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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꽃, 압제

by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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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는 깨끗했다. 죽고서 다시 깨어났을 때에는 열꽃이 피었다. 하나하나 아팠던 시간의 흔적이어서 안쓰럽지만 사라지길 원한다. 열꽃은 내가 살았다는 증거다. 그러나 아픈 되새김질이다. 나는 몹시 피곤하거나 아프고 난 후에 피부에 열꽃이 올라온다. 피부과 선생님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경우는 별로 없다고 하신다. 아주 심각하게 바이러스 감염을 앓거나 영양 불균형인 상태까지 갔을 때, 그 상태를 한바탕 치르고 나서 나타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올해 벌써 두 번 열꽃을 봤다. 할아버지도, 아빠도 비슷한 피부 증상이 있기에 유전적인 영향이 있겠거니 생각한다. 열꽃은 하루 이틀 있다가 사라지지 않는다. 적어도 한 달은 간다. 얼핏 봐도 불그스름하고 피부에 동그랗게 난 모양새가 징그럽게 느껴져 빨리 사라지길 바라나 서서히 없어지는 과정을 매일 확인하고 확인해야 한다. 알로에가 그 과정을 더 빠르게 도와주긴 한다. 처음엔 나에게 이런 피부 질환이 있다는 게 의아하고 정말 싫었으나, 열꽃은 내가 회복된 후에야 나타난다. 다 싸우고 나서 이제 끝났다며 피부에 자리 잡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회복과 살아냈다는 증표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몸을 아프게 하는 감염체나 물질도,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스트레스와 상황도 물리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 ‘끝’이라는 신호를 나는 열꽃으로 확인한다. 그건 하나의 안도이자 위로다. 그러니 오늘도 오늘의 열꽃을 받아들이자. 내일의 열꽃을 위해 확신으로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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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압제하던 자의 추락이 마냥 기쁘지 않음은 놀랍다. 나는 간접적인 방법으로라도 복수를 꿈꾸던 게 아닌가? 어쩌면 하루를 악으로 버티는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복수의 이름은 어디에나 팽배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걸어갈 길이 궁금하지 않다. 그는 그들의 길이 맞다고 여길 것이며 괜찮다 못해 근사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니 나는 애도한다. 나의 몫은 떠났기 때문이다. 나는 불렀고 위로했고 기도했으나 조롱한 머리는 그들 몫이다. 그러니 너는 그 길을 걸어가며 슬픔과 고통이 무엇인지 알길 기도하라. 탄식 후에 오는 소망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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