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태어나기 전 그 남자와 그 여자 이야기
며칠 햇볕만 따사롭게 비춘다면 아마 2~3일 내로 산수유 노란 꽃망울이 팝콘처럼 피어날 것 같아요. 오후에 큰 아이와 케이크가 맛있는 카페에 가서 오랜만에 이야기도 나누고 각자 해야 할 일도 하고 왔습니다. 아이는 초콜릿이 듬뿍 들어간 음료를 마시며 음악을 짓고 저는 바닐라라떼를 홀짝 거리며 이야기를 짓습니다. 막 하교한 고등학생 둘이 깔깔 정다운 담소를 나누고, 혼자 책 보는 사람, 삼삼오오 수다 떠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안온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은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 이야기를 적어볼까 합니다.
퇴근길 라일락꽃이 활짝 핀 동네 언덕길을 20대 후반의 여자와 30대 초반의 남자가 걸어갑니다. 남자 손에는 케이크 상자가 들려있고 여자는 작은 튤립 한 다발을 들고 있어요. 오늘은 그 여자의 생일입니다. 여자는 키가 큰 편이고 약간 마른 체격이며 남자는 보통체격에 말하지 않을 때는 과묵해 보이지만 대화를 시작하면 서글서글한 인상을 주는 그런 사람입니다.
신혼집에서 그 여자의 직장까지는 지하철로 가깝게 이어지고 그 동네에서 그 남자의 회사가 있는 광화문까지는 아주 가까워 그동안 타고 다니던 작은 차도 처분하여서 이제 두 사람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걸을 수 있었습니다.
퇴근길엔 충정로 역에서 만나 역사 뒤편 동아일보 건물 뒤로 난 언덕길을 올라가노라면 골목 양쪽으로 규모가 꽤 큰 집들이 있고 높은 담장에 기대어 오래된 라일락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오월 훈풍에 라일락 나무가 앞을 다투어 연보랏빛 라일락꽃을 피워낼 때는 아름답지만 그 짙은 향기에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라일락 향기에 취하는 것 같아."
"담벼락에서 아래로 드리워진 가지가 근사하다."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하며 걸었습니다. 근사한 집들을 지나 언덕 위로 올라가면 그들의 신혼집이 나옵니다. 올라가면서 그들은 의논합니다.
"오늘은 뭐 해 먹을까?"
"얼큰하게 김치찌개 먹고 싶다."
"김치는 있으니까 두부 한 모 사가자."
"시장에서 사과 좀 사갈까?"
"좋아. 딱 두 개만 사자."
어린아이들이 풀잎을 따고 꽃 한 송이 따서 소꿉놀이 하듯 그들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아현시장으로 넘어가 꼭 필요한 것들을 샀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이들 부부의 단골 상인은 웃으며 소량의 식재료들을 담아줍니다.
두 사람은 수입의 대부분을 저축했습니다. 언덕 위의 이 집은 아기가 아장아장 걷거나 아이 엄마가 유모차를 밀기에는 너무 위험했기 때문에 그들은 평지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 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이 즈음 어느 일요일 그녀의 어린 제자들 세 명이 지하철을 타고 선생님의 신혼집에 놀러 왔습니다. 여섯 살인 아이들은 그들의 엄마들이 출발지에서 지하철을 태워주고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충정로역으로 마중을 나가서 아이들을 신혼집까지 안내하였습니다.
"선생님, 집이 왜 이렇게 멀어요?"
"언덕으로 자꾸 올라가니까 땀나요."
"길이 울퉁불퉁 웃기게 생겼어요."
아이들은 경사도가 있는 골목길에서 힘들다고 투정하였지만 까만 눈을 반짝이며 씩씩하게 그녀의 작은 신혼집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남자는 귀여운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 배고프지? 뭐 먹고 싶니?"
"짜장면 먹고 싶어요!"
아이들은 입을 모아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 남자는 짜장면을 사주었고 아이들은 입이 짜장 범벅이 되는 줄도 모르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집구경도 다하고 심심해질 무렵 그 여자가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짜장면도 먹고 집구경도 다 했는데 이제 뭐 할까?"
"음… 놀이공원 가요. 선생님!"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오케이 사인을 주고받았습니다. 신이 나서 언덕을 내려가는 세 아이들의 목소리가 달짝지근한 라일락 향기와 섞여 따뜻하고 골목을 행복한 분위기로 물들입니다.
그날 세 명의 개구쟁이 아이들과 신혼부부인 그 남자와 그 여자는 놀이공원에서 회전목마를 시작으로 물길을 미끄러져 나가는 배도 타고 솜사탕도 먹으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때 그들을 찾아온 귀여운 꼬마 손님들 덕분에 라일락 꽃 내음 가득한 그 작은 신혼집은 더 많은 이야기로 넘쳐 났습니다.
저는 세상은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고 믿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책과 같아서 그들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서 진솔하게 들려줄 때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기에 저는 오늘도 소소하지만 시골집 아궁이같은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브런치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보여주시는 작가님들 모두 파이팅입니다! 작지만 소중한 일상을 그리는 저의 글도 많이 응원해 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