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와 씨감자 부모 이야기

아이가 가고자 하는 길을 함께 걸으며 만난 세상

by 남효정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어릴 적부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레고블록으로 만들기를 좋아해서 많은 시간을 무언가를 만들면서 보내기도 하였구요.

놀이를 하다가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은 동생이 부정확한 발음과 손짓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엄마보다 더 잘 이해하였답니다. 그리고 상상력을 발휘해 집안의 소품을 이용해서 동생을 해적이나 기사로 변신시켜주기도 하였지요. 동생은 늘 그런 형의 옆에 꼭 붙어서 놀곤 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부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동생을 지켜주는 든든한 형으로 의젓하게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수학을 사랑하는 청소년이 되어 졸린 눈을 비비며 여느 학생들처럼 방과 후에 국영수학원에서 대입을 준비하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던 고1 겨울 방학을 앞둔 어느 날, 이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교복을 입은 채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말합니다.


“저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한 번 태어나 한 번 사는 인생, 제가 꼭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음악을 하지 않고 괜찮은 척 다른 공부를 하고 제가 원하는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살 수 없어요. 진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나답게 살고 싶어요. 음악전공을 허락해주세요.”


어릴 적에도 잘 울지 않던 의젓한 그 아이의 교복 위로 후두둑 눈물이 흐릅니다. 이 모습을 보고 그 아이의 말을 듣고 있던 부모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만 가지 걱정과 생각을 잔소리로 풀어낼 수 없었습니다. 그 아이의 말이 너무나 간절하여 부모는 고개를 끄덕여 어려운 그 결정에 힘을 실어주게 됩니다.

부모님이 뒷바라지하기 어려울까봐 괜찮은 척 다른 전공을 하려고 오랜 시간 스스로 마음을 다독여 온 아이의 마음이 온전히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고1에 진로를 바꾸는 건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선생님을 알아보고 레슨을 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갈텐테 큰 일이네.’

저희 부부는 걱정이 되었지만 걱정은 그냥 꿀꺽 삼켰습니다.


“우리 아이가 저렇게 간절하게 하고 싶어하는 꿈이 있었구나. 한 번 사는 인생, 원하는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 뒷받침 해주자.’


저와 남편은 기존에 하고 있던 일을 대폭 늘려서 하고 다른 부분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대한 절약하여 그 아이에게 지원하였습니다. 대입까지는 남아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기에 아이는 집중하여 음악 이론을 공부하고 피아노를 연습하고 곡을 쓰는 것을 빠르게 배워나갔습니다. 사실 부모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아이의 공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아이에게 힘이 되는 말과 행동으로 격려하였고 온힘을 모아 일하고 뒷받침하였습니다.


아이는 여러 군데 원서를 쓸 수 있는 수시도 딱 한 곳의 대학 국악작곡과에 지원하였고 안타깝게 실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정시까지 흔들림 없이 노력하여 원하는 그 대학 3명 선발하는 정시에 합격해 지금은 여러 가지 국악곡을 쓰고 연주하고 있습니다. 피아노를 주로 치던 그 아이는 대금, 거문고, 아쟁 등도 배우며 우리의 소리에 빠져들었습니다.


“엄마아빠 저 공연해요. 보러 오세요.”


어느 날, 아이는 담담한 목소리로 공연일자와 장소를 알려주었고 부모는 아이가 알려준 대로 국립국악원이라는 곳을 처음으로 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공연장에 가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학부 재학 중인 그 아이가 큰 대회에 수상자로 선정되어 작곡가로 데뷔하는 무대라는 것을요. 부모는 일터에서 바로 오는 길이라 저녁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해 가을이 완연한 국립국악원 앞마당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어, 여보 저게 뭐야?”


아이의 엄마는 국립국악원으로 진입하는 입구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가르쳤습니다.


“우리 아들이네!”


하얀 셔츠를 차려입고 앳된 미소를 띄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여러 개의 깃발로 세워져 있었고저녁 바람에 춤을 추듯 살랑거렸습니다.


“저기도 봐요. 건물 전면에 큰 사진도 있어요~와~정말 멋지네!!”


한 해에 여섯 명의 우수 작곡가를 선발하는데 학부학생으로 당당하게 기존 작곡가와 나란히 어깨를 겨루어 선발된 축제의 자리에 부모님을 초대한 것입니다. 그것도 국악관현악 연주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아름다운 곡을 썼더라구요. 그동안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들에 대한 선물인 것 같아 부모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2022년 11월 11일 부모는 이 아이에게서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을 보았습니다. 그 새싹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우리 소리로, 작지만 단단하게 이 세상을 향해 뻗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믿습니다. 김구선생님께서 강조하신 ‘우리 문화의 위대한 힘’을 우리 아들이 국악이라는 음악을 통해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음악을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며 행복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아낼 것이라는 것을요.


“무엇을 하든 늘 기대 이상의 우리 아들, 엄마아빠에게 큰 기쁨을 주어 고마워. 언제나 당당하게 너의 길을 가길 바래. 올 해 우수한 성적으로 조기졸업하게 된 거 축하하고, 학부생의 신분으로 우수 작곡가로 선발 된 것도 축하해. 너의 음악적 성과가 네가 그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했는지 충분히 느끼게 하는구나. 올해부터는 너의 동생도 너와는 달리 실용음악의 길을 가게 되었으니 서로 의지하고 보듬고 격려하면서 함께 성장해 나가길 기대한다. 네가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동생에게 가끔 용돈으로 보내주는데 동생이 두 배로 갚는단다. 집 근처에 봄꽃이 만발했어. 바빠도 김밥 싸가지고 우리 가족 손잡고 봄소풍 한번 가자.”


“아들아~시골 갔을 때 감자 심어봤지? 감자를 심으면 씨감자는 양분이 되어 사라지고 새로운 자식 감자들이 주렁주렁 탐스럽게 달리지? 엄마랑 아빠는 너희에게 씨감자가 되어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부모는 항상 그런 존재인거 같아. 너를 꽃피우는 큰 나무로 자라나렴.”


그 아이의 음악은 줄기차게 달려온 저희 부부에게 공연 내내 쉼 이였고 위로였으며, 내일이라는 산을 오르는 새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씨감자 부모님과 꿈을 향해 뻗어가는 작은 감자들 응원합니다!

*제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 저의 꿈은 브런치 작가로 우뚝서기예요^^ 아직 어색하고 서툴지만 열심히 저의 소소한 일상과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부모의 마음을 조금씩 기록해 보려합니다. 브런치 독자 여러분 모두 행복한 봄날 되세요.

keyword
이전 11화햇볕 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