보다 그 죄가 덜하다고는 하나 살려 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나도 살려 둘 마음이 없네.”
“그렇다면……?”
“내게 맡겨 주게. 진짜 지옥을 보여줄 터이니.”
도월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감돌았다.
희상은 이번 일이 끝나면 더 이상 저 자와 상종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