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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sun May 30. 2019

13. 너의 성별

너를 확인하다.




너를 확인하다.




임신을 알고 난 이후 초음파를 확인하러 가는 길은 매번 설레는 일이다. 임신 12주부터 성별을 예측하며 태아의 성별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이를 확인하러 가는 길은 더욱 기대감과 궁금증으로 가득했다. 


임신 16주 1일 차 초음파를 보는 날, 원래 계획은 남편과 함께 내원하여 성별을 확인하기로 했지만 일정상 혼자 다녀왔다. 혼자 병원을 내원하게 되어 내심 서운했지만 먼저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었다. 먼저 성별을 알게 된 나는 남편에게 성별 알리기 이벤트를 하기 위해 작은 상자를 준비했다. 상자 앞에 "안녕, 햇님이 아빠"라고 적어두고 안에는 초음파 사진과 아기 용품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법적으로는 성별을 확인하는 시기가 32주이지만 일반적으로 16주 차가 되면 태아의 생식기가 구별이 확실해지면서 병원에서 알려준다. 초음파를 확인하기 위해 누워 2차 기형아 검사를 위해 태아의 머리둘레 등을 확인하고 마지막에 태아의 배 아랫부분을 확인했다.




화살표 위로 정확히 보이는 삼각점으로 인해 의사가 말하기 전에 나는 아들임을 알아차렸다.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헉'이라는 소리가 나왔는데 의사가 웃으면서 "딸이시길 바라셨나 봐요?"라고 이야기를 해왔다. 


가끔 성별 반전으로 16주 차에 알게 된 성별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내가 봐도 떡하니 보이는 삼각점으로 우리 부부에게는 성별 반전이 없을 것 같았다.








성별을 확인하고 남편에게 이벤트를 하기 위해 대형마트에서 아기 용품을 하나 사러 갔다. 옷을 살까, 신발을 살까 고민을 하다가 옷은 아기가 태어났을 때 입기에 너무 이른 것 같아서 이벤트성으로 신발을 샀다.


지인은 아기가 남자인 것을 알고 가장 슬펐던 일이 여아에 비해 예쁜 옷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나도 지인의 말에 공감을 하게 되었다. 여아용은 색깔도 알록달록하고 리본이나 프릴이 있어서 더욱 예뻐 보였는데 남아용은 파란색 계열에 로봇 캐릭터 그림이 크게 그려지거나 줄무늬 운동화뿐이라 슬펐다. 남아용도 예쁜 것을 찾고 싶었는데 내가 간 매장만 유독 그런 것인지 전시되어 있는 물품은 대부분이 여아용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며 남편에게 아기 신발과 초음파 사진이 있는 상자를 슬며시 전달했다. 남편은 의문스러운 얼굴로 상자를 열어보고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어... 음... 괜찮아 아들이어도 좋아."라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남편을 보며 식사를 하다 매우 크게 웃었다.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 아쉬움이 남았지만 다시 한번 더 건강하게만 태어나길 빌었다. 낮에 매장을 다녀온 이후라 남자아이라고 파란색 계열의 용품만 사놓지 말고 남녀 구분 없이 다양한 색을 아이가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남자니까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고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번 더 하게 되었다. 내가 성장을 하면서 여자니까 이렇게 해야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들어왔는데 부모의 입장이 되니 나 또한 그런 말을 하며 아이를 억압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너의 성별




가장 먼저 지인들에게 성별을 알렸다. 또래 친구 중 임신을 한 지인이 2명뿐이었는데 이 친구들이 가장 안타까워했다. "너만이라도 딸이었길 바랬다."라며 연락하는 내내 진심을 다해 슬퍼했다. 나를 포함한 3명 모두 성별을 예측하는 시기에 딸이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모두 성별을 아는 날 아쉬워했다. 하나같이 남편들은 성별 반전이 있을 거라며 1%의 희망을 놓지 않았지만 이후 몇 번의 초음파에서 성별을 확인받고서야 받아들였다. 


친정댁 부모님들은 남편이 외동이라 아들이라 다행이라고 했고, 시댁 부모님들은 첫째가 아들이니 둘째는 딸 낳으면 되겠다고 말하면서 축하해주셨다. 사실 부모님들의 기뻐하는 말에도 마음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임신을 하기 전에는 남편이 외동이고 나이가 많으니 임신을 빨리해야 한다던 부모님들은 임신을 하고 나니 나를 그저 남편 집안의 대를 잇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라렸다. 남편이 외동이라 아들이면 다행인데 만약 딸이면 실망했을 거라는 의미라고 느껴졌고, 이제야 임신을 한 나에게 벌써부터 둘째를 임신하라는 압박으로 느껴졌다. 


누구든 임신을 하면 생각해둔 성별이 있을 것이다. 예측해둔 성별이 아니라면 안타깝지만 우리 부모들은 좌절하고 슬퍼하지 않는다. 부모들은 안타까워할 뿐 아이를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듯 그저 아기가 건강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예측한 성별이 맞으면 좋았겠지만 아니라고 해서 부모가 아기를 사랑하지 않을 리가 없듯이 주변에서도 그저 축하해주고 건강만을 빌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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